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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샤넬 그리고 플라스틱 쥬얼리

by macrostar 2020. 7. 5.

상당히 예전에, 그러니까 2014년(링크)에 쓴 이야기인데 문득 생각나서 옮겨본다. 샤넬, 플라스틱, 쥬얼리라는 세 가지 사이에서 나오는 모순, 텐션은 여전히 관심거리이고 대중적 소재가 하이 패션을 점유하게 된 지금에도 나름 생각할 것들이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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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 이래 쥬얼리는 신분과 소속의 상징, 그리고 자신을 꾸미고 돋보이게 하는 수단으로 기본적으로 소재 고유의 희소성을 속성으로 한다.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는 자신의 권위나 특별함을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과 달라”를 표시하기 위해 시대에 따라 청동기, 금, 호박, 진주부터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루비 등 구하기 어려운 소재들이 사용되고 거기에 장인들의 솜씨가 곁들여져 최상급의 쥬얼리 제품이 만들어 진다.

 

하지만 인간은 비록 돈과 권위가 딱히 없다 할 지라도 자신을 꾸미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조달할 수 있는 게 동네에 널려있는 돌맹이 밖에 없다 할 지라도 감각을 믿고 잘 만들고 곱게 꾸미면 나름 훌륭한 액세서리가 된다. 그러므로 코스튬 쥬얼리가 존재한다. 파인 쥬얼리, 리얼 쥬얼리와 대비되는 코스튬 쥬얼리는 패션 쥬얼리, 페이크 쥬얼리 등으로 부른다. 물론 소재는 시대에 따라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게, 2000년 전의 금과 지금의 금은 희소성에서 차이가 있다.

 

코스튬 쥬얼리는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메인스트림 액세서리로 본격 등장하게 된 건 20세기 초반이다. 처음에는 파인 쥬얼리의 이미테이션으로 만들어졌지만 운명이 바뀌게 된 건 1800년대 말, 좀 더 본격적으로는 192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수공예 시대에서 대량 생산의 시대로 넘어가는 거대한 역사의 기점에서 코스튬 쥬얼리도 적당한 자리를 잡게 된다.

 

20세기 들어와 기계와 산업 혁명의 시대 그리고 곧바로 찾아온 1, 2차 세계 대전에 의한 대량 생산 체제는 새로운 중산층을 만들어내고, 이에 따라 새로운 수요가 발생한다. 당시까지 거창하고 복잡하고 불편한 옷을 통해 아름다움과 세련됨을 드러냈지만 이제는 뭔가 새로운 게 필요해 진게다. 패션계는 이 문제에 대해 새로운 룩을 제시하면서 패션의 흐름을 바꿔놓는데 성공한다. 대표적으로 리틀 블랙 드레스를 들 수 있다.

 

1920년대 아르데코의 시대에 대량 생산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거친’ 느낌을 굳이 제거하려 하지 않고 이 낯선 조악함을 하나의 매력으로 소화해 내며 보다 심플하고 실용적인 옷이 나오게 되는데 그 연장선 상에 있는게 장 파투나 코코 샤넬 등 디자이너의 리틀 블랙 드레스라 할 수 있다. 특히 보이시하고 심플한 패션을 추구하던 샤넬에게 리틀 블랙 드레스는 매우 유용한 툴이었다.

 

코코 샤넬은 당시까지 남성복에 주로 사용되던 저지, 트위드 등의 소재를 이용한 옷과 리틀 블랙 드레스등 심플하고 편안하고 활동하기에도 편한 옷을 내놓는다. 물론 이런 실용성은 코코 샤넬이 만들어 낸 우아한 실루엣 안에서 세련됨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 옷과 결합된 일종의 토탈 시스템으로 구두, 가방, 쥬얼리 등이 함께 했다. 이런 식으로 코스튬 쥬얼리는 오뜨 꾸뛰르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

 

당시 샤넬 쥬얼리 라인의 대표적 특징은 새로운 디자인에 있지만 파인 쥬얼리와 코스튬 쥬얼리로 양분되어 있던 쥬얼리를 섞어서 내놨다는 점도 있다. 이에 따라 샤넬을 입는 갑부 여인들은 다이아몬드와 진주, 구리, 플라스틱 등 사이에서 나가는 자리에 따라 적당히 알맞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었다. 샤넬이 리틀 블랙 드레스가 첫 선을 보인 건 1926년이었고 1930년대 들어 베이클라이트를 사용한 플라스틱 쥬얼리도 내놓는데 동시에 폴 이라이브(Paul Iribe)와 컬래버레이션으로 다이아몬드 라인을 내놓기도 했다. 코코 샤넬은 이런 식으로 리치와 푸어를 뒤섞은 다음 우아하게 덮어내는 재주가 정말 좋았다.

