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옷, 패션, 디자인, 브랜드의 역사성, 사회성 등을 모두 무시하고 아무튼 내 맘에 들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예전에는 보통 다 이랬다. 저 브랜드가 하는 짓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옷은 예뻐라든가 아니면 저 브랜드가 하는 짓이 무엇인지에 애초에 관심조차 잘 가지지 않았다. 옷, 패션을 어디선가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그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 않거나 하던 시절이다. 요새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긴 하다. 그렇지만 취향은 이미 사회의 결과다.
1) 패션 브랜드의 정치적 성향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와 옷과 패션의 연결은 특히 옷이 조금 더 간단하고 편안한 모습이 되면서 강해지고 있다. 특히 성 다양성, 문화 다양성을 비롯해 노동 문제, 환경 문제, 전쟁 등등 여러 사회적 이슈들이 옷의 제조 공정 뿐만 아니라 옷을 디자인 한 사람부터 시작되고 있다. 사실 가만히 보면 무슨 옷을 선택하느냐가 사회적, 정치적 의견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어떤 브랜드를 피해야 되느냐가 일반적으로는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듯 하다.
2) 여기에 옷 자체의 경향성에 대한 생각도 많아지고 있다. 소수 민족의 의상, 고유한 문화의 의상, 종교적인 의상 등등이다. 문화 다양성과 고유성의 측면에서 이 문제는 아직 많은 논란들이 자리를 잡고 있긴 하다.
3) 이런 사회적, 정치적 배경은 옷의 역사에도 자리를 잡고 있다. 어떤 옷이든 그 처음이 있고 왜, 무엇을 위해, 어디에 쓰려고 등등의 이유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배경을 가진 옷을 지금 시점에 입는 건 은연중에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 물론 노동자의 옷, 군인의 옷, 운동 선수의 옷 등등은 너무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는 퇴색될 수 있고 그 말은 더 이상 의미를 담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히피들이 군복을 이용하고 펑크가 가죽옷을 이용했듯 맥락은 언제든 만들어질 수 있다.
예컨데 짐바브웨 산 코튼으로 만든 데님의 경우 저 옷을 산 돈은 짐바브웨의 독재를 강화하는 자금이 된다는 견해 혹은 저런 게 없다면 그 주민들은 더 험한 상황에 몰릴거다 라는 견해가 충돌한다. 독재 국가의 저렴하지만 품질 좋은 1차 생산물은 아주 많은 경우 비슷한 문제를 야기한다. 러시아에 대한 세계적 경제 제제를 보자면 현재는 대체적으로 험한 상황에 몰아넣을테니 시민들이 단결해 독재를 견제하라는 쪽이 우세한 듯 하다. 이건 사실 당연한 결론인데 타국이 직접 개입하는 건 여러 문제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4) 이런 배경을 떠나 취향 자체가 이미 사회적이다. 언젠가는 몸에 피트한 옷이 멋지게 보였고 또 언젠가는 루즈한 옷이 멋지게 보인다. 이는 취향의 변화한 결과고 이런 취향 변화는 사회적 분위기의 전환 등 외부적 요인이 쌓여 만들어 낸 결과다. 당연하지만 이런 취향은 가지고 태어난 불변의 무엇인가도 아니고 그냥 저절로 생겨난 것도 아니다. 각자가 관계망 안에 들어 있고 거기서 살아가며 보고 듣고 경험이 쌓이며 형성되고 변화한다. 그러므로 아무튼 내 맘에 들면 되라는 건 애초에 성립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5) 물론 그럼에도 세상의 평가가 어떻든 아무튼 내 맘에 드는 걸 입는 건 패션이라는 개인 활동 고유의 영역이기도 하다. 심지어 사이즈마저도 작은 걸 입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언제나 정사이즈를 고집하는 사람도 있고, 걸리적거리는 게 없는 오버사이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세상 흘러가는 걸 놓치고 있다면 퇴보하든, 오해하든, 잘못된 선택을 하든 등의 위험 요소를 안을 수 밖에 없다. 언제나 말하지만 무엇인가가 마음에 든다면 그게 왜 마음에 드는지를 잠깐이라도 냉정하게 탐구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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