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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시야가 만들어내는 한정된 결론

by macrostar 2013.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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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04호 발간 파티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오신 분들 다들 감사합니다. 인사드린 분들 잠깐 밖에 이야기 못 나눴지만 반가웠고, 인사 못 드린 분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아무리 늦어도 올해 안에는...). 어제 강아지 때문에 잠을 설쳐서 약간 피곤했는데 조용한 강의실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든 생각들을 써 봅니다.


그 어떤 인간도 신, 혹은 그 비슷한 것도 아니므로 모든 걸 다 이해하고 바라볼 순 없다. 특히 미래를 '예상'하는 일은 때로 치명적이다. 물론 미래를 예상하게 되었노라고 착각하는 이들은 있다. 예상을 해 보고 틀렸을 경우 어디에서 오류가 났는 지를 찾고 수정한다. 이걸 끊임없이 반복한다. 많은 경험적 주식 투자자들이 이런 식으로 자기 이론을 만든다. 이런 독고다이의 자기 이론은 타인이 자신의 전략을 간파했을 경우, 혹은 자신보다 더 완성된 체계가 라이벌로 등장하는 경우 무너진다. 대부분의 경우엔 욕이나 좀 먹고 말겠지만 돈 놀음일 경우 매우 곤란해질 수 있다.

자기가 아는 것만 가지고 주변을, 그리고 세계를 다 설명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사고 회로 안에 추측과 그 연장을 논리적으로 처리하는 일이 불가능한 인간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경험을 너무 믿는다는 점이다. 경험은 물론 중요하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각인은 책을 읽는 다든가, 혼자 골방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본다든가 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강렬한 기억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만큼 오류를, 그것도 씻어내기 어려운 오류도 만든다. 왜냐하면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라는 믿음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여기에는 꽤 많은 우연과 개인의 노력, 시대 혹은 일시적 환경과 상황 등 여러가지 요소들이 개입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타당한 일이 남에게는 어떤 식으로 적용될 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은 새로운 정보가 유입되었을 때 반사적으로 자신을 타자화시키고 객관화시키는 작업이 요구된다. 여기엔 말하자면 훈련이 필요하다.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자신이 겪었던 일이 과연 '일반적'인 일인가, 그걸 가지고 다른 곳에 들이대 봐도 되는 가를 추론해 내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추론의 습관을 엄밀함을 요구하는 경험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순환적이다. 미시적 경험과 메타 경험은 이런 식으로 구분해서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하는 말도 일반적인 건 아니다. 말하자면 내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경험들이 구축해 낸 방식일테고 이 사고의 프레임을 끊임없이 수정해 가며 이 자리에서 설명의 방식이나 타개책을 생각해 보게 된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도미노의 경우 각자의 다른 경험들을 가지고 비슷한 방식의 프로세스를 진행시켜보려고 한다. 전혀 다른 자리에도 적용시켜 본다. 이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선뜻 이해가 어려워 보일 때도 있다. 디자인 전공자가 쓴 아파트 이야기가 건설업 종사자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만들까. 철학 전공자가 쓴 철도 이야기는 기관사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만들까.

예를 들어 다른 분야 전공자가 내 전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단박에 뭘 알고 하는 이야기이긴 하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자신의 자리에 자신의 방식(물론 그것도 쌓여온 유구한 역사들이 있겠지만) 만이 적용될 거라는 오소독스한 태도는 하지만 많은 경우 이집트 파라오의 혈연 결혼같은 것과 비슷한 결과를 만든다.

요즘 이야기가 나오는 인문학 우대 같은 이야기는 사실은 이런 기반에 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게 뭔가를 환기시키는 데 성공하려면 아직도 많은 산등성이를 넘어가야 한다. 말하자면 에베레스트를 올라가고 싶은데 지금 아마다블람 정상 정도를 향하고 있는 거다. 길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나오겠지만, 높아보였는데 올라가보니 남체바자르일 수도 있는 거다. 눈앞의 이익을 중시하는 곳에서는 사실 적용하기가 어렵다.

오소독스는 꽤 깊은 우물을 팔 수 있겠지만 바깥에선 이미 다른 방식으로 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나마 한 우물도 잘 파낸 사람들은 다른 부분들을 이해할 깜냥이라도 갖추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제 밥그릇 지키기, 즉 자기 분야의 방식에서 한치라도 벗어나기가 무척 어렵다. 하지만 같은 바께스 안에서 서로에게 진흙을 던져대는 이들에게 다른 바께스에서 날라오는 진흙이란 건 흔치않은 경험이다. 그걸 대하는 방식에서 참으로 많은 게 갈라진다. 어떤 이들은 회의주의에, 또 어떤 이들은 근본주의에, 그리고 어떤 이들은 상대주의에 빠진다. 언제나 간당간당하다.

앨런 쿠퍼의 책을 보면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와 경영인을 이해하게 되는, 결국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긴 과정이 나온다. 그는 그걸 깨닫고 계속 반복해 이야기하지만 그런 책이 존재하는 이유는 물론 대부분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어떤 식으로든 충돌하는 모습, 그리고 그게 어떤 파형을 만들어낼 지를 개인적으로 궁금해하고 있다. 좋은 기회인데 내 자신이 그렇게 잘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거 같아 약간은 아쉽다. 벌써 5호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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