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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도넛 버튼이 왜 득세하고 있는가

by macrostar 2016.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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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썼던 이야기에서 예고 했던(링크) 도넛 버튼 이야기다. 도넛 버튼이라는 건 가운데가 뚫려 있거나 파여 있는 단추를 말하는 데 생긴 걸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데님으로 만든 옷은 애초에 험한 환경에서의 작업복이었고 그 옷을 튼튼하게 고정시키기 위한 리벳이 있었고, 또한 역시 튼튼하게 유지할 수 있는 금속 단추를 사용했다. 보통 리벳은 구리, 단추는 철을 사용했었다.



위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게 평시의 리바이스 철제 단추다. 이건 요즘도 쓰이고 수많은 데님 브랜드 단추의 표본이 되었다. 그러다가 세계 대전이 났고 이 대형 전쟁에 각국이 참전하면서 수많은 물자가 필요하게 된다. 그러면서 민간 의류에 대한 물자 규제가 시작되었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CC-41이라는 물자 규제를 준수한 보급형 라벨이 나오고 일본은 표준 복장 규정이 나왔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식은 아닐 지라도 각자 규제가 이뤄졌다. 


그러면서 나온 게 바로 오른쪽의 도넛 버튼이다. 사실 규제가 없더라도 금속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이윤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무슨 수를 내야 할 참이었다. 여튼 데님 의류는 일을 할 때 작업복이니 튼튼은 해야겠고 플라스틱 등의 기술이 아직 그렇게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생각해 낸 게 오른쪽처럼 가운데 구멍을 뚫어서 사용하는 철의 양을 아끼는 방법이었다. 눈에 보이는 부분은 월계수 무늬를 새겼지만 아래쪽으로 버튼 부분은 그냥 민무늬 도넛 단추를 달았다. 하나 씩만 보면 별 거 아닐 지 몰라도 대량 생산을 하면 이런 게 꽤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1940년대 초반에 나온 옷들을 리바이스만 예로 들어봐도 저런 도넛 버튼을 달고, 코인 포켓에 리벳도 생략되었고, 주머니 천도 그다지 좋지 않은 걸 사용한다.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뒷면의 트레이드 마크 격인 갈매기 무늬 스티치도 프린트로 바꾸는 등 곳곳에서 물자 규제의 압력이 느껴진다. 레플리카 계열에서는 이런 특징들을 모아 대전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내놓고 있다. 리바이스 자체의 복각 브랜드인 LVC에서는 1944's 501(링크)이 바로 대전 모델이다.


도넛 버튼은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요새 몇 군데 SPA 브랜드를 뒤적거리다가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 올해 많은 브랜드들이 대거 내놓고 있는 데님 재킷을 보면




맨 위부터 차례대로 유니클로, 망고, 자라, 에잇세컨즈다. H&M만 특이하게 DENIM 어쩌고 라고 각인까지 새겨져 있는 제대로 된 버튼으로 나왔고(철제인지는 확인 못했다) 도넛 버튼이 아니더라도 민무늬 버튼을 쓴 곳이 많다. 같은 도넛 버튼이라도 만듦새는 또한 제각각인데 특히 에잇세컨즈의 굉장함에 대해서는 이 전에(링크) 말한 적이 있다. 


대략적으로 90년대 풍의 리바이벌과 더불어 데님 재킷이 대거 등장한 건 맞는 이야기이고, 아래 쪽의 스톤 워시드 제품들이 그런 측면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렇다면 왜 도넛 버튼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도넛 버튼이란 위에서 말했듯 40년대의 도망갈 곳 없는 선택지 중 하나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걸 일부러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긴 했는데 대부분은 레플리카 브랜드들이 고증에 충실하기 위해서의 목적이었고 그러면서도 숨겨져 있는 버튼은 몰라도 눈에 보이는 맨 위 허리의 버튼은 제대로 된 원형의 단추를 사용한 곳이 많았다. 사실 리바이스도 예전 빈티지를 찾아보면 1940년대 초반 모델이라도 맨 위 버튼 만은... 하면서 그건 제대로 된 버튼을 사용한 제품들을 꽤 볼 수 있다. 꼴보기 싫은데 할 수 없이 사용했던 거다.



도넛 버튼의 득세 이유로 우선 생각나는 건 추세다. 제대로 된 단추가 달린 모델은 3, 4년 전 쯤 트렌드일 때 한 번 낸 적이 있고 데님 재킷이라는 게 바뀔 게 별로 없으니 저걸로 포인트를 줘볼까 하는 결과다. 가난과 제한의 상징을 포인트로 쓴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예전 모델과 다른 건 분명하다. 


또 하나는 실제 물자 제한의 결과다. 이 물자 제한은 정부의 강제책은 아니지만 이제 본격적인 제로섬 게임으로 달리고 있는 SPA브랜드들이 예산을 아끼고 이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다가 똑같은 결론에 다다랐다는 거다. 거의 대부분 5, 6만원 정도의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데(에잇세컨즈 지디 컬렉션은 8만, 10만 정도로 유니클로의 두 배 쯤 되니까 사실 가격으로 한 데 묶기는 좀 어렵다) 면의 비율을 낮춘 스트레치 데님의 유행과 도넛 버튼의 유행을 만들어 낸 건 미미하더라도(어차피 순수 철을 쓰는 곳은 잘 없으니) 나름 도움이 되고 있지 않을까도 싶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삶의 동반자이자 패션을 멀리하게 된 평범한 이들의 동향과 니즈를 누구보다 철저히 분석하고 있을 이런 브랜드들이 지금은 전시에 준하는 힘든 상황이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는 지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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