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사랑받고 실제로 많이 쓰는 결정적인 제품을 만들어 낸 브랜드가 마주하는 문제 중 하나는 내놓는 신제품들이 자신의 예전 제품과 경쟁을 해야한다는 거다. 구두나 가방 같은 경우는 그런 경향이 좀 덜한데 기본 아이템의 생명력이 더 길기도 하지만 옷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인지 브랜드에서 새로운 이미지 부여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있는 면도 있다. 샤넬의 2.55나 에르메스의 켈리백이 그 무엇보다 완벽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왔고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했던 수많은 다른 가방을 뒤로 하고 여전히 버티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른 요인이 있는 거다.
옷의 경우에는 이런 문제에 대처가 좀 어렵다. 아무래도 가방이나 구두 같은 것들보다는 변화의 폭이 크기 때문일 거다. 이런 브랜드가 꽤 많은데 예를 들어 칼하트의 경우에는 WIP를 가지고 빈티지와 경쟁을 하게 했다. 워크웨어 트렌드가 페이딩 트렌드와 함께 하는 동안 빈티지 쪽이 꽤나 우위였지만 결국 이 전선은 WIP의 디트로이트가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버버리의 경우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버버리는 아직도 트렌치 코트를 붙잡고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꿔가며 계속 캣워크 위에 올려놓고 있다. 물론 트렌치 코트가 대표적이 옷이라는 건 알겠다. 버버리 매장을 찾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위 사진 속 화려한 변형 트렌치를 그냥 지나치고 베이지와 네이비의 캠든이나 카코트 같은 걸 구입한다. 물론 트렌치 코트가 버버리의 근본이긴 하니까 계속 붙잡고 있는 거겠지만 사실 이 러기드한 군대의 옷은 애초에 럭셔리 패션과 불협화음이 있다. 나름 거리감을 가지고 써먹어야 할 아이템이다. 그러는 사이 지난 수십 년 간 글자도 넣어보고, 타탄 체크로 휘두르기도 하고, 말탄 기사 로고를 등에다 새기기도 했지만 그저 결과는 트렌치 코트로 저런 것도 하네 하는 구경 거리 뿐 아닐까.
그냥 스테디 셀러는 계속 내놓고 지금처럼 V&A에서 전시도 하고 하면서 돈이나 꾸준히 벌면서 빈티지랑 경쟁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냥 다른 걸 좀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번 시즌 컬렉션을 보면서도 그냥 저 시스루 시폰 트렌치 코트 같은 거 하나만 짠 하고 나왔다면 그게 더 임팩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에폴렛 뭐 별 난 거라고 점퍼에도 붙이고 스웨터에도 붙이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트렌치 다 빼고 스테디 트렌치 코트 팔아서 번 시드 머니로 다니엘 리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해보라고 해. 챠브 같은 애들이 입으면 어떻고 거리에서 소비되면 어때 폴로, 베르사체, 구찌 다 이런 일 있었지만 그냥 내버려 두니까 원래 자리 찾아갔는데 하여간 이 브랜드는 언제부터 럭셔리였다고 생산자고 소비자고 어딘가 유난스럽다. 아무튼 버버리라는 패션 브랜드의 시작은 트렌치와 타탄 체크가 캣워크 위에 하나도 없을 때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차브들이 너무 쓴다고 없애버렸던 이 모자 다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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