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옷은 자기 혼자 즐거운 구석이 있는 게 좋다

by macrostar 2016. 11. 11.
반응형

사실 이 이야기는 북토크(링크)에서 옷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하려고 했던 건데 크게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쟁겨 놓으면 또 뭐하냐 싶어 여기에 적어 본다.


옷이란 그리고 패션이란 기본적으로 남을 위한 거다. 보온과 보호가 목적이라면 뭐든 그냥 돌돌 말고 다니면 된다. 그렇지 않고 굳이 복잡한 디테일의 현대 의상이 만들어진 이유는 남과 함께 살아가기 위함이다. 멋진 실루엣이라는 것도 남이 보기에 그렇다는 거지 그런 의식조차 없다면 정말 알게 뭐냐일 뿐이다. 자기 만족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곰곰이 따지고 보면 자기 만족이라는 것도 사회적인 눈에 의해 만들어 진 게 대부분이다. "멋대로"가 정말 "멋대로"인 경우는 드물고 게다가 정말 "멋대로"는 많은 경우 주변에 폐도 끼칠 수 있다. 이렇게 남을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라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거다. 21세기의 현대인이란, 아니 꽤 오래 전부터 인간은 그런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게 패션이지만 이토록 타산적이어 가지고는 재미가 없다. 하지만 옷에는 많은 경우 혼자만 알 수 있는 디테일들이 숨어있고 그 디테일에는 역사나 유래 같은 뒷 이야기들이 놓여 있다. 괜히 있는 건 없다. 아무리 장식이어도 괜히 있다면 필요없는 거다. 



레플리카 청바지 엉덩이 쪽에 숨어 있는 히든 리벳은 이제는 아무 기능도 없이 그냥 두 개의 리벳을 숨겨놓고 있을 뿐이다. 설마 저게 없다고 뒷 주머니가 떨어질 리도 없고, 뒷 주머니가 떨어질까봐 걱정하면서 사는 사람도 없다. 어쨌든 저건 레플리카의 아이콘으로 들어 있는 거고 평소에는 존재 자체도 느끼지 않는다. 나가기 전에 옷을 입을 때, 귀가해서 옷을 벗을 때 간혹 눈에 띌 뿐이다. 이제 와서는 그저 청바지를 입는 사람이 가끔 보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롱하게 푸르른 빛을 반사하는 구리 리벳은 볼 때마다 두근거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모두다 저런 빛이 나는 건 아니다. 저런 제품이 있다. 바지라는 물건에 어울리지 않는 차갑고 납작한 견고한 금속은 그 어울리지 않는 다는 점 때문에 재미가 있다.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옷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꾸 마주치다 보면 이제는 히든 리벳이 없는 바지를 보면 심심하다. 그래서 어떤 제작자들은 코튼 바지 울 바지 가리지 않고 저걸 넣는 (바보같은) 짓을 하기도 한다.


최근 몇 번에 걸쳐 올렸던 도넛 버튼(링크), 백 포켓의 고정 방식(링크) 그리고 체인 스티치(링크) 등등에 대한 이야기는 이 이야기와 연관이 되어 있다. 소소한 즐거움을 구분할 수 있는 부분이 레플리카 계열 청바지의 탄생에 걸쳐 있는 이야기 구조 상 아무래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거야 이야기를 적기 위한 편의를 위한 거고 다른 옷에도 그런 부분은 많이 있다. 예컨대 폴 스미스 옷의 안감, 누구에게도 안 보이는 양말의 윗 부분, 아니면 심지어 양말 섬유의 결합 방식, 속옷에 붙어 있는 유니크한 디테일이 그런 거다. 딱히 특별하지 않은 부분이라도 평범한 곳에서 좋아하는 구석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이런 건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소극적인 도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건 삶의 작은 즐거움 중 하나로 기능할 수도 있고 또 그렇게 생긴 옷에 대한 애정이 하나의 옷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 굳이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저기 그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아주 가끔은 마음 깊은 곳에 위안을 주기도 한다. 몇 번 이야기했듯 환경 보호는 오가닉 코튼보다는 지금있는 옷을 오래 입는 쪽이 훨씬 도움이 된다. 안 보면 모르고, 보면 재밌는 거라면 이왕이면 재밌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