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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4월 5일, 서울 패션위크 가벼운 관람 후기

by macrostar 2012.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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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공원에 다녀왔다. 예상했던 바 초청장 수급이 원활치 않아서 두 개의 패션쇼만 보고 왔다. 아쉽게 TENT 1에서 열리는 서울 컬렉션 본진의 쇼는 못봤다. 티켓을 판매하길래 잠시 고민했는데 그냥 두 번째 쇼를 보고나고 철수했다. 지금 생각은 그래도 이왕 간 건데 보고 오는 게 나았나 생각이 들지만(요즘 기분같아서는 손정완처럼 번쩍번쩍한게 좀 보고 싶긴하다), 몇 시간 만 앞으로 기억을 되돌려보면 하여간 너무 추웠다.


올림픽 공원은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비교하자면 SETEC쪽이 좀 나았던 것 같다. 텐트라는 건 역시 좀 이상하다. '임시'라는 느낌이 너무 강하다. 물론 디자이너의 시즌 이미지에 보다 더 충실하고자 한다면 파리나 밀라노처럼 지하철 역에서도 하고, 무슨 광장에서도 하고, 어디 박물관에서도 하고 하듯이 장소 헌팅을 다니고, 그 자리에 캣워크와 무대 장치를 설치하는 방법도 있을 거다. 하지만 품이 많이 든다. 보러 돌아다니는 사람도 피곤하다. curtail과 lavish 사이의 절충점을 찾는 건 역시 필요하다. 서울 패션위크의 지금 규모를 생각하면 크게 불만은 없다.


사진은 한 장도 안 찍었기 때문에 소울팟(Soulpot) 이미지 컷. 이번 시즌 주제는 '여백'.


두 개의 패션쇼는 재미있었다. 여기서 재미있었다는 말은 적어도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크게 솔깃하진 않았다. 여기서 솔깃하다는 말은 '오오오~'하고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오늘 놀란 게 있다면 패션쇼가 아니라 소녀시대 수영이가 얼마나 말랐는지 확인한 것 정도다. 얼마나 말랐는지 사람이 입체감이 없어 보였다. 패션쇼에 연예인들 초대라니 흥, 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소녀시대래 하니까 오, 어딨냐 하고 구경하게 된다.. -_-

사실 보고 듣는 것마다 솔깃하면 그것도 피곤한 세상이다. 알맞은 비율로 재미 정도가 있으면 기쁘고, 또 어떤 건 재미마저 없어서 잠깐씩 우울해하기도 하고, 간간히 형편 없는 걸 굳이 찾아갔다가 욕하는 재미도 좀 있고, 또 아주 가끔은 솔깃한 것들이 나타나 깜짝 놀라며 지나온 제 인생을 반성해보고 하는 게 사는 일이다.

옷을 경험하는 건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대충 보는 것(평면 - 입체), 입는 것(시착 - 오랜 세월)으로 나눌 수 있다. 보통은 사진, 유투브을 통한 '보다-평면' 정도다. 요즘은 사진들이 워낙 잘 나와서 디테일은 오히려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이쪽은 사실 정보 유입이 너무 많아서 걸러 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패션쇼나 쇼윈도의 마네킨을 통해 '보다-입체'를 경험할 수 있다. 유투브가 제 아무리 빙빙 돌면서 찍어도 역시 보는 거하고는 다르다. 옷이 사람을 어떻게 감싸고 있는 지, 어떻게 휘어지는 지, 어떻게 끊겨있는 지 보다 확실히 볼 수 있다. 소재의 감이라는 게 있으니(개인적으로 옷감들이 만드는 다른 촉감, 그리고 그것이 만드는 시각적 차이들을 무척 좋아한다) 만지는 것 까지 하면 좋겠지만 마네킨이 아니면 그럴 순 없다. 


이런 걸 떠나 패션쇼라는 건 또 비현실적인 어떤 게 있다. 쇼장은 컴컴하고, 음악은 쿵쿵대고, 모델들은 쇠꼬챙이 같이 말라있다. 이런 광경은 적어도 '나의' 현실 세계에서는 볼 수가 없다. 또 만약 이런 세상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면 나의 '현실 세계'가 마치 그로테스크 동화처럼 너무나 비 현실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 둘 간의 타협점 따위는 사실 찾기가 어렵고, 그러므로 패션쇼를 퍼포먼스로 인식하게 된다. 정작 매장에 깔릴 새 옷만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면 이렇게 요란한 짓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패션쇼는 이번 한 시즌,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보이고 싶다하는 디자이너의 의지의 발현인 게 좋다. 그저 지금 우리는 이쯤 하고 있어요 정도만 보여주려는 쇼는 실망스럽다.

이런 이미지가 잘 구축된다면 사람들은 백화점에서 옷을 보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함께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프라다 매장에서 지갑을 만지작 거리며 컬러풀한 꽃 무늬로 둘러쌓여 사뿐사뿐 걷는 새하얀 여자 아이들의 모습을 둥실 떠올리는 것처럼, 또 지방시 매장에서 티셔츠를 만지작 거리며 온통 검은 배경에 수염을 기른 날카로운 인상 아저씨가 성큼성큼 걷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측면에서는 오늘 본 두 쇼는 다 아쉬운 면이 있었다. 만약 내가 바이어였다면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패션쇼라는 건 역시 재미있다. 다만 다음 시즌에는 어떻게 프레스 등록을 하든, 아니면 어디 야매 매장이라도 차려서 바이어 등록을 하든 해야지, 이거 원 초대권가지고는 너무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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