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즐거움2016.10.16 21:53

이 사이트에 옷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개인화"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고 있다. 면 종류의 옷은 마찰에 의해 닳아가고 나일론 종류의 옷은 빛이 바래지며 촘촘했던 원래의 견고함은 서서히 풀어진다. 가죽 옷의 경우도 특유의 경년 변화를 겪게 된다. 그저 임시적이고 소비되기 위해 존재하는 옷이지만 어쨌든 함께 살게 되었고 그렇다면 늙어가는 과정은 삶의 흔적으로서 의미가 있다. 이 의미는 물론 매우 개인적인 종류로 혹시나 위대한 사람이 되어서 아인슈타인이 입었던 리바이스의 가죽 옷(링크) 같은 게 아니라면 사회적인 추억의 대상 따위는 되지 못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역사란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를 너무 심각하게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관심과 삶의 즐거움 중에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주의 깊게 선택한 옷을 좀 더 열심히, 잘 입는 세상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면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해 개인화라는 이름으로 옷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한다. 낡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제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더 재밌지 않을까. 검색창에서 개인화를 치면 몇 가지를 볼 수 있다. 앞으로도 이 태그를 달 생각이다. 


사실 특정 옷에 집착하지 않는 편이고, 심각한 종류의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 편이고, 그런 걸 피하기 위해 전략적 의상 착용도 가능한 피하는 편인데 2016년 여름의 옷하면 생각나는 옷이 생겼다. 바로 이거.


토요 엔터프라이즈의 슈가 케인에서 나온 론 스타( Lone Star)라는 청바지의 5년 버전이다. 슈가 케인의 청바지는 레플리카 라인과 오리지널 라인이 있는 데 론 스타는 그 중 오리지널 라인이다. 또 이 바지는 리지드 버전이 없고 "5년 지나면 이런 모습" 버전과 "10년 지나면 이런 모습 버전" 2가지가 나온다. 위 바지는 5년 버전으로 리넨 패치에 901이라는 로트 번호가 붙어 있다.   


슈가 케인 카탈로그의 5년 버전과 10년 버전.


하지만 그 이후 오랫동안 사용해 10년 버전보다 더 나이를 먹어 버렸다. 저 땜빵은 내가 직접 한 건데 덮어 씌우는 데 사용한 데님은 낡아서 버린 유니클로 청바지에서 가져왔다. 특징을 보자면 14온스 대의 나름 두터운 타입으로 웨어하우스나 풀 카운트의 부드러움과는 다른 예전 청바지의 둔탁하고 뻣뻣함이 살아있는 타입이다. 그리고 파이버 데님 모델이라고 해서 100% 면이 아니라 90%면에 10% 슈가 케인(사탕수수) 섬유로 만들어져 있다. 


풀 카운트의 짐바브웨 코튼은 그 놀라운 부드러움 때문에 확실히 좋긴 좋아도 이런 천을 청바지 같은 데에 쓰다니 뭔가 앞 뒤가 안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가끔은 덮고 자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슈가 케인의 론 스타나 1947, 플랫헤드의 같은 바지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뻣뻣함과 뭔지 모를 디테일의 어설픔은 좀 더 빈티지한 느낌과 청바지는 원래 이런 옷이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쪽이 더 흥미롭고 재미있다. 


사실 낡은 건 그럭저럭 괜찮아도 몸통이 찢어진 건 보통 포기한다. 뭐랄까.. 옷이고 뭐고 일단 이런 식의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경우 수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균열은 점점 커지고 전체는 뒤틀린다. 원래 상태의 유지는 균열이 없는 상태에서나 가능하다. 곱게 낡는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이 옷은 뭔지 모를 의욕이 불타서 뜯어진 부분들을 손 바느질로 열심히 메꿨다. 취약한 부분 중 하나인 가랑이 부분도 아직 심각하진 않지만 조기에 수선을 해 놓으려고 했는데, 너무 두꺼운 부분이라 바늘이 부러져 버려서 일단은 포기했다. 문제가 생기면 이 부분 만이라도 수선집을 찾아갈 생각이다.


그렇게 부활을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번 여름에 가장 많이 입은 옷이 되었다. 게다가 이걸 입고 속초도 갔고(잠옷을 깜빡하고 안 가져가서 심지어 이걸 입고 잤다) 제주도도 갔다. 사실 나름 두꺼운 옷이라 색은 몰라도 이 옷감은 특히 습하고 더웠던 여름에 맞지 않다. 그리고 지금 입는 옷을 기준으로 하면 1사이즈 작다. 사이즈야 뭐 청바지가 그렇듯 줄창 입고 다녔더니 얼추 늘어났다. 그리고 몸을 좀 줄여야지...라는 결심을 하게 되는 모티베이션도 되어 준다.. 지만 살을 빼진 못하고 있다.





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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