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2018년 1월, 내가 가지고 있는 옷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과격한 추위를 지나친 후(링크) 겨울 레이어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해졌다. 이때부터 중고 매장에서 두툼한 다운 파카만 보이면 사고 싶어지고, 각종 플리스와 라이너도 끌어 모으기 시작한 거 같다. 당혹스러운 추위에 테스트의 미비, 비효율적 접근은 여러 문제점을 남기긴 했는데 그러면서 깨달은 교훈은 마구 껴입는 게 방법이 아니라는 것. 3 레이어에 기반해 가능한 가볍게 입고 차라리 잠깐이라도 뛰어 몸의 온도를 끌어 올리는 게 더 효과적이다.
당시의 마구 껴입기의 흔적. 플란넬 셔츠 위에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고 그 위에 플리스 풀오버를 뒤집어 쓴 다음에 다운 파카를 입었다. 하지만 건물에 들어가 난방을 하지 않는 한 어느 한 부분 추위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완벽히 이길 수 없고 몸을 둔하게 만드는 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히트텍 - 스웨트 - 다운 파카 정도로 입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여기에 머플러, 장갑, 울 양말 등을 사용하면 된다. 겨울 강풍에는 귀에서 목 뒤로 이어지는 부분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후드를 뒤집어 쓰는 게 가장 낫고 군밤 장수 모자(트래퍼 햇) 같은 걸 쓸 수 있다면 좋다.
하지만 최근 온도가 갑자기 떨어지면서 스웨트셔츠에 데님 재킷 같은 걸 입을 틈도 없이 반소매 티셔츠에서 패딩 시대로 넘어가 버렸다. 이런 급격한 추위에 몸이 움츠려들고, 추운 게 너무 싫어서 겁이 먹는 바람에 또 다시 안 좋은 습관, 마구 껴입기가 나오고 있다.
울 아우터에 스웨트 후드만 입으면 될텐데 중간에 굳이 합성 충전재가 들어간 레이어를 껴 입었다. 숨막혀, 몸이 잘 안 움직여, 둔해. 그럼에도 이렇게 입게 되는 이유는 혹시나 추우면 어쩌지 겁을 먹기 때문이다. 겨울이니까 추워.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잘 챙겨입되 몸을 둔하게 만들면 안된다.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지쳐.
아침 햇살에 잘 안 보이지만 필슨 매키노에 후드도 달린 랄프 로렌의 립스톱 다운 베스트. 이건 사진으로 가끔 보는 스타일링이라 한번 해보고 싶기는 했음. 이거 혹은 필슨 매키노에 시에라 디자인스 마운틴 파카. 뭐든 아우터를 두 개 씩 입는 건 역시 과해.
이런 건 영하 30, 40도에 산 속에 가만히 있는 거니까 이렇게 입는 거고. 등산도 마찬가지인데 겨울에 춥다고 있는대로 껴입고 가면 무겁고 땀이나 잔뜩 난다. R1 같은 가벼운 플리스에 나노 에어만 입어도 언덕 오르면 덥다.
추위가 무서운 건 완전히 믿을 만한 아우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믿음은 추위를 완전히 느끼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잘못된 목표에서 비롯된다. 그런 건 없음. 다운 파카에 몇 십 만원 더 쓰는 것 보다 스쿼트를 해서 근육을 늘리는 게 더 도움이 됨.
그럼에도 여전히 다운만 보면 저걸 입으면 덜 춥지 않을까. 가지고 싶기는 한데
며칠 전에 노스페이스 매장에 갔다가 우연히 입어본 RMST 히말라얀. 뭔가 사람을 둥글둥글 풍선을 만들어 주는 거 같은 옷이다. 바깥에 나가본 적은 없으니 강풍에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손에 닿는 모든 게 다 푹신푹신해서 좀 웃기는 느낌이었는데 가볍기는 정말 가벼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