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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그렇게 엄정한 세계가 아니다

by macrostar 2024.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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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그다지 논리적으로 엄정한 세계가 아니다. 거의 모든 게 다 임시적이고 임의적이다. 예전의 기능성 옷들이 재미있는 건 약간 터무니없을 정도로 대충 떼우는 임기응변의 흔적이 눈에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젖는 게 문제다, 합성 섬유를 붙이자. 주머니가 모자란데, 빈 곳에다 붙이자. 엘보가 자꾸 해진다, 덧대자. 그래도 해지는데?, 더 두꺼운 천을 덧대자. 거의 이런 식이다. 

 

서브컬쳐에서 많은 일상 의류, 기능성 의류를 가져다 쓴다. 모즈는 왜 피시테일을 입었나, 헬스 앤젤스의 바이커 컷은 어떤 과정을 거쳤나, 1920년대 뉴욕의 오버올스 클럽은 어쩌다가 오버올스를 입었나. 대부분 논리적 귀결로 도달한 게 아니다. 입던 옷, 주변에서 보이는 옷, 영화에서 본 옷이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럴 듯한 의미가 생겨서 붙기도 한다. 그렇지만 전후를 혼동하면 곤란해진다.

 

 

여기에 의류 제조 기술에서 딱히 이노베이션을 할 동기가 없다. 새롭고 효율적인 옷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걸 만들고, 시행착오를 겪고, 정착시키는 비용이 더 크다. 그러므로 그냥 입던 거 입는다. 3D 프린팅이 해결책이 될 지도 모르지만 겹치는 시간이 한동안 존재할 거다. 어차피 휴먼은 두 팔, 두 다리, 직립보행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옷은 거기에서 잘 벗어나지 못한다. 옷의 한계에 도전하는 패션도 마찬가지다. 그걸 뛰어넘는 창조적인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거기서부터는 이미 옷이나 패션의 영역이 아니라 아트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케케묵은 예전의 방법론은 계속 지지된다. 컬렉터들은 옷에 대한 태도가 이미 다르다. 옷, 패션을 대하지만 역시 이미 의(衣)의 영역은 아니다. 몇 년도에 뭐가 어떻게 바뀌었고, M65를 견장 없는 1세대, 견장 있는 1세대, 은색 지퍼 2세대, 3세대 하면서 모으는 건 광물을 수집하거나, 새를 관찰하거나 하는 것과 비슷한 영역이다. 패션 쪽에서 볼 때도 적당한 유인이 될 수는 있지만 거기 까지다. 곰팡이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남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감성만이 존재하고 지성적인 결론은 아무 것도 없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아주 조막만한 임기응변의 아이디어들이 결합되어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만들어졌다. 가끔 솔깃한 것도 있고, 흥미진진한 것도 있다. 대충 그런 정도 생각하며 즐겁게 입고 다니면 좋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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