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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Teddy Boy - 서브컬쳐 시리즈 3

by macrostar 2012.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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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dy Boy - Mod - Skinhead - Punk - Mod Revival - Casual - Acid House - Madchester/Baggy 

드디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 서브컬쳐 시리즈의 순서상 맨 앞 Teddy Boy. 나머지 시리즈는 맨 아래 Tag에서 서브컬쳐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 Teddy Boy, Teddy Girl

테디 보이는 2차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이 끝나자 당시 돈이 좀 있는 10대들이 1900년 초반 에드워드 시대의 댄디들이 입는 스타일을 따라입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새빌 로우에서 만들고 있던 스타일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드레이프 자켓에 드레인파이프 바지로 시작했는데 곧 자켓에는 카라, 커프, 포켓 트리밍이 붙고, 바지는 더 넓어지거나 더 좁아졌고, 비틀 크러셔(재질이 스웨이드인 경우 Brothel Creeper로 부른다, 역시 두터운 밑창의 반짝이는 구두)같은 구두를 신고, 머리는 ducks arse라고 부르는 스타일로 고정시켰다.  

Ted라고 불리던 이 사람들은 대부분 노동 계층의 자녀들이었지만 자켓이나 바지 같은 경우 대부분 테일러 메이드로 대단히 비쌌다. 전쟁을 거치던 시기의 궁핍/가난를 옷 모양으로 피하려는 경향도 있었다. 음악 면에서 이들은 주로 락커빌리, 록앤롤이나 재즈를 들으면서 춤을 추는 걸 좋아했다. Ken Mackintosh의 The Creep같은 곡이 대표적인 테디 보이풍의 곡이고, 1955년경부터 록앤롤이 들어오면서 엘비스 프레슬리나 Bill Haley 같은 뮤지션이 인기를 끈다.


이런 느낌.



Ducks Arse 머리



Brothel Creepers 슈즈, 양말이 보일 정도로 짧게 롤업한 팬츠.

테디 보이는 특정 스타일을 처음으로 맞춰입은 10대 그룹, 그리고 이를 통해 틴에이지 마켓이 열리게 한 그룹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최초로 큰 명성을 얻은 10대 사회 반발 폭력 그룹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입고 다닌다는 건 일종의 애티튜드다. 당연히 언론에서는 이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투영하고 경찰의 단속도 늘어난다. 

그럼에도 거리에서의 패싸움을 비롯한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은데 1953년에 존 버클리라는 10대가 테디 보이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1958년에 노팅힐 Race Riot이라는 대규모 사건이 발생한다. 2차 대전후 늘어나고 있던 카리브해 출신 이민자들과 테디 보이들 사이의 폭력이 발생하고 100여명이 다치고 9명이 체포된다. 이 Riot에는 Joe Strummer와 Paul Simonon도 참여했는데 나중에 The Clash를 만들고나서 발표한 White Riot이라는 곡이 이때 경험이 바탕이다.


1957년, 10대의 Life. 오른쪽 아래는 Zoot Suit라고 1940년대에 유행하던 스타일이다.



테디 보이 뿐만 아니라 Teddy Girls도 있다. Judies라고도 한다. 이들 역시 주로 14, 15세에 학교를 나와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로, 특히 런던의 가난한 지역에 거주하는 아이리쉬 이민자 집안 출신들이 많았다. 역시 드레이프 자켓, 벨벳 칼라, 펜슬 스커트나 호블 스커트, 롤업 진, 플랫 슈즈나 브로델 크리퍼, 그리고 긴 끈의 고급 클러치 백 같은 것들이 특징이다. 


폭력이 얽힌 언론의 집중 포화와 경찰의 단속, 큰 사건들 그리고 Mod의 등장으로 테디 보이는 서서히 사라져간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 다시 락커빌리 붐이 일면서 Teddy Boy Revival이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한다.



* Teddy Boy Revival

1970년대 들어 락커빌리 뮤직들이 다시 중흥하면서 테디 보이 옷들도 관심을 끈다. 이 중심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다. 1971년 처음 킹스 로드에 Let it Rock이라는 매장을 냈을 때 50년대 오리지널 옷들을 팔았다. 50년대 옷들이니 당연히 테디 보이 스타일이었지만 곧 자기 스타일로 개량을 한다. 1974년에 매장 이름이 Sex로 바뀌었고 역시 페티시 풍의 액세서리로 테디 보이 제품들을 판다.

