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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를 보고 오다

by macrostar 2022.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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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 터널 위에 있는 딜쿠샤라는 오래된 집을 보고 왔다. 건물의 내부 구경은 기회가 많이는 없지만 재미있어하는 편이라 기회만 되면 찾아가 보려고 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커다란 건물이 재미있긴 하다. 최근에 가본 곳 중에서는 카페 커피 앤 시가렛이 있는 시청 옆 유원빌딩과 쥬얼리 브랜드 넘버링이 팝업을 운영하던 안국역 가든 타워 건물이 꽤 재미있었다. 이 정도 규모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듯. 남의 집은 삶의 흔적이 너무 남아있어서 건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기회가 되면 가보는 편이다. 그러다 딜쿠샤라는 집에 대해 어디서 듣고 예약을 하고 가봤다.

 

 

그러니까 요코하마에서 만나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린 황해도 금광 사업을 하는 미국 남성과 연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귀족 가문 출신 영국 여성이 당시 조선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고 이사를 하며 사직 터널 위 400년 넘은 커다란 은행 나무가 있던 동네에 1920년대에 인도에 있는 성의 이름을 따라 지은 집이다. 대강의 스토리만 들어도 당시 자유로운 마인드의 백인 부부가 세계를 떠돌며 살던 모습이 그려진다. 

 

사직 터널은 1960년대에 개통했고 이 집이 지어지던 당시에는 근처에 은행 나무 말고 거의 아무 것도 없이 커다란 정원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이 근처에 당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꽤 있었는지 베델의 집터를 비롯해 독일 선교사의 집터, 홍난파의 집터 같은 자리가 있다. 

 

아무튼 복잡한 과정을 통해 서울로 들어온 것처럼 이후에도 나름 복잡한 세월을 거친다. 러일전쟁 후 일제의 외국인 추방령으로 이 집을 지은 부부는 서울을 떠나게 되고 이후 비어 있다가 자유당 국회의원이 구입해 살다가 419로 부정 축재에 대한 재산 몰수령이 내려진 후 국가 소유가 된다. 하지만 전혀 관리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 집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불법 입주를 해 살아갔다고 한다. 이 과정과 여기서 살 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유튜브에서 딜쿠샤를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다.

 

 

아무래도 약간은 어둡고 비좁은 느낌이 드는데 2층 계단을 올라갔을 때 살짝 트이는 느낌이 꽤 좋았다. 지금은 앞에 건물이 잔뜩 지어져 있지만 예전에 아무 것도 없을 때는 위 사진의 베란다에서 커다란 은행 나무와 남산과 한강이 한 눈에 보이는 조망을 가지고 있었을 거다. 

 

집은 뭐 역시 남의 집이군... 이라는 생각이 커서 임팩트가 그렇게까지 강하진 않았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 큰 도로들이 있음에도 언덕 몇 분 올라가고 나면 싹 바뀌는 풍경은 서울이라는 오래된 도시에 살면서 종종 접하긴 하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생경한 분위기를 잔뜩 느낄 수가 있는 건 좋았다. 근처에 스위스 대사관이나 서울 기상 관측소 앞의 작은 공원(그쪽으로 넘어갈 수는 없다) 같은 게 슬쩍슬쩍 보이는 것도 재미있었다. 날씨 좋을 때 딜쿠샤를 기점으로 이 동네를 한 번 돌아보는 건 추천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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