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VDR +Navy 컬렉션 중 저번 가방 이야기(링크)에 이어 스윙탑 재킷(링크)에 대한 이야기. 이 옷은 SS 캡슐로 +Navy를 시작했을 때 처음부터 만들었으면 하는 옷이었다. 봄가을 아우터웨어 류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반영할 구석도 많기 때문이다. +Black과의 관계를 보면 저번에 낸 스포츠 재킷(링크)과 대응하는 제품이라 하겠다.
VDR이 미국이 느껴지는 꽤 터프한 이미지의 옷을 만들고, 내쪽은 러기드한 20세기 초중반 형 코튼과 울 기반 기능성 의류를 좋아하고 여기에 더해 일할 때 편한 옷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게 만나고 합쳐지는 지점을 검토하다가 이번에는 아우터웨어 쪽에서 약간 이 범위의 바깥에서 대안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싶었고, 그러다가 영국 느낌이 살짝 스쳐지나간 옷을 생각했다. 코튼 개버딘 발마칸 코트도 그런 생각의 결과다.
아무튼 지금 타이밍에서 보면 더워지기 시작하는데 무슨 가을 잠바냐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얼마 전 카멜 폴로 코트와 피코트를 뒤적거리다가 내가 더울 때 겨울 옷 차고, 추울 때 여름 옷 찾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관련된 이야기를 해본다.
일단 아무 때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봄버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옷일 수록 너무 캐주얼하게 흐르는 건 약간 별로이기 때문에 좀 점잖은 쪽을 고려했고 그러다보면 역시 영국 상류층의 스포츠웨어로 처음 만들어졌던 바라쿠타의 G9, 그렌펠의 골프 재킷 등 해링턴 재킷 쪽이다. 특히 버버리에서 코튼 개버딘 발마칸의 숏버전 줄여서 만든 봄버 계열이 있는데 그런 방향을 생각했다. 위에 단추 하나, 아래 두 개, 손목에 주름, 사이드 플랩 포켓, 허리에는 스트링과 허리 길이 조정 버튼이 들어있는 재킷이다.
코튼 개버딘의 경우 여러가지 대안을 검토해 보다가 VDR에서 직접 원단을 만들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보다 약간 더 얇은 걸 생각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이렇게 나왔고 이 두께가 범용성 면에서는 더 좋은 거 같다. 지퍼는 +Black에서 바지에 사용했던 브라스 왈데스가 괜찮았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그걸 사용하는 게 좋을 듯 했다. 단추는 신당동인가 동대문인가에 고르러 다녔는데 갈색톤, 버팔로, 얼룩 무늬를 꽤 뒤적거렸다. 옷을 만들면서 단추라는 게 생각보다 비싸다는 걸 깨닫고 있는데 아무튼 딱 좋은 걸 찾아서 다행이었다. 플랩 주머니의 경우 덮개를 안으로 넣을 수 있는 정도의 사이즈다. 예전 폴로 점퍼의 금속 스냅 단추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도 생각을 해봤는데 이왕 시작한 영국 느낌을 끌고 가고 싶었다.
이 주머니 좋아함. 언젠가 써먹고 싶음.
안감은 부드럽고 가벼운 합성 소재 등도 검토를 했었는데 역시 이 캡슐 컬렉션은 코튼의 다양성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가방과 반바지에서 뒤집어 봤지만) 코튼을 뒤적거렸다. 결론적으로 선택한 살짝 까칠하고 주름이 많은 안감은 예전에 VDR의 제품에 썼던 옷감인데(색은 달랐다) VDR 사무실에 옷감 쌓여있는 것들을 들추다가 써보기로 했다. 약간 서늘한 느낌도 나고 컬러 조합도 꽤 좋은 매칭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모든 걸 다 의도대로 하기는 쉽지 않고, 비용 문제도 있는데 종종 이런 우연이 만들어 낸 즐거움이 생기는 게 재미있다.
이런 것들이 내 의견의 반영이었다면 단추 구멍의 세로 스티치, 한 가운데가 아니라 살짝 치우쳐져 있는 프론트 지퍼 라인 등등은 VDR 쪽의 제조 취향 반영이라 하겠다.
뒷면 구석에 오렌지 로고를 페인팅했기 때문에 뒤에서 보면 이런 모습이 된다.
코트와 스윙탑, 티셔츠와 가방, 모자, 반바지 등이 이번 +Navy에 포함되었는데 보다시피 한번에 입는 구성이라기 보다는 가지고 있는 옷에 합쳐서 매칭할 수 있는 시스템을 생각해 봤다.
이미지 적으로는 예전에 "아빠는 오리지널 힙스터"라는 책을 번역한 적이 있는데 힙스터의 옷이 된 빈티지한 옷들의 예전 스냅 사진과 설명으로 이뤄진 책이다(링크). 모니터가 아니라 사진첩의 빛 바랜 필름 인화 사진 같은 분위기에 약간의 빈정댐, 약간의 따스함, 햇빛과 초록, 들판과 사이키델릭 등등이 있는 사진들인데 SS 컬렉션이니까 만든 옷을 입고 사진 속에 들어가도 크게 무리가 없으면 좋겠다 뭐 이런 류의 생각을 했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혹시 더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남겨주세요. 다른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될 때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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