1977년이 되어 Seditionaries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이제는 온리 Punk 옷가게가 되었는데 테디 보이 옷들을 가져다 자켓에 옷핀을 단다던가, 브로델 크리퍼에 페인트를 칠한다던가 하는 여튼 믹스 앤 매치가 있다. 이 Teddy Boy와 Punk의 관계는 좀 애매하고 복잡하다. 1970년대 복귀한 테디 보이는 당시 락앤롤을 새로 듣는 어린아이들도 있었지만 1950년대 테드로 살다가 20살을 더 먹고 다시 그 옷을 입고 나타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니 라튼(Sex Pistols) : Ted와 Punk는 일단 나이대가 다르다. 테드들은 늙었고, 아빠들이고, 어린 아이들과 함께 다닌다. 펑크는 다들 어리다. 늙은이들과 싸우러 나가다니, 웃기는 일이다. (존 라이든의 No Irish, No Blacks, No Dogs 1993에서)

테드와 펑크의 결정적인 차이 중에 하나는 역시 듣는 음악이다. 70년대 테드들 중에는 '1959년에 음악은 끝났어' 이러는 사람도 꽤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Crazy Cavan, The Flying Saucers, Whirlwind 같은 밴드의 음악을 들었다. 

이 테드에서 펑크로 넘어가고, 어느 부분에서는 겹치는 미묘한 구분들은 서로의 경쟁 의식을 자극시켰고, 결국 충돌들이 발생하게 된다. 70년대 리바이벌 시기 처음은 Mod와 락커의 대결이었고(저번 Casual에 대한 포스팅에 사진이 하나 있다), 그 다음이 Ted와 Punk의 대결이었다.


테드들은 특히 펑크가 옷입는 방식을 통해 자기들을 놀리고 조롱하고 있다는 인식을 많이 하고 있었다. 테드 입장에서 펑크들은 드레이프를 입고 있으면서 그걸 찢고 다니고, 브로델 크리퍼에 페인트 칠을 하고, 락앤롤을 하는 거 같은데 그걸 제대로 하고 있지도 않으면서(펑크 음악 이야기다) 테드들을 몰아내야 되라고 소리나 외치는 놈들이었다. 거기에 펑크 신이 열풍을 일으키면서 테드들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 신 바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잘 구분도 못한다는 사실도 있고 등등의 이유로테드들은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1976년 authentic 락앤롤을 틀어달라고 항의하며 BBC 라디오까지 행진하는 테드와 주디들. 이것 때문에 BBC 라디오 1에 토요일 오후 Rock n Roll 라디오 쇼가 편성되었다고 한다.

테드들은 좀 더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자주 폭력적이 되어간다. 그리고 10대들은 또 그런 폭력성에 매료되었다. 펑크 계열의 뮤지션들은 자주 폭행을 당했고, 싸움이 커지기도 했다. 언론들도 그걸 이용했다. 킹스 로드에서 토요일에 벌어지는 싸움들은 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되었고, 어떤 것들은 조작되기도 했다(신문 기자들은 돈을 주고 테드들한테 돌을 던지라고 사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꼭 이렇게 안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고 Leee Black Childers(Johnny Thunders & The Heartbreakers의 매니저다)같은 사람은 Ted와 Punk의 조인트 공연을 추진하기도 한다. 자니 라튼은 테드 스타일로 입고 Roxy에 나타나 그를 못 알아본 펑크족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거기에 Ted와 Judies, Punk와 Punkette 등 남녀 문제가 얽혀 웃기는 일도 많이 있었다.



Punk Rock Chick과 사랑에 빠진 23세 Teddy Boy의 고민 상담. 굉장히 절절하다. 지금은 잘 사는지.



* 지금의 테디 보이

테디 보이 풍의 아이템들은 지금도 여러가지로 응용되어 패션신에 등장한다.

 
Prada의 Brogue




왼쪽은 Celine, 오른쪽은 Dolce & Gabbana. 둘 다 2011 FW


이런 거 말고 왕년의 테드들이 지금도 가끔씩 모인다는 즐거워보이는 모임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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