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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군중 속에서 투명해지는 방법

by macrostar 2012.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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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PAT 본사가 있다. 옛날에는 독립문메리야쓰였던 회사다. 공장도 있을거다. 예전에 일 때문에 방문했던 적이 있다. 대표 이사가 창립자 3대 째인가 그런데 외국에서 경영 공부하고 상당히 야심있는 분이었다.

어쨋든 이 회사가 이태리 아웃도어 브랜드 NEPA를 사들였다. 미국 진출을 노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NEPA 쇼핑몰에서 snowpeak 옷도 판다. 스노우 피크 텐트, 캠핑 용품 이런 건 다른 곳에서 들여오고 있었는데 얼마 전 시장을 접고 나갔다. 대신 옷 상표권은 여기가 받았나보다.

사실 네파도 스노우피크도 창대어패럴인가 하는 회사에서 만드는 OEM이다. 일본 스노우피크 홈페이지에 가보면 같은 모양의 라이트 다운 파카를 팔고는 있는데(일본 쪽이 10만원 가량 더 비싸다) 동일 제품인지는 모르겠다. 일본 쇼핑몰은 만든 나라 표시가 안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본사가 있기 때문에 가끔씩 창고 대 방출 세일 같은 걸 한다. 소식 들리면 종종 가는데 이런 곳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름 굉장하다.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아주머니들을 뚫고 무우를 사야 되는 게임을 한 적 있는데(유재석 결혼 발표 즈음이었을거다) 그와 거의 비슷하다. 파카 구입하러 온 점잖은 등산객 아저씨는 옷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집에 갈 수도 있다. 나도 뭐, 이왕 가면 막 뛰어들고 본다.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_-).

힙스터스럽게, 여피스럽게, 갑부 분위기 나게, 촌티나는데 뭔가 맞춘게(습관이 된 감각도 마찬가지) 분명하게 등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나름 멋지게 하고 다니는 사람도 확 늘어났고 각자 나름대로 스타일을 완성해 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나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오직 필요에 의해서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뭔가 사면 된다. 뭘 집어들어도 집에 있는 뭐랑 맞춰 입어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된다. 무심의 경지는 훈련이 필요하다. 세탁은 귀찮으니까 어두운 계통일 수록 좋은데, 블랙은 은근히 관리가 곤란하다.

그러고나면 어디든 사람 많은 곳에 있어도 투명해진다. 바로 옆 사람이랑 자켓이든 바지든 갈아입어도 전혀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씩 이게 뭐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울컥하기도 하지만, 현재로서는 뭔가 노선을 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가능한 무의지의 길을 걷고 있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데, 지하철을 타고 있으면 내 옆자리가 비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도 앉지 않는다. 딱히 부랑자 컨셉도 아니고,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혹시 나를 눈여겨 봐도 집에 들어가서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내가 떠오르지 않을 뷰를 추구하고 있다. 이렇게 투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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