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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헤리티지는 없으면 사면 된다

by macrostar 2012.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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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벨스타프가 부쩍 헤리티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터 사이클용 가죽 점퍼와 왁스드 코팅으로 된 혁명/테러범 용 자켓을 만들다가 2011년 노선을 럭셔리 시장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홈페이지도 예전엔 폭주족 비슷한 젊은 남녀들의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모터사이클을 옆에다 두고 있는 젯세터 분위기다. 자켓 가격은 예전과 별 다를 게 없이 고만고만하지만, 새로 출시된 가죽 가방들은 대략 8천불을 오르내린다.

다만 예전에 말했듯이 2011년에 벨스타프를 사들인 곳은 미국의 화장품 왕이라는 Slatkin, 여기에 CEO Martin Cooper가 주축이 되어 이 리뉴얼을 이끌고 있는데 뭐랄까 살짝 촌티가 좀 난다고 할까. 광고나 사이트를 보고 있자면 갑자기 부자가 된 집에 놀러간 기분이 든다. 우디 알렌의 스몰 타임 크룩스 정도는 아닌데 좀 그렇다.

이들은 그래도 다행인게 벨스타프는 꾸준히 살아 있었고, 이미지는 폭주족이지만 원래 고급 라인을 가지고 있었고, 90여년 전통의 나름 헤리티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리뉴얼이 용이한 편이다. 오토바이 타는 분들의 층과 젯세터의 층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 이봐들, 이게 말야 오토바이 좀 탄다는 사람들은 80년 전쯤 부터 사고 싶어 안달하던 고급 브랜드야~ 롤렉스 차고 다니던 체 게베라도 이걸 입었었지 같은 일화들이 잔뜩 있어서 써먹을 데가 많다. 다만 요즘 들어 이런 터프한 일화를 밀고 싶어하는 거 같지는 않는 것 같다.

럭셔리 계열을 크게 나누면 젊고 독창적인 크리에이터가 이끌어 가는 회사들이 있고, 또 하나는 고고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회사들이 있다. 전자는 헤리티지 같은 건 없고, 운이 좋고 시장의 흐름을 잘 읽어 낸다면 지금부터 헤리티지를 쌓기 시작하는 처지다. 수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뚜렷한 이미지와 모종의 전통의 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 그 브랜드의 헤드 역할을 담당하는 자에게 위기가 생기면 지속 자체에 문제가 생기거나, 모기업에서 애를 좀 쓰면서 새로운 인물을 물색해야 한다.

문제는 헤리티지 형 브랜드들이다. 에르메스, LV, 랑방, 디올, 샤넬같은 기라성같은 브랜드들이 포진해 있고, 헤리티지라는 게 하루 아침에 문득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좀 더 비싸고,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풍의 브랜드 런칭을 원하는 입장이라면 어깨를 나란히 하는 브랜드를 내놓고 싶어도 곤란하다. 엊그저께 만들어 놓고 헤리티지 어쩌구 하는 건 싸구려 사탕발림 만도 못하기 때문이다(물론 이런 와중에도 특히 국내 대기업 발 브랜드 카피에 보면 그런 이야기를 써놓는 곳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므로 이제 방법은 '발굴'이다. 벨스타프처럼 위기가 닥치거나, 소유주가 별 관심이 없어진 브랜드를 사들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이름만 남아 누군가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라진 브랜드를 찾아내 재 발굴한다. 이런 경우에는 헤리티지 부여가 훨씬 쉽다. 물론 그 당시에도 잘 나가던 회사여야 한다. 고려 청자는 고려 시대에도 최고급품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최고급 취급을 받는 거지, 당시 장터..(는 없었나?) 아니 집에서 만들어 사용하던 물건들은 골동품으로 민속 박물관에는 들어가도 고급품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난 브랜드들이 요즘엔 꽤 있다. Balenciaga도 사실 사라졌다가 사업가를 만나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를 데려오며 다시 살아났고, 최근에 성공적이었던 Goyard의 재런칭이나 LVMH에서 에르메스 대항마로 발굴한 Moynat, 그리고 조만간 다시 런칭한다는 쉬아파렐리 같은 곳도 있다. 2005년에 성주에서 인수한 MCM도 비슷한 경우다. 1976년에 뮌헨에서 만들어지고 80년대 후반 조금 잘 나갔던 독일 가방 회사에 미샬스키를 데려다 여러가지 새로운 이미지를 뒤집어 씌우며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이미지는 아무나 만들 수 있지만 '30년 넘은 한때 잘 나간 뮌헨의 가방 회사' 이미지는 아무나 못 만든다.


Finesse and Synquis의 1988년반 Soul Sisters 같은 곳에서 뮌헨 시절의 MCM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 헤리티지는 간단하게 만들 수가 없지만, 일단 성공적인 재런칭에 성공하면 어지간한 마케팅 따위로는 만들 수 없는 '1800년대 말 유럽 귀족들이 사용했던' 같은 일화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제품들이 더 고급화되고, 그러므로 더 비싸져서 보다 효율적으로 큰 이윤을 만들어 덩치가 커지고 있는 패션 회사들을 키워야 하는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이런 식의 발굴은 더 늘어날 것이다. 다음에는 또 어떤 죽어있는 브랜드가 살아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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