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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PBJ XX 시리즈의 문제점, 제조사의 메시지

by macrostar 2016.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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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점'이라고 적어 놓으니까 뭐 대단한 폭로를 하는 거 같은 분위기가 나지만 그냥 청바지 디테일에 대한 이야기다. 2016년 들어 청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데 올해 청바지를 중심으로 뭔가 긴 이야기를 썼고, 그걸 위해서 이것 저것 사들인 게 있고, 그런 것들 그냥 가지고 있으면 뭐해 뭐라도 더 써야지... 가 되고 있는 거다.


패션에 대해 뭔가 쓰고 이야기 하는 걸 여튼 전업으로 하고 있고 수입도 이거 밖에 없으므로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옷을 사고 입는 것도 다 뭔가 쓰고 떠들기 위한 일환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어쩌다 옷을 사는 것도 궁금한 걸 해소하는 게 더 큰 목적이 된다. 예컨대 오늘 이야기하는 XX-003이라는 바지도 구 제품을 파는 어떤 인터넷 쇼핑몰에서 아마도 이게 뭔지 모르고 딴에 셀비지라고(이건 확인이 쉬우니까) 애매하게 가격을 책정해 높은 걸 부실하게 올려 놓은 사진을 보며 이게 대체 뭘까 추측만 하다가 너무 궁금해 호기심에 구입했던 거다. 이렇게 또 랜덤 쇼핑에 의해 XX-003을 입게 되었다. 결국 예전에 이야기 했던 호기심을 해결하는 데는 돈이 든다(링크)는 이야기다.


물론 이러다 보니 어지간하면 입어야 겠는데 입을 수 없는 것들도 쌓이고 누구 주기도 하고 저번처럼 팔기도 하고 뭐 그러고 있다. 엄밀하게 통제하는 세탁과 건조의 절차를 꽤 좋아하니까 관리만 해 가며 종종 구석구석 들춰보는 재미도 물론 있고 이왕 식구가 되었으니 계속 함께 가고 싶지만 그것만 가지고 보관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어쨌든 현재 데님으로 너무 치우친 불균형을 의식은 하고 있으므로 슬슬 발란스를 맞춰 가야 한다. 여튼 할 줄 아는 걸 최대한 열심히 하면 살 수는 있는 건지 확인해 보고 있으므로 궁금하면 문의... 현재까지는 젠젠 불가능으로... 그러므로 앞으로 많은 원고 의뢰나 제안 등등을 기다립니다!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 PBJ 이야기. 요즘은 퓨어 블루 재팬(Pure Blue Japan, PBJ)이라고 하는 데 예전에는 正藍屋(쇼아이야)라고 했다. 예전 잡지 뒤적거리던 게 있어서 지금도 쇼아이야라는 이름에 조금 더 익숙하다. 지금도 단추 등에 Syoaiya라고 적혀 있다. 왜 바꿨는지 모르겠는데 외국 사람들이 발음을 잘 못해서 그런 걸까... '제대로 하는 염색 전문가' 좋잖아. 


또 퓨어 블루 재팬이라는 이름은 모모타로가 속해 있는 람푸야의 다른 브랜드 재팬 블루(Japan Blue)와도 뭔가 헷갈린다. 이 회사의 두 단어가 퓨어 블루 재팬에 다 들어가 있다. 실상은 오카야마에 있다는 거 말고 서로 아무 관계 없다... 그리고 예전에 유니클로에서 셀비지 청바지 시리즈를 내 놓으면서 이름을 PURE BLUE JAPAN이라고 한 적이 있다. 셋다 평범한 단어니까 그려려니 해도 PBJ 입장에서 보자면 명백히 손해다. 그래봐야 PBJ는 너무 조그마한 회사니 제대로 항의도 잘 못하고 그저 인터뷰 같은 데서 유니클로처럼 큰 회사라면 조사라도 좀 해보고 이름을 정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투덜거리기만 했었다. 


사진은 그냥 검색해서 찾은 XX-003.


PBJ의 대표적인 라인은 AI와 XX가 있다. AI는 좀 특이한데 두꺼운 데님에 내츄럴 인디고 염색을 열심히 해 놔서 페이딩이 잘 생기지 않는 게 특징이다. 물론 그렇다고 안 생기는 건 아니고 결국은 생긴다. 하나마나 한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지만 대신 수명도 더 길고... 그런 특징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가가 세후 5만 5천엔이나 하기 때문에 본 적도 없다. 아무리 천연 염색이라도 너무 비싼 거 아닌가 싶지만 PBJ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플래그십 모델이니 내가 뭐라고 할 종류는 아니다. 궁금하면 여기(링크) 참조. 중간에 보면 누군가 구입해 입다 찍은 사진 링크도 있다. 한국에서도 모드맨 같은 곳에서 팔고 있다(링크). 73만 5천원이군. 관세, 부과세와 가서 직접 보고 입어볼 수도 있다는 거 생각하면 뭐.


그리고 XX 시리즈가 있다. PBJ에서 가장 알려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얼마 전에 쓴 요철 데님(링크) 계열이다. 말하자면 모던한 분위기가 나는 빈티지 제조 계열 청바지의 대표적인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로 텐션 + 요철 데님이라는 양쪽 특성이 합쳐져 너저분해지는 게 개성이자 개인적인 불만이지만 페이딩 계열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사랑 받고 있다. 


