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원고도 그렇고, 이벤트가 이것저것 좀 있어서(가전제품 수리, 잠깐의 여행 등등) 2025SS를 많이 보고 있진 못하다. 중요한 것만 챙겨 보는 정도. 아무튼 방금 전 디올의 2025 SS를 봤다. 유튜브 생중계였는데 옆에서는 양궁 활 쏘고, 피켓 든 시위대도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면서 캣워크 모델들 뒤통수만 보여주고 등등 몇 가지 일들이 있었던 거 같다. 대형 패션쇼 시위 피켓은 은근 자주 보이는데(슬쩍 지나가 버리는 기술도 나름 발전하고 있다) 이러다 보면 케이팝 음방처럼 지연 중계 같은 거 하게 되는 거 아닌지 잠깐 생각 함.
FF 채널에 올라온 디올 패션쇼 캡쳐. 디올 공식 유튜브에서도 곧 올라올 듯.
아무튼 치우리의 디올은 항상 그러하듯 우아하고 섬세하고 완벽하다. 좋냐 그러면 좋다. 유명한 분들이 너무 많이 입었고 국내에서는 모 여사님이 자주 입어서 이미지에 왜곡이 생겨나긴 했다지만 나도 꿀벌 화이트 셔츠 같은 거 가지고 싶다.
하지만 재밌냐 그러면 그건 좀 문제가 복잡해진다. 너무나 발란스가 잘 맞춰져 있어서 예외의 재미가 없다. 시대의 패션이란 역시 약간 비툴어진 데가 있기 마련이다. 비뚤어진 부분이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자극하고 그게 착장의 질서에 영향을 미친다. 치우리의 디올은 비툴어진 데가 없다. 또한 고전적이냐 하면 그건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현대적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보고 있자면 분명 고저스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걸 끝까지 끌고 가는 모습이 만드는 약간의 감동도 있지만 그 어딘가에서 멈춘다.
물론 이런 옷은 영역이 넓다. 어디에 집어 넣어도 대체적으로 멋진 사람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툴어져야만 하는가 라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1990년대의 아르마니는 이 비슷한 균형감으로 시대의 소명을 수행했다. 재미는 없어도 의미는 있다. 치우리의 디올이 의미를 가지려면 뭐가 더 필요한 지는 잘 모르겠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크게 변하진 않을 거 같긴 하다.
아무튼 이 쇼를 보면서 미우미우의 해링턴 재킷과 랄프 로렌의 해링턴 재킷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다. 미우미우의 해링턴 재킷은 아이비 패션을 비틀었고 2023년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가 되는 데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이 비툴어짐을 가져다 즐겁게 입는다. 랄프 로렌의 해링턴 재킷은 룩북에서는 재미가 없는 전형성 그 자체지만 누가 가져다 입으면 아이비가 되고, 누가 가져다 입으면 힙합이 된다. 이건 전형적으로 보이지만 랄프 로렌의 옷 자체에 어떤 빈틈이 있기 때문이고(질감과 색감, 핏 등등) 사람들이 그걸 채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른 옷은 그게 잘 안 된다. 이게 랄프 로렌의 의도인가 하는 건 잘 모르겠다. 결과는 그런데 그런 분인 거 같진 않음.
아무튼 치우리의 디올 쇼는 챙겨볼 만 한 건 맞고 2025SS의 배경 음악인 FKA twigs의 EUSEXUA도 상당히 잘 어울렸다. 며칠 전에 싱글로 나온 곡이던데 가져다 썼더만. 앨범은 내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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