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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지나치게 평가절하 당하고 있는 에비수

by macrostar 2017.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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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AOA가 저런 취급(?)을 받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쓴 적 있는데(링크) 오늘은 에비수 이야기다. 한국에도 에비수라는 청바지 브랜드가 있는데 오늘 이야기 할 건 일본 오사카에서 시작한 에비수.


에비수는 오사카 파이브(스튜디오 다티산, 드님, 에비수, 웨어하우스, 플랫헤드) 중 하나로 레플리카 청바지라는 걸 처음 시작한 브랜드 중 하나고 2000과 2001이라는 대표적인 제품 라인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언샌포라이즈드 데님인 No.1도 좋지만 샌포라이드즈 데님은 No.2도 부족한 건 거의 없고, 데님과 부자재와 만듦새의 퀄리티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튼튼하기로는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는다. 하여간 다 낡아 빠져서 거의 하얗게 될 때까지도 원형을 유지하는 게 워크웨어로서의 본분에 매우 충실하다.


하지만 이 청바지는 본격적인 레플리카 데님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에도 여러가지 측면에서 세계 곳곳에서 평가 절하를 당하고 있다. 물론 이런 점은 다른 레플리카 계열 브랜드에 비해 굉장히 몸집이 커졌고 유럽에서의 히트 이후 패셔너블한 제품을 많이 내놓고 2000(66실루엣)과 2001(빈티지 실루엣)을 폐기 켰던 점에도 이유가 있다. 뒤늦게 2000과 2001을 다시 발매하기 시작하긴 했지만 나름 진중한 웰-메이드의 세계에서 이 경망스러운 페인트와 분명 약간은 이상한 인간인 게 틀림없는 창립자 야마네의 이미지가 겹쳐서 뭔가 묵묵히 열심히 만드는 곳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다.


사실 히트 브랜드가 된 건 뒷 주머니의 페인트 칠과 빈티지 가게에서 오버사이즈 리바이스 501을 구입해 입고 다니는 모습에서 나왔다는 2001의 그 이상한 실루엣의 영향이다. 한 때 이걸로 일본의 중고등학생을 지배했었다지만 이 둘이 합쳐서 소위 "오사카 분위기"가 너무 난다, 애들 옷 같다, 양키 옷이다 등등의 이미지가 너무나 확고해졌다. 입고 다니기 뭔가 부끄러운 그런 옷이 되어 버린 거다.



위 사진은 탈색 샘플.


슈가 케인처럼 차가운 풍은 아니고 그렇다고 PBJ처럼 요철 풍도 아니지만 솜털이 가득하고 알맞게 두터운 데님(14온스 대)은 언제 봐도 훌륭하기 그지없다.


어쨌든 미국과 일본의 각종 포럼에서 저 페인트 어떻게 지울 방법 없냐는 질문이 툭하면 올라오지만 제대로 확실하게 지워내는 방법은 없는 듯 하다. 그 덕분에 지우다 실패한 에비수가 일본 옥션에 꽤나 저렴하게 올라오고 한국에서는 한국 에비수의 영향과 민망한 페인트의 영향으로 더 저렴하게 거래되고 있다.


사실 페인트 없는 버전도 구입이 가능한데 정가가 No.1 은 3만 5천엔 가량, No.2는 2만 5천엔 가량(페인트 칠이 있든 없든 가격은 같다)으로 이 정도면 얼마든지 대안이 있다. 게다가 슬림핏이 대세인 마당에 특유의 넓은 허벅지 품을(2000도 허벅지는 살짝 넓다) 특별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레플리카 계열 데님에서 경쟁력이 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요새 트렌드는 여튼 짧은 미디, 좁은 엉덩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계열 각 브랜드들에 관심이 있고 특히 디테일의 완성도(충실함은 아니다. 크로치 리벳을 좋아해서 바탕이 어디든 그냥 막 집어넣는 역시 이상한 브랜드다) 구경을 좋아한다면 꼭 한 번 경험해 볼 만한 브랜드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신은 나간 게 틀림없지만 일은 꼼꼼이 잘 하는 뭐 그런 옷이다. 참고로 실루엣은 같은 2000, 2001이라도 No.1, No.2 데님 분류에 따라 사이즈가 상당히 이상하기 때문에 입어볼 수 없다면 실측 치수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페인트는 도저히 안되겠더라도 이왕 에비수라면 논워시 2사이즈 업의 2001 No.1를 추천해 본다.


그리고 이 옷은 낚시 따위를 하러 가거나 시덥잖은 농담이나 찌껄이면서 멍청한 짓을 하는 용도로 입으면 된다. 물론 주변에 폐를 끼치면 안되겠지만 에비수 따위를 입고 다니는 인간이 뭐 진중한 데가 있겠냐... 하는 세간의 마인드를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



PS) 끝 부분에 이야기한 사이즈 부분은 잠시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다. 아래는 사이트에 나와있는 논워시 상태에서 허리 단면과 밑단 단면 실측 수치로 30인치 기준이다. 표준 온스 청바지의 경우인데 사실 이런 게 보통 그러하듯 청바지 마다 다르고 제품 생산 시기마다 또 조금씩은 다르다. 그리고 17온스 이런 다른 버전의 경우에도 또 다르다.