XX-003은 레귤러, XX-005는 슬림핏인데 전반적으로 레플리카 풍 빈티지 계열보다는 좁고 늘씬한 실루엣이다. 그리고 엉덩이 부분이 상당히 좁다. 정사이즈에서 마이너스 1을 구입해 늘려 입는 식인 경우 처음에는 허리가 조이다가 입다 보면 슬슬 늘어나며 편해 지는데 이건 엉덩이라는 더 넓은 면적이 좁으니까 늘어나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PBJ에서는 '엉덩이는 청바지의 얼굴!'이라면서 이 타이트한 엉덩이 라인에 꽤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블로그나 고객과의 Q&A에서 자주 자랑한다. 


여튼 XX-003을 작년 이맘 때 쯤 중고를 구입해 여름 제외하고 종종 입고 있다. 상태가 꽤나 좋은 걸 구했는데 무페이딩을 지향하며 열심히 세탁해 입고 있다. 선명하게 새겨진 고양이 수염이니 벌집이니 하는 거 너저분해서 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곱게 낡아가며 하늘색, 하얀색이 되는 게 좋다. 


사실 이거 포함해 청바지를 다섯 벌이나 가지고 있어서 인생에서 가장 많은 청바지를 보유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이것 저것 그날 아침에 생각나는 걸 입다가, 올해 여름부터 계절에 따라 뭐 하나를 메인으로 정하는 식으로 가고 있다. 이 옷은 14온스로 살짝 두께가 있는 편이라 그나마 덜 추워서 이번 겨울에 들어서며 메인으로 삼고 있는데 그렇게 열심히 입다 보니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주머니다. 그렇다, 맨 위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는 주머니. 혹시 저 사진을 보고 문제를 찾아낼 수 있을까?


보통 청바지는 데님으로 만들고 주머니는 보다 가볍고 부드러운 면으로 만든다. 슈가 케인처럼 뻣뻣하고 튼튼한 종류를 좋아하는데 빈티지 제조 방식의 청바지들은 헤링본이나 트윌 등등 튼튼한 소재를 보통 사용한다. 하지만 PBJ의 경우 얇고 흐느적거리는 매우 부실한 천을 사용한다. 버튼과 리벳 같은 건 아주 튼튼해 보이는 걸 썼는데 왜 그렇게 부실한 걸 썼나 모르겠다. 


여튼 그게 문제가 아니라... 데님과 주머니천이 연결되는 부위가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근데 PBJ는 이 부분이 너무 얕다.


이렇게 자로 측정해 보면 저 끝부분에서 덮고 있는 주머니까지 여유가 0.5cm밖에 되지 않는다. 이래 놓으니까 주머니에 손톱이 들어가는 순간 주머니 천이 시작된다.


다른 청바지를 보면 왼쪽은 2.5cm, 오른쪽은 3cm다. 이 정도는 되어야 적어도 손가락 한 마디 정도는 들어가야 주머니 천과 만난다. 그리고 데님은 두껍고 빳빳하므로 주머니 부분의 모양도 더 잘 유지된다. PBJ처럼 얕게 해 놓으면 문제가 뭐냐면 맨 위 사진을 다시 보면 알 수 있는데 하얀 주머니 천 부분이 매우 손쉽게 밖으로 튀어 나온다. 타이트하게 입고 있으면 그런 경향이 더 심해진다.


좀 보이게 하려고 살짝 조작을 했지만 예컨대 이런 식이다. 손을 넣었다가 빼면 자주 저렇게 튀어나오기 때문에 '아 귀찮아...' 하면서 다시 정리를 해야 한다. 


무명씨의 부실한 회사라면 그려려니 하겠지만 이쪽 계열 제조사들이 보이는 청바지와 그 디테일에 대한 몰입도, 그리고 이런 청바지를 사는 사람 중에는 이런 부분을 자세히 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브랜드라는 걸 생각해 보면 설마 저걸 모르고 저렇게 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즉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저렇게 했다는 거다. 그게 뭘까... 사실 잘 모르겠지만 앞 주머니 같은 거 쓰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그냥 손 따위 넣지 말고 그게 있다는 생각도 하지 말라는 거다. 


이렇게 본다면 두꺼운 데님, 구리 리벳, 철제 버튼, 두터운 면실 같은 충실한 디테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실한 주머니 천을 쓰고 있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즉 주머니는 그저 장식일 뿐 쓰지 말라는 거다. 게다가 PBJ는 주머니를 라벨로 쓰는데 라벨이라는 게 원래 그냥 붙어 있는 천이다. 뭐 실상은 '아이코 실수' 이런 걸 수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적어도 앞뒤는 맞는다.



이런 와중에 코인 포켓 박음질 한 부분에 꺾이는 부분마다 앙징맞게 삼각형을 넣어놨다. 다른 청바지 살펴보면 알겠지만 저런 짓 하는 브랜드 잘 없다. 천이나 좋은 걸 쓰지 저건 뭐야...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주머니를 쓰지 말라는 전제를 깔아놓고 그냥 두면 미안하니까 '심심하면 이런 거나 구경해' 일 수도 있겠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코인 포켓은 한방 바느질로 붙인 게 아니다. 뒷 주머니는 보란 듯이 한방에 꿰매기로 붙여 놨으니까 할 줄 모르는 건 전혀 아닐테고 역시 일부러 다르게 한 거다. 이것도 앞 이야기와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쓰라고 권장하는 부분은 빈티지 디테일을 충실히 갖춰 놓았다'라는 가정을 할 수 있고 결국 코인 포켓도 쓰지 말라는 거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일부러 못 만들어 놨다.


즉 PBJ는 자신의 제품을 가지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 내용은 바로 '앞에 달린 주머니는 아무 것도 쓰지마!'. 


PBJ의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걸 물어보고 싶지만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관두고... 여튼 이런 식으로 옷 놓고 쓸데없는 이야기 하는 건 또 한 턴을 마쳐본다. 다음 번에도 이런 이상한 이야기로 찾아올 예정이므로 기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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