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붑

10월의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

by macrostar 2026.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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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 만에 잡담성 이야기들을 한 번.

 

1. 도서관에 사람이 많은 기간이라 집에서 일을 좀 했는데 그런 김에 OTT 등에서 보다 말았던 것, 궁금했던 것 등을 정리하는 기회를 좀 가졌다. 여러가지 봤는데 그 중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를 저번에 보다가 졸려서 관뒀다가 이번에 다 봤고,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스도 다 봤다. 이걸 보다보면 "소중히"라는 이야기를 꽤 깊게 다룬다. 소중한 일상, 소중한 자동차.

 

약간 징그럽지만 긍정적이고 밝은 이야기를 해보자면 - 이 영화들 자체에도 그런 민망한 구석들을 전면에 대놓고 드러내기도 하고 - 삶을 소중히 여기고, 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그리고 이런 소중함을 인식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패션도 그렇다. 소모적 패션을 즐기는 방법도 있지만 자신의 생활 방식에 맞게 심사숙고해서 제품을 선택하고 그걸 소중히 여기며 잘 사용해 가는 방법도 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들로 삶을 채워나가려면 일단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도파민도 과다하게 분출된다. 

 

2. 리페어, 멘딩 등은 이런 소중한 사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장식을 위한 데미지에는 큰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름의 반감이 있다.

 

3. 1과 2를 위해서 물건과 주변 더 나아가 자신을 좀 깨끗하게 관리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4. 폴로페스트를 다룬 기사들을 뒤적거리다가 "じゃないほう"이라는 용어를 봤다. 쟈나이호 이렇게 읽나보다. "다른 쪽"이라는 뜻인데 비주류 등을 가리키는 식으로 사용된다. 즉 어떤 폴로 빈티지 매장이 "じゃないほう"를 다룬다고 하면 보통 랄프 로렌의 왕도라 할 BD 셔츠, 치노 팬츠, 트위드 재킷 이런 게 아니라 코듀로이 노포크, 파이어맨 코트, 피싱 재킷 등등 빈티지, 디테일, 마니아 위주의 제품들을 다루는 경우를 말한다. 뭔지는 알겠는데 이런 구분이 좀 뭐랄까... 거슬리긴 한다. 왜 거슬리냐를 생각해 보면 이게 필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고 그런 차별화의 의도가 너무 다분하기 때문이다. 제품은 모든 사람 앞에서 평등하다. 그렇기 때문에 진귀한 레어 재킷보다 수십 년 간 꾸준히 입었다는 치노 팬츠를 보는 게 훨씬 재미있다.

 

5. 타투나 피어싱에 별 관심이 없다. 패션의 좋은 점은 삶이 변할 때, 생각이 바뀌었을 때, 당장 기분이 내키지 않을 때 입던 옷을 다 벗고 전혀 다른 옷으로 입을 수 있는 제로 세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미련 없음, 얽메임이 없음이 패션의 가장 즐거운 부분이다. 여기에 덧붙여 타고 난 부분, 생긴 모습과 키, 팔다리 길이에 대해 운운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1에서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이런 것들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가꿔나가는 게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패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은 약간 가능하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이 있겠지가 결론이지만 그래도 변화가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생긴 거 가지고 이러쿵저러쿵은 불가능하다. 어쩌라고 밖에 답이 없다. 그냥 그런 걸 불편하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너의 눈의 잘못일 뿐이다. 이걸 좀 연장해서 생각해 봤을 때 타투와 피어싱은 제로 세팅이 불가능한, 혹은 꽤나 어려운 영역을 취향에 근거해 붙이는 거다.

 

그런 생각을 가지는 걸 존중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뭔가 극단의 곳까지 인생을 끌고 가면서 사는 삶을 약간 존경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의 변하지 않는 부분에다가 뭔가를 더 붙이고 싶은 의지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별 관심이 없다. 귀걸이 정도는 근사한 걸 종종 보는 데 타투는 예쁘고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더 강해진 거 같기도 하다.

 

6. 그런데 얼마 전 자판기 옆 벤치에 앉아있다가 옆에 사람들이 스웨터에 보풀이 생기면 버린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낡은 걸 버리는 행위의 정당함과 낡은 걸 계속 입는 행위의 비루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저것이 시대 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세계관이라면 2의 리페어는 비싼 비용을 들여 만들어 낸 장식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거 같다.

 

이런 어긋남이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약간 궁금해졌는데 균열이야 한참 전부터 있었겠지만 스트리트 패션의 메인스트림 화, 부의 전시 방식의 표면화 등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코로나 판데믹 전후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런 균열이 극복이 어려울 정도로 커져있기 때문에 근래의 패션에서 근본적 재미 없음, 지루함 같은 걸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진다. 생각해 보면 폴로페스트에서 빈티지 폴로 제품을 뒤적거리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다들 다른 사상 기초를 가지고 똑같은 걸 손에 쥐려고 한다라는 점에서 약간 재미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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