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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Dame 비비안 웨스트우드

by macrostar 201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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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는 1941년 4월 8일 생이다. 생일을 축하하는 트윗들이 많이 올라오길래 겸사겸사. 참고로 비비안 여사는 더비셔 주의 틴트위슬(Tintwistle)이라는 곳 출신이다. 지도로 보면 영국 가운데 쯤. 1958년에 런던으로 갔다.

 
그 기나긴 복잡한 인생을 여기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고 최근 경향에 대해서. 최근 들어, 그러니까 2000년 초반부터 비비안 여사의 언론 노출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느낌이다. 그 이유라면 역시 본격적인 정치적 행보 때문이다. 1989년에 태틀러 커버 같은 일도 있었고(대처가 주문한 옷을 입고 대처 코스프레를 하며 태틀러지 표지를 찍었다) 이 분이 그냥 조용히 있는 분이 아니라는 건 물론 다들 알고 있었다.

 
this woman was once a punk. 1989년 4월호, 자세히 보면 April Fool이라고 적혀있다. 대처가 무척 화를 냈다고.

2000년 들어 언론 노출이 급박하게 늘어난 계기를 딱히 특정할 수는 없지만 2005년에 영국의 인권 그룹 리버티에 참여하면서 리버티 라인도 내놨고, 2007년에 노동당을 기나긴 시절 지지해 왔다고 TV에 나와 이야기를 했고, 2008년부터는 핵무기 반대 캠페인도 시작했다. 2011년에는 에티칼 패션 아프리칸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나이로비 슬럼을 지원하며 제품을 납품받았고, 작년에는 미군 내부고발자 브래들리 매닝(링크)을 헌정하는 패션쇼도 하고, 옷도 만들고, 집회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기후 변화에 대단히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역시 Climate Revolution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만들고 컬렉션 때 직접 입고 나왔다), PETA의 물에 대한 캠페인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런 곳에도 갔었다. 런던의 많은 부분을 이미 아큐파이 하고 계실 거 같은데...

색이 꽤 뚜렷하기 때문에 물론 비판도 많은데 그건 보수 계열 쪽에서 뿐만 있는 건 아니다. 나이로비 슬럼 지원 같은 경우 전형적인 Poverty Porn 클리셰라고 비판한 기자도 있었고(사실 아프리카 슬럼 여성 지원 문제는 꽤 긴 시절을 가고 있는 논쟁 거리다), 환경 운동과 연계해 "Consumerism은 마약같은 것"이라는 주장이 그가 하고 있는 패션, 그것도 고급품 생산과 모순적이지 않느냐 하는 등의 논쟁(참고)도 있었다. 2007년 이 문제에 대해서 "I don't feel comfortable defending my clothes. But if you've got the money to afford them, then buy something from me. Just don't buy too much."라고 대답을 했었다.

보면 알겠지만 행동의 모든 부분을 세워 놓은 원칙에 맞춘다 같은 스타일은 전혀 아니고, 자기 생각에 이게 도움이 되겠지!라면 밀어붙이는 타입이다. 뭐 큰 사업을 하시는 분이니 그런 습성을 가진 점은 이해할 만 하다. 여하튼 정확히 어떤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건지는 정확히 감이 안 잡히지만 2000년 들어 다시금 뭔가 활활 불타는 길을 선택한 건 틀림없어 보인다.

그가 벌이는 무브먼트가 만드는 좋은 성과나 직간접적인 피해 같은 건 여기서 말할 만한 건 아니고 / 그의 메시지가 선명해지면서 부터 그의 옷이 꽤나 조악해 지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 분의 현재 상태와 매우 비슷한데 열정이 넘치고 어떤 길을 마구 질러 가는데 그게 전혀 탄탄하게 보이진 않는다. 하던 가락이 있으니 여전히 품질 좋은 고급 옷을 만들고는 있지만(비비안 웨스트우드 특유의 톤과 스타일은 여전히 굳건하다) 패션으로서는 2000년을 기점으로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기 보다는 일시 정지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거 같고, 그 베이스에 자신의 정치적 무브먼트들을 겹쳐 넣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가 하면 그렇진 않다. 그는 1941년 생이고(물론 1933년 생인 칼 라거펠트 같은 더 나이든 분도 있지만) 아마도 나름의 패션 그리고 인생의 정리 방법을 선택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커머셜한 측면에 너무나 기대고 있고, 아주 젊은 디자이너 마저 현실 안주적이고 복잡한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돌려버리는 현 상황을 생각하면 이 정도 위치의 사람이 이렇게 물을 혼탁하게 만드는 것도 나름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어디에서든 아 그 분의 활동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지 싶은 일을 여러 정황들을 잘 살피며 구축해 내는 게 패션계에서 40년을 보내셨고,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데 지대한 공헌도 하신 거장 Dame 비비안 웨스트우드 정도 되는 분이 하실 일이 아닌가 싶다. 근 10년 간 액티비티한 활동가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지만 돌이켜 보면 언뜻 생각나는 건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여기저기서 여튼 활활활~ 같은 느낌 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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