 

어쨌든 샤넬의 고급 코스튬 쥬얼리 라인에서 두 가지 특징적인 소재를 찾을 수 있는데 사실 둘 다 플라스틱의 일종이다. 하나는 1920년대에 사용했던 베이클라이트(Bakelite), 또 하나는 좀 더 후기인 1950년대에 사용한 루사이트(Lucite)다. 루사이트는 폴리메틸 메타크릴레이트인데 유리 대용으로도 사용되는 투명하고 강한 플라스틱이다.

 

베이클라이트는 1909년 화학자 리오 헨드릭 베이클랜드(Leo Hendrik Baekeland)가 발명했는데 포름알데히드와 페놀을 반응시켜 만든 최초의 상업적인 플라스틱이다(플라스틱으로 최초는 1868년에 나온 셀룰로이드다). 이 플라스틱은 열경화성이 특징으로 가열한 다음 모양을 잡고 냉각시키면 매우 단단해지고, 고온에 대한 내성이 있다. 액세서리로써는 특유의 깊은 컬러와 함께 같은 사이즈면 요즘의 플라스틱보다 훨씬 무겁다는 점도 매력이다.

 

처음에는 산업용 기계 부품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는데 옛날에 나온 전화기나 오디오가 베이클라이트로 만들어진 제품이 많다. 이후 “the material of the thousand uses”라는 별명답게 사방에 쓰이게 된다. 그러다 대공황 시대를 거치면서 이 컬러풀한 플라스틱이 장신구로 인기를 끌게 된다. 다양한 가공방식과 컬러가 사용되었지만 특히 노란색이 인기가 많았다.

 

전쟁의 와중에 1940년대에 샤넬은 문을 닫았고 이후 나치 협력 논란 속에서 프랑스로 돌아가진 못하고 다시 문을 여는데 미국을 중심으로 인기를 끈다. 이때부터 샤넬의 코스튬 쥬얼리는 1953년부터 협업을 시작한 디자이너 로버트 구센(Robert Goossens)과의 협업을 중심으로 꾸려진다(로버트 구센은 코코 샤넬의 사망 이후에도 계속 샤넬의 일을 했다. 칼 라거펠트의 1980, 90년대 샤넬 컬렉션의 코스튬 쥬얼리도 제작하다가 2005년 샤넬이 회사를 사들이게 된다). 1955년에 2.55 가방이 나오면서 이 룩은 완성형이 된다.

 

샤넬을 비롯해 아르데코 시대부터 시작된 편안하고 쉽게 입을 수 있되 우아함을 버리지 않는 디자인은 거추장스러운 장식으로 둘러쌓여있던 여성들에게 가히 혁명적인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일을 하고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모더나이즈드’ 여성들에게 심플한 드레스와 어울리는 저렴한 플라스틱 등으로 만들어진 코스튬 쥬얼리 역시 이전 시대 귀부인들의 불편하되 으리으리한 장식으로부터 일진보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이후 거의 모든 여성 의류는 이 영향 아래 놓여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만 끝나지 않는다. 저지, 베이클라이트나 루사이트같은 저렴한 소재를 사용했지만 물론 이것들은 무명씨 브랜드의 금이나 은, 심지어 어지간한 보석보다 여전히 더 비싸다. 결국 활동적으로 일하는 스타일리시한 여성을 재현하려면 일부의 고액 연봉자를 제외하고 일해서 버는 월급으로는 힘들다. 즉 샤넬이 창조해 낸 실용성과 편리함을 직접 마주하는 건 여전히 귀부인과 셀레브러티들의 코스프레 영역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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