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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Balenciaga,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by macrostar 2012.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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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게스키에르가 발렌시아가를 떠난다고 어제 발표되었다. 헬무트 랑, 크리스토프 데카닌, 마르탱 마르지엘라, 이제 누가 남았지? 다음엔 또 누가 이 씬을 떠나게 될까.

사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디자이너들이라면 이런 첨예한 경쟁과 압박, 별로 원하지도 않는 걸 만드는 시스템을 대충 이해하고 스텝을 잘 쫓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니콜라스 게스키에르가 발렌시아가를 나간다는 발표는 의외였다. 역시 너도 그랬었냐... 정도라고 할까. 하지만 그래도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헬무트 랑이나 마르탱 마르지엘라처럼 패션 따위 이제 아듀~는 하지는 않을 거 같고 조만간 돌아올 거 같다.

여하튼 질 샌더는 다 늙으셔서 돌아왔고, 크리스찬 라크르와는 발레복과 항공사 유니폼을 만들고 있다. 존 갈리아노는 어디선가 잘 먹고 살 고 있을 거 같고 알렉산더 맥퀸은 죽었다.

대체 왜? 라는 질문은 너무 뻔하긴 하는데 추측과 팩트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캐시 호린이 Behind the Balenciaga Split이라는 제목으로 이 결별에 대한 짧은 기사(링크)를 올렸다. 기사에 의하면 대략 1년 전부터 회계와 좀 더 상업적인 톤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그 때문에 모기업 PPR(구찌, 보테가 베네타, YSL 등등 소유)과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최근 YSL의 에디 슬리만이 브랜드 운영에 있어 unusual한 자유도를 획득한 부분에 매우 분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캐시 호린이 어떻게 껴 넣은 게 아닐까 좀 의심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에디 슬리만은 터치의 모든 곳에 팔리는 물건에 대한 감각이 투철하고, 그런 게 일류 디자인이지 하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는 타입이고,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그나마 와중에 일종의 발란스를 맞추고 가끔 삐툴어진 자아를 드러내는 타입이라 애초에 가는 길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다. 그러므로 니콜라스 게스키에르가 이제와서 에디 슬리만은 저러는 데! 하면서 화를 냈다는 건 좀 이상하다. 차라리 이 망할 PPR! 이면 몰라도. 물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모기업이 쫓아낼 작정하고 프레셔를 잔뜩 주면서 폭주하지만 않게 하면 버티고 나갈 수 있는 타입이다. 관둘 거였으면 늦어도 2000년대 초반 쯤 관뒀겠지(LVMH로부터 컨택이 이미 있었다는 소문도 있다). 생각해보면 헬무트 랑이 빠져나간 타이밍이 꽤 기가 막히게 좋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내 머리 속에선 헬무트 랑 등장(1986), 헬무트 랑 퇴장(2005)로 패션신의 Period가 갈라진다.



발렌시아가는 긴 역사를 거쳐왔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스페인 산 세바스찬에 1918년 첫번째 부티크의 문을 연 이래 위기가 올 때마다 브랜드의 아이덴터티를 크게 바꿔가며 시대에 적응했고 오스카 드 라 렌타, 에마뉴엘 웅가로, 위베르 드 지방시가 이 하우스를 거쳐 세상으로 나갔다. 1968년 완전히 문을 닫았지만(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1972년 사망) 브랜드는 1986년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1992년 PPR이 인수하며 1997년 당시 25세의 니콜라스 게스키에르가 브랜드를 맡아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1958, 발렌시아가의 드레스.



이제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아이덴터티였던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없다. 발렌시아가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없어도, 니콜라스 게스키에르가 없어도 돌아간다. 새삼스럽지만 어지간한 디자이너 하우스는 원래 이런 곳이 된 지 오래다. 그저 꽤 근사한 자리가 하나 비었고, 이제 몇몇 디자이너들은 두근두근거리며 PPR의 컨택을 기다리고 있겠지.

콘트롤하기 어렵지만 확실하게 잘 팔릴 디자이너를 고를 것인가, 콘트롤하기 쉬운 디자이너를 골라 멋대로 하다가 혹시나 잘 안 팔리면 책임 물리고 쫓아낼 사람을 고를 것인가는 일단 PPR의 몫이다.

 
하퍼스 바자 2012 5월호 샤롯 갱스부그,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사진은 Jean-Paul Goude. 

 
왼쪽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오른쪽은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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