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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모든 것들을 자기화시키는 일

by macrostar 2012.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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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트위터에서 보그걸에 실린 화보 '홈리스 소녀의 레이어드' 룩이 오르내리는 걸 봤다. 스타일은 12월호 기사인대도 꽤 빨리 공개되어 있는 것들이 있다 - 참고 : goo.gl/0CgPo
 
붙어 있는 기사가 재미있는데 '푸석푸석한 머리와 때묻은 얼굴을 하고 뒤죽박죽 옷 보따리를 들고 거리를 배회하는 홈리스 소녀.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소녀, 레이어드 룩의 마스터임이 분명하다. 그녀의 레이어드 룩이 궁금하면 오백원!' 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소녀" 라는 부분이 약간 애매하긴 한데 1) 홈리스인데 마스터, 2) 홈리스인 줄 알았는데 마스터 둘 중 하나다. 둘 중 어떤 것이든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다.

이런 화보가 완전 독창적인 건 물론 아니다. 존 갈리아노나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한 시즌을 온통 홈리스에 할애한 적도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맨, 2010 FW 

파리나 밀라노에 살지 않아봐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꽤나 디테일한 부분(많은 노숙자들이 들고 다니는 시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가방이나 매트같은)까지 패션쇼 안에 끌어다가 소품화시켰다고 들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맨 위에 올린 링크의 보그걸 화보는 재현의 질이 약간 떨어진다. 우리나라 노숙자의 필수품은 일단은 박스다. 얼마 전에 경복궁 역 안을 서성거리다가 노숙자 몇 분이 모여 박스에 대한 평가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들리기로는 겨울 난로가 들어있는 박스가 두텁고 튼튼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나가면 좀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홈리스'라는 이름으로 외국의 홈리스 풍으로 화보를 구성했다. 그래봐야 이것저것 가져다 레이어드 룩을 구현하는 정도의 작업일 뿐이었지만. 그리고 뭐 따져보면 저런 레퍼런스를 가진 채 요즘 개콘에서 꽃거지도 나오고 하면서 화제니까라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다는 생각이 든다. 기사 아래 댓글들도 그런 분위기다.



패션은 여하튼 이렇게 아무거나 가져다 자기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사실 뭐든 아이템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그게 풍자든, 정말 쿨하다고 생각하든) 요즘 들어서는 그런 걸 매우 능수능난하게 하는 편이다. 사실 그런 부분이 대중 예술의 한 부분으로 패션의 장점이기도 하고, 또한 그 손쉬운 방법론이 만드는 기계적인 습성은 치명적일 수도 있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정작 패션쇼와 화보 같은 것과는 가장 먼 곳에 있는 홈리스는 물론이고 마크 제이콥스처럼 안티 패션을 패션에 포섭한 사람도 있다. 민속 의상을 끌어 오기도 하고 심지어 Prostitute 룩 같은 걸 선보이기도 하고, 데모하는 모습이나 테러범이 경찰과 싸우고 체포되고 하는 모습을 끌어오기도 한다.


Steven Meisel의 State of Emergency 화보 시리즈 중.

반 세계화 시위가 한창일 때 프랑스에서는 시위 복장 비슷한 느낌의 Commune de Paris(링크)가 나오기도 했고, 며칠 전 포스팅에서 말했듯이 벨스타프에서는 체 게바라가 입고 다니던 초기 버전의 트라이얼마스터 자켓을 레플리카로 제작해 팔기도 한다.

이런 패션쇼나 화보들은 어떤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생뚱맞은 것들도 있다. 물론 가끔 문제도 생긴다. 얼마 전 빅토리아's 시크릿 패션쇼에서 인디언 복장을 입은 모델이 꽤 문제가 되면서 결국 패션쇼 사진에서 제외되고 모델은 아무 것도 몰랐다고 사과를 했다. 이런 것들이 형벌의 대상은 아닐 테지만 여하튼 무지가 잘못을 소거시키지는 못한다.



이런 옷을 가지고 벌이는 폭넓은 활용은 럭셔리 패션계에서만 이러는 게 아니다. 스페인의 Prostitute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거리에서 패션쇼를 하는 경우도 있고(http://youtu.be/T3Glr0pPzH4), 약간 극단적으로 우크라이나의 FEMEN이나 모피 반대하는 PETA처럼 의도적으로 옷을 소거시킨 누드 시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옷은 활용하기가 쉽다.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부분이고, 장소와 상황에 따라 희미하지만 어떤 규칙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므로 패턴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위에서 말한 화보나 갈리아노, 비비안의 패션쇼처럼 계급 격차를 떠오르게 하는 패션쇼 같은 건 반감을 일으키는 부분도 있다. 모던 타임즈에서 자본주의 초기 부르주아들이 '어린 애들은 책상 밑에 들어가 끊어진 실을 잇게 할 수 있으니 좋아, 우하하' 하며 나누던 그들만의 농담이 생각나기도 한다. 상대가 들을 수 없는 곳에서 그들을 타자화시키는 동시에 사람을 뺀 나머지 부분을 자기화시킨다.

하지만 이런 걸 보고 시크하잖아 낄낄낄 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그렇다고 심각하게 대꾸하는 것도 역시 대책없다. 물론 수위와 맥락은 굳이 저런 방면으로 접근을 시도한 디자이너나 사진 작가나 에디터가 책임져야 하겠지만 뭐 어쨌든 패션은 이런 '유연한' 속성을 가지고 있고, 그건 이 장르가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면이다. 혹시나 종종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한다고 그걸 제외시키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이왕 가지고 있는 거면 적극적으로 폭을 넓히며 활용해 가며 좀 더 가능성을 실험해 보는 게 좋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렇게 소재 하나 잡아 끌고 가는 거는 잔뜩 나와있고, 벌써 누군가 하면서 이미 멀리 지나갔으니 그걸 이제 와 다시 들춰보겠다는 그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잡지의 '패션 에디터'라면 이왕 파고들 거면 좀 더 깊숙하게, 그러면서 덴서티를 높게 끌고 가면서 어떤 새로운 영감이라도 불러일으키는 정도는 되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정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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