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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옷장

by macrostar 2012.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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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특정 종목을 컬렉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냥 자연스럽게 모이는 것들이 있다. 둘의 양상은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책을 컬렉팅하는 사람인 경우, 혹시나 그가 르네상스적 지식인이 되어 종합 도서관을 차리려는 거대한 꿈이 있는 게 아니라면(돈도 돈이고) 어떤 특정 분야를 파고 들게 되거나 자신이 닻을 내린 자리 주변을 탐색하게 된다. 이 경우에 흥미를 끄는 부분은 한계 지점에 위치한 컬렉션들이다. 어디로 향하고 있나, 어디까지 가 있나 이런 것들.

하지만 이런 컬렉팅이 아니고 그냥 살다가 책을 가끔씩 보는 취미가 있어서 서점에서 둘러보다가, 아니면 누구한테 이야기를 듣거나 신문이나 잡지의 서평을 보고 구입한 경우에는 그 양이 많지는 않겠지만 꽤 재미있는 단편을 보여주게 된다. 물론 정말 한 손에 잡히는 컬렉션이라면 크게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이 경우에는 왜 책에 이렇게 관심이 없도록 인생이 구성되었는가가 흥미거리라면 흥미거리다.

이건 DVD나 CD나, 심지어 컴퓨터 안에 들어있는 mp3 폴더도 마찬가지다. 집 한 구석에 뭔가가 조금이라도 모이기 시작하면 거기에 의지가 부여되어 있든 말든 그 사람의 인생에 걸치고 있는 어떤 것이 들어 있기 마련이다. 상표 취향이나 미적 취향 정도 알 수 있는 선풍기나 냉장고, TV의 상표와 모델명과는 다르다.



옷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단벌로 1년 씩 버티고 있는 게 아니라면 최소한의 컬렉팅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옷을 너무 좋아해서 마음에 드는 건 닥치는대로 사들이는 컬렉팅도 있고,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도 있고(모으는 경우는 잘 없다고 한다), 필요와 취향이 절제적으로 작용된 미니멀한 컬렉팅도 있다.

가장 흥미로운 건 역시 컬렉팅의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 컬렉션이다. 개별로는 목적이 존재할 지 몰라도(이 바지는 저 상의에 매칭하려고 구입했어요, 이 티셔츠는 프린트가 귀여워서 같은), 총합의 목적은 존재하지 않는 게 최고로 흥미진진하다. 이것은 한 인간의 인생과 옷의 관계 그 자체다.
 
이런 컬렉션은 꽤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가끔 잡지에서 패션 에디터 모모씨의 옷장 이야기, 디자이너 모모씨의 옷장 이야기가 나오거나, 케이블 TV에서도 코디법을 알려주기 위해 옷장을 뒤적거리기도 한다. 거기서는 주로 잘된 선택이나 잘못 선택된 옷들을 골라 보여주는 데 치중하기 마련이다.



여하튼 타인의 컬렉팅이라는 건 그 자체로 영감을 주거나 동기 부여가 된다. 첨단 공장들이 내부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듯이 컬렉팅도 그러므로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건 돈을 벌 수 있는 첨단 기술이 아니니 서로들 보여주고 격려하고 충고해야 나날이 발전한다... 고 생각한다.

그래서 잡지에 이런 류의 기사가 실리면 매우 자세히 읽는다. 그리고 가끔 남의 집에 놀러가면 옷장을 뒤적거리기도 한다. 물론 이런 일은 극히 한정적으로 - CD장이나 책꽃이와는 다르다 - 발생한다. 어지간히 알고 지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성별이 다르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나에게는 서랍이 2개 있는 나무 옷장이 하나 있고, 3단 서랍장이 하나 있고, 행거가 하나 있다. 위에 사진은 옷장에서 놀고 있는 겨울 옷들이다. 세탁 최소화를 위해 하나같이 어둡다. 며칠 전에 날이 잠깐 맑고 건조해졌을 때 환기 시킨다고 옷들은 빼고 종일 열어놨다가 다시 집어넣으면서 찍었다. 그닥 요긴한 것들은 없어도 인구밀도는 미어 터지고 다들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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