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옷의 즐거움

넥타이 - 정장 연합체 혐오론

by macrostar 2022. 12. 6.
반응형

이야기의 출발점은 넥타이다. 넥타이는 남성복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남성복의 기본은 정장 차림이고 여기서 빠질 수 없는 액세서리다. 얼마나 중요하냐면 다른 모든 옷이 결국은 넥타이를 감안해 설계되어 있다. 슈트의 상의인 재킷은 왜 V자 형태를 하고 있을까. 정장에 입는 코트는 왜 또 V자 형태를 하고 있을까. 넥타이 자리를 만들고 보여주기 위해서다. 라펠은 어떨까. V자를 만들다 보니 접혀져야 하고 그걸 좀 점잖게 자리를 잡아주다 보니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셔츠는 왜 저렇게 생겼고 단추는 목 끝까지 올라올까. 넥타이를 메기 위해서다. 이렇게 구성된 몸 상부의 모습에 맞춰 하부도 구성되어 있다. 몸을 두르는 일차적 목적과 소위 격식을 차리려는 이차적 목적 모두를 만족시키면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정장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현대 의복이 그렇듯 넥타이도 역사를 따라 올라가면 유럽의 군대가 나온다. 1600년대 중반 루이 14세가 고용한 크로아티아 용병들이 고향을 떠나올 때 애인과 가족이 무사귀환을 바라며 스카프를 목에 둘러줬다고 한다. 그게 프랑스에서 유행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루이 14세는 프랑스 귀족들 사이에 하이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아무튼 여기까지는 그냥 스카프를 목에 두른 거였고 우리가 아는 넥타이는 19세기에 들어서 생겨났다. 

 

넥타이라는 건 이미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넥타이를 푼 자유로운 복장이라는 말이 있지만 셔츠와 재킷 등 넥타이에 맞춰진 옷을 입어놓고 거기서 넥타이를 제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보고 비즈니스 웨어를 편하게 입었다고 생각하는 건 이미 사람들의 마음 속에 형식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넥타이는 오직 장식적 용도 외에 하는 일이 전혀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게 대체 왜 여태 남아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의미하다. 혹시나 위급 상황에 밧줄로 쓰거나(실크는 튼튼하다), 괴한을 제압하거나(훈련이 필요할 거다), 혹은 묶거나 연결하는 다른 용도로 쓰일 수가 있긴 하겠지만 이건 넥타이의 용도가 아니라 길이가 긴 천의 용도다. 그럼에도 이 장신구는 위에서 말했듯 비즈니스 웨어 등 의복 문화를 어느정도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넥타이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수트는 지금처럼 생길 이유가 없다. 과연 넥타이는 필요한 건가. 

 

지금 우리의 패션은 대대적인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실용성과 편의성이 강조되고 관리의 용이성이 강조된다. 이런 부분은 특히 환경 문제 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만들 때 환경 영향이 가능한 적고 구하기 쉽고 재활용이 용이한 옷이 크게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 속에서 아웃도어 의류, 밀리터리 의류 등 오랫동안 사용해 온 튼튼하고, 실용적이고, 만들기 쉽고, 수명이 긴 옷이 주목을 받으며 기존의 착장 질서를 대체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로 나오는 옷을 보다보면 합성 섬유로 만든 정장 셋업, 오버사이즈드의 재킷 같은 옷을 만나볼 수 있다. 게다가 재생 코튼으로 만든 넥타이도 볼 수 있다. 정장의 현대적 변용이 굳이 넥타이 자리를 만들기 위해 설계된 옷의 친숙한 버전이라는 건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과연 넥타이의 소멸에 중간 단계가 필요할까. 넥타이 자리라는 흔적을 왜 남겨놓으려는 걸까. 비즈니스 웨어의 자리를 정장에서 갑자기 바람막이나 트레이닝 셋업으로 가는 건 심적 반발이 어느정도 클 수 있겠지만 연착륙을 하겠다며 모든 단계를 순차적으로 거칠 필요는 없다. 변화를 위해서는 충격도 필요하고 감수할 건 감수해야만 한다.

 

기존의 착장에 대해 이건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이자 남성의 점잖음과 대외적 격식을 표현하는 상식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클래식 마니아들은 언제나 많고 많은 변명을 한다. 영원 불멸의 가치, 가장 분명한 남성성과 여성성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실상은 역사가 얼마 되지도 않은 패션이고 패션이 재현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은 현대의 가장 중대한 문제점이다. 개버딘 비옷은 점잖치만 나일론 비옷은 점잖치 못하다는 말은 어디가 문제가 있을까. 그냥 오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명이고 그러한 옷이 점잖다는 생각은 종교와 같은 믿음일 뿐이다. 불필요한 도구마저 동원되어 있는 내재화 되어버린 믿음이다. 패션의 자유로움과 실용성, 효용성은 4지 선다 형태로 넥타이 무늬를 선택하는 정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넥타이 대신 보타이를 맨 위트 같은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아무 필요 없는 걸 입지 않을 결단을 말하고 특히 세간에서 통용되는 대외적 착장의 질서 속에서 제외시켜 버리고 새로운 착장 질서를 구축할 의지를 말한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낡은 과거의 유산을 대체할 만한 옷의 장르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