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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아미 나이프의 가죽 바늘

by macrostar 202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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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에 여러가지 도구들이 들어 있는 빅토리녹스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어렸을 적에는 좀 신기하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사실 그냥 그렇다. 레더맨 쪽이 더 쓸데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러느니 그냥 거버 나이프를 하나 가지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드라이버는 PB 스위스나 베셀 이런 거 사두는 게 더 재미있는 거 같고... 물론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 아이템인 건 여전히 분명하다. 가지고 다니다 보면 정말 귀중한 순간에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이 이야기를 갑자기 하는 이유는 위 사진의 10번, 구멍이 뚫려서 바늘처럼 생긴 게 어디에 쓰는 건가 하는 동영상을 봤기 때문이다. 

 

 

 

그냥 바느질 보다는 가죽, 캔버스 등 두꺼운 무언가를 바느질하는 데 적합하다. 그런데 저런 게 왜 들어가게 되었을까. 가죽 부츠에 끈 구멍이 없어서 직접 뚫어야 했나(저건 송곳으로도 쓸 수 있다), 스위스 군 하면 그 캔버스 백팩이 생각나는데 그와 관련이 있는걸까.

 

아무튼 궁금해서 위키피디아를 읽어 보다가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다. 

 

소설 모비딕에 멀티 유즈 포켓 나이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소설이 1851년이니까 그 이전에 비슷한 것들이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커먼 포켓 나이프지만 여러 사이즈의 날이 들어있고, 스크류 드라이버, 코르크 오프너, 트위저, 송곳, 자, 펜 등등이 들어있다"고 적혀 있다.

 

1880년대 말 스위스 군이 병사들에게 보급할 폴드 포켓 나이프 구매를 결정했다. 통조림 식사를 열고, 스위스군 보급 무기인 슈미트-루빈의 분해 결합용 드라이버가 필요했다.

 

 

슈미트-루빈...

 

그렇게 나온 게 Modell 1890이라는 거다. 이때는 스위스에 이런 거 만드는 곳이 없어서 독일의 Wester & Co.에서 제작했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어두운 오크 우드로 만들었는데 나중에 에보니 우드도 사용했다고 한다. 아무튼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여기에 바늘은 없다. 

 

이게 1891년 10월부터 받기 시작한 최초 모델들이고 이후 의료 기구를 제조 회사를 운영하던 칼 엘제너가 스위스에서 직접 만들기로 결정 독일 회사랑 경쟁을 하게 되었지만 독일의 웨스터 사는 대량 생산 능력이 있는 곳이고 제조 비용을 따라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도산 위기에 처하는 데 그러던 1896년 스프링 메카니즘이 들어가 살짝 올리면 짝 펴지는 방식을 고안해 냈다고 한다. 이게 1897년 스위스 오피서의 스포츠 나이프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받게 되었다. 스위스 군에서 딱히 용도 제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게 세계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의 해당 항목을 보면 군납으로 보이는 솔저 나이프 1891부터 1961, 그리고 솔저 나이프 08이라는 2007년에 나온 모델에 대한 설명이 쭉 있는데 보면 모두 다 구멍이 뚫려 실을 꿸 수 있는 바늘은 없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는 찾기 어려운 듯... 아무튼 모비딕에도 나왔던 포켓 나이프의 바늘은 어느날 사라졌다가(선원들이 캔버스 돛 같은 데에 쓰지 않았을까) 사라졌다가 다시 들어갔다. 

 

약간 재미있는 게 일본에서는 6cm 이상 날이 있는 칼의 휴대가 금지되어 있고 숨겨져 있으면 안된다는 규정도 있다고 한다. 지진 구호 현장에서 누가 이런 칼을 들고 있다가 경범죄인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는 듯. 그렇기 때문에 지진 필요 물품에 멀티 툴 나이프가 들어갔다가 지금은 빠졌다고 한다. 

 

참고로 유튜브에 보니 슈미트 루빈 1889 분해 영상이 몇 개 있다. 약간 아쉽게도 스위스 아미 나이프 구형 버전을 가지고 분해해 보는 사람은 없군... 일부러 골동품 총을 사는 사람이라면 있을 법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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