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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낡은 스웨터

by macrostar 2011.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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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웨터를 보면 옛날 고사가 생각난다. 짚신을 만드는 아버지의 기술을 아들이 어깨 너머로 배웠는데 장터에 나가면 아버지 짚신만 팔리고 아들 짚신은 팔리지 않는다. 도무지 이해가 안됐지만 아버지는 웃기만 할 뿐 그 비밀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마지막으로 "털..."이라고 말하셨다.
 

아들 짚신이 잘 안팔린 이유는 털 정리를 잘 못해 발이 덜 편하기 때문이었는데 아들은 그걸 몰랐다는 거다. 장인 정신에 관련된 좋은 / 혹은 안좋은 이야기다.
 

이 스웨터는 나이가 꽤 먹었지만 많이 입지는 못했다. 이걸 입은 내 모습을 본 사람은 무척 한정적이다. 그 이유는, 이 스웨터는 제이 크루가 아직 울의 털을 정리하는 방법을 모를 때 만들어진 제품이기 때문이다. 이 거대 기업이 설마 그럴리가 있겠냐 만은 하여간 이 스웨터는 무척 따갑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만원 지하철 속에 서 있으면 열기와 땀이 결합해 정말 가관으로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가끔씩 웃음이 나온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사실 제이크루가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 이제 저런 캐주얼을 입어야 할 때기는 하다 - 품질에 대해선 약간 의심하는 선입견을 가진 건 이 스웨터 덕분이다.
 

60년대 식스티 미니츠에서 고발한 브레이크인가 주행 장치인가의 문제점 때문에, 미국에서 아우디가 근 40년을 뭔가 못믿을 차라는 선입견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몰라도 이런 선입견을 깨트리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잘 모르지만 인터넷에 불친절하다는 악평이 보이는 맛집을 잘 안찾아가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스웨터가 마음에 든다. 촌티나는 색감도 좋고, 두터운 질감도 좋다. 단지 입기가 좀 어려울 뿐이다. 세상에는 그런 일도 있는 법이다. 이 스웨터를 입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얇은 긴팔 이너 티셔츠를 구입하려고 했는데 여전히 생각 뿐이다. 그냥 옷걸이에 걸려 있는거 가끔 꺼내 사진이나 찍고 그러는 것도 나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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