No.1 (처음 세탁하면 허리의 경우 5cm 정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2000 : 허리 76cm 밑단 19cm

2001 : 허리 77.5cm 밑단 20.5cm


No.2 (처음 세탁하면 허리의 경우 2.5cm 정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2000 : 허리 82cm 밑단 19cm

2001 : 허리 77cm 밑단 21.5cm


2002는 2001과 같은 실루엣의 지퍼 버전이다. 이렇게 보면 2000 No.2만 좀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마도 요즘 분위기라면 가장 많이 팔리는 스타일일테니까 다른 브랜드의 표준적인 사이즈에 맞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유니클로 면바지 31인치를 입고 청바지는 마이너스 1사이즈를 구입해 넓혀가는 사람이라면 No.1 2000은 32, 2001은 31, No.2 2000은 29, 2001은 30 정도면 얼추 맞아가지 않을까 싶다. 결국 표기 사이즈라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에비수 No.2 2000은 지금까지는 글 쓰는 이, 컴퓨터 작업 등 앉아서 일하는 사람을 위한 가장 적합한 워크웨어 바지(링크)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링크 참조.



PS /


어떻게 살다 보니 이제 입고 있는 청바지가 다 에비수가 되었다. 에비수를 입게 된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우선 에비수는 한국에서는 한국 에비수 때문에, 일본에서는 한때의 대대적인 히트 덕분에 이미지 과소비와 양키 이미지 때문에, 그리고 미국에서는 No3의 이미지와(해외에는 주로 No3 버전을 중심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레플리카의 이미지가 좀 낮은 편이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아니 좋은 거 많은 데 왜 이제 와서 에비수... 라는 게 있다. 즉 레플리카 청바지의 주 소비국에서 모두 인기가 별로 없다. 게다가 2000과 2001의 투박한 룩은 어딘가 날렵한 슬림핏 풍의 유행 시대와 뭔가 맞지 않고 그렇다고 501 표준의 투박한 레귤러 타입과도 뭔가 다르다. 


이런 상황인데 이 회사는 90년대 초반에 오픈했고 지금까지 수많은 제품들을 내놨다. 그런 결과로 많은 공급 + 적은 수요 = 낮은 가격이 성립한다. 즉 거래되는 중고 가격이 비슷한 상태일 경우 낮다. 페인트의 강렬하고 구린 이미지를 알게 뭐야... 청바지 따위인데... 라고 생각한다면 가격 대비해 이보다 만듦새가 좋고 튼튼한 청바지는 셀비지 중에는 단언컨대 없다. 셀비지가 아닌 것까지 포함하면 90년대 초반까지 나온 미국제 리바이스 501이 있다. 그런데 이건 아직은 가격이 낮은데 서서히 오르고 있다. 50년대 판 501 정도야 되지 않겠지만 상태 좋은 거라면 꽤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에비수는 다시 히트 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어쨌든 이런 가격대는 랜덤 패션(링크)을 추구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하다.



기본 2000과 2001을 구입하면 좁은 거 하나, 넓은 거 하나가 있으니까 돌아가면서 입으면 심심치 않게 지낼 수 있는데 문제는 이게 14.5온스가 하여간 나름 두꺼워서 한국의 여름엔 도저히 입을 수가 없다. 나름 추위 많이 타는 나 같은 사람도 힘들 정도니까 거의 다 못 입을 거라 생각된다. 돌아다니다 보면 하체가 뜨거워서 쓰러질 수도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에비수에서는 13온스 대 여름 버전이 나오는데 이런 건 중고로 구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렇다고 새 거를 사자면 물론 여전히 굉장히 좋은 청바지를 만들고 있기는 한데 에비수 상당히 비싼 브랜드라 그 가격이면 슈가 케인 1947 타입 2와 드님 66을 한 벌 씩 살 수도 있다. 즉 선택지가 너무 많은 거다. 더워 죽겠는데 여름에 청바지 안 입으면 될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페이딩 측면에서 한국의 여름은 정말 최적의 계절이라 그냥 보내기는 아깝다! 뭐라도 탈색을 만들어야 한다. 


여튼 2000, 2001 체제의 문제점은 이거 가지고 사계절을 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여름용 버전을 따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거다. 여름용 버전이라고 해도 한 여름만 입는 거 아니고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는 커버할 수 있을테니 그렇게 비능률적인 선택은 아니다. 어쨌든 이걸 아직 못 구했고 그래서 이번 여름은 별로 보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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