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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장인과 공산품의 개별성

by macrostar 2023.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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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서 소규모 생산과 대량 생산은 보통 대립되는 의미로 사용된다. 조악한 옷을 손으로 만들던 시절 균일하게 대량으로 생산되는 옷감과 의복은 근대 문명의 상징처럼 보였을 거다. 하지만 대량 생산 옷이 보편화된 이후 소규모 생산은 다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손으로 만들어 냈고 우연이 결합되어 있다는 개별성은 '장인이 한땀한땀' 같은 관용구와 함께 고급품의 상징처럼 취급되었다. 기준치 이상의 만듦새를 가졌지만 모든 게 다 같지 않다는 건 고급품의 중요한 덕목이다.

 

장인의 실력을 중시한 고급 품목이 이렇게 생산된 시점에서의 개별성에 주목한다면 공산품 의류의 경우 다 똑같이 나온 이후 여러 곳에 흩어져 다른 환경과 사용 방식, 관리 방식에 의해 나중에 형성된 개별성에 주목한다. 낡은 헌옷, 페이딩, 선블리치 등 오랜 시간 속에 새겨진 우연성은 옷에 개성을 부여하고 이게 개체차이를 만들어 낸다. 

45R의 천연 염색과 가공

 

고급 제품의 선도적 개별성은 새옷 중심의 사회 속에서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새옷에 대한 사회적 과대 평가가 약해지면 후천적 개별성도 개성의 일부로 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거다. 새옷에 대한 통상적 가치 관념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말하자면 보다 현대적이다. 타인의 낡은 옷을 봤을 때 왜 저런 걸 입고 나왔지, 나를 무시하나 같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잘 입고 있나보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시점이 아마도 전환점이다.

 

아무튼 시간의 경과에 따라 만들어지는 개별성은 만들어지는 데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고 상품화가 어렵기 때문에 브랜드들은 미리 페이딩한 옷을 내놓는다. 공산품에 고급품 방식의 개별성을 집어 넣어 부가가치를 만드는 방식이다. 공산품에 자연 염색을 하는 식으로 둘의 공정을 섞기도 한다. 이런 경우 후천적 개별성이 잘 받는 방식이 있기 때문에 개별성을 통한 럭셔리의 획득 방법이 바뀌게 된다. 어느 게 더 우월한가는 복잡한 문제겠지만 내 옷은 남들과 달라 같은 슬로건은 유지된다.

 

미우미우의 가죽 로퍼

매장에서 봤는데 사진보다 더 소심한 리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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