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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27SS의 시시함에 대해서

by macrostar 2026.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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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SS 컬렉션이 마무리가 되었다. 요 앞 몇 편의 글에서 파편적으로 언급하기는 했지만 이번 패션 위크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은, 뉴욕과 런던이야 뭐 그렇다 쳐도, 밀라노와 파리도 시시하고 시원찮기 짝이 없었다는 거다. 현실성이 없고, 패션 미디어와 소비자 사이는 유리되어 있고, 누구도 설득하지 않고 설득당하지도 않고, 신선함과 새로움도 없다. 그냥 비싸보이는 촌티나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잘 하던 걸 버려두고 신선함을 불어넣으려고 혹은 죽어가는 걸 살리고자 시도하는 패션 연합 거대 기업체의 의자 돌리기는 모두를 수렁에 빠트리며 구시대의 냄새를 풀풀 풍길 뿐이다.

 

저 옷을 가지고 어디서 누가 입으라는 거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 사실은 있고 다들 알고 있다. 그게 이제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과 상관이 없다는 거다. 이런 상관없음은 꼼 데 가르송이나 앤 드뮐미스터의 실험적이거나 기괴한 옷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이 옷들은 대부분 초부유층의 요트 파트에 초대받은 게스트들에게 입힐 거 같은, 입고 오는도 아니다, 옷들만 전시되어 있다.

 

물론 누구나 샤넬과 디올의 옷을 입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런 브랜드들이 시대와 호흡하고 리드하며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는 있다. 27SS가 우리에게 주는 영감은 무엇일까. 아마도 지금의 럭셔리는 2차 대전 때도 오트쿠튀르 컬렉션을 계속 만들고 그걸 구입하고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열리던 파티에 가던 사람들처럼 자기들만의 세계를 또 만들고 있구나 하는 확신 정도가 아닐까 싶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우선은 뭔가를 이끌어 가는 디자이너도 브랜드도 없기 때문에 다들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현대적 초부유층의 탄생 그리고 그 간극이 끝도 없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21세기 들어 많은 젊고 새로운 부유층이 등장했고 럭셔리 패션은 그들의 입맛에 맞고 적당히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영역으로 빠르게 진출했다. 그렇게 한참 비트코인 같은 거로 갑자기 부를 만들어 내 비싼 스트리트웨어 사입던 밀레니얼들에게 럭셔리 로고가 들어간 스웨트셔츠랑 스니커즈 팔며 쏠쏠하게 이익을 챙기면서 끝없이 가격을 올려가면서 보니까 완전 초부유층에게 훨씬 비싼 가격을 붙인 옷만 팔아도 남는 게 훨씬 많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러면서 럭셔리 패션은 품이 많이 드는 전통적 드레스메이킹의 기술들을 활용하며 가격을 끌어 올리며 신흥 부유층 고객을 버리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은 고전적 드레스메이킹에 원단과 부자재 제작에 끝없이 디테일을 더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물은 만들기가 고도로 어려운 옷들을 전시하는 장이 되었고 이 시대와 유리된 옷들은 드레스메이커와 패션 에디터의 감탄이나 자아내는 민속 박물관의 전시품처럼 되어가고 있다. 물론 이런 옷을 입고 갈 자리가 코스프레 파티는 아닐테니 현대적 감각을 더한다고 하고 있는 거 같지만 이 과거로의 회기가 만들어 내는 치명적인 밤티는 피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끝없이 화려하지만 끝없이 지루한 컬렉션이 계속 이어졌을 뿐이다. 사람들이 한때 젊고 생동감이 넘치던 디자이너의 아카이브 컬렉션을 뒤적거리고, 빈티지 매장을 돌아다니고, 일본의 가격대가 좀 있지만 현실적 삶과 적용 가능한 현대적 핏의 웰메이드 캐주얼, 테일러드를 찾아가는 이유가 아마도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의 의도적인 현실 유리와 관련이 있을 거다. 아무튼 다시 월급 모아서 사는 지갑과 가방 브랜드들 - 이런 걸 개인적으로 기념품 브랜드라고 부르고 있다 - 이 되어가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런 데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 같은 게 뭐가 있을까 싶어진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보면 메인스트림이 시시해지고 발렌시아가에서 티셔츠 사려던 비용을 그냥 손에 쥐고 있는 지금이 독립적인 브랜드나 독자적인 패션 미감을 퍼뜨리고자 하는 디자이너들이게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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