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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구찌 2020 SS의 Straitjacket

by macrostar 2019.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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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스트레이트자켓은 강압복, 구속복이라고 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구속복(정신 이상자와 같이 폭력적인 사람의 행동을 제압하기 위해 입히는 것)", "강압복(強壓服)은 자기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위험한 행동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특수한 옷이다. 다양한 용도를 지니고 있어 초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사람을 고문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하였으며, 마술 등에서는 강압복을 벗고 탈출하는 묘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나와있다. 

 

이번 구찌 패션쇼는 두 가지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패션쇼장에는 4줄의 무빙워크가 설치되어 있는데 처음에 불이 딱 들어오면 모델들이 구속복 비슷한 하얀색 옷을 입고 가만히 서 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무빙워크라 물론 움직이니까 그렇게 줄줄줄 지나간다. 그러다 갑자기 불이 딱 꺼지고 다시 켜지면서 보통의 패션쇼가 시작된다. 무빙워크 위에서 또 걷기 때문에 진행이 상당히 빠른 편이다. 신당역 환승 통로 무빙워크 위를 걸을 때 생각하면 된다...

 

 

논란이 된 부분은 앞 부분이다.

 

 

옷은 물론이고 모델들의 포즈, 표정까지 이건 물론 정신 병원의 구속복이다. 그리고 이 패션쇼에 참가한 모델 아예샤 탄 존스의 무언의 시위가 있었다.  

 

 

 

손바닥에 Mental Health is Not Fashion이라고 적었다.

 

 

이 패션쇼는 생중계되었고 밤에 봤었는데 화질도 그렇게 좋지 않아서 저걸 클로즈업하지 않는 한 뭐라고 적혀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겠지만 아무튼 영상에서는 뒷 모습만 보여줬따.

 

 

 

말 그대로 정신 건강은 패션이 아니다.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면 아주 예전에 한참 일본 예능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 천연 캐릭터가 유행이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백치미. 이건 천진난만함, 민폐를 끼치지만 미워할 수는 없음 등을 앞세운 모에 요소 중 하나였기도 했는데 아무튼 공격적인 개그맨 MC 등이 써먹기가 좋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시에 많이 없던 캐릭터였기 때문에 한동안 여러 사람들이 등장했었다. 보통 유행이라고 하면 유행어, 옷 이런 게 생각나는데 일종의 인격이 유행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무지함이라면 그게 인격이라고 하긴 좀 어렵기도 하고 이제와서는 별 게 다 유행의 범위 안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이야기조차 이미 옛날 이야기 같군... 싶긴 하다.

 

 

 

알렉산더 맥퀸의 2001년.

 

 

패션은 시선을 모으고 화제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없던 모습, 낯선 모습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래서 세간에 오르내리는 거라면 뭐든지 끌어다쓰려고 하는 데 그게 종교, 민족 그리고 지금처럼 개인의 고통 같은 영역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서 "좋은 의도"라는 게 소용이 있는가, 희화화가 문제 아닌가, 당사자는 어떤 생각을 했는가 등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또한 패션이란 대체 무엇인가, 패션 디자이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의 문제로 연결되기도 한다. 옷을 매개로 자신을 표현하거나 의견을 개진하는가, 그냥 사람들이 즐겁고 가치입게 입을 옷을 만드는 건가, 이런 "옷"을 누가 대체 왜 사고 있는가.

 

 

바로 앞 글에서 패션쇼장에 가져온 나무 문제 이야기를 하면서 샤넬이 만들어 낸 이전의 경험이 디올에서 발전된 형태의 진행을 만들었다(링크)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쪽은 그런 식으로 딱딱 떨어지는 게 아니다.  

 

 

어쨌든 아예사 탄 존스는 쇼가 끝난 후 인스타그램을 통해 straitjackets symbolize “a cruel time in medicine when mental illness was not understood.” She called Gucci’s use of the imagery “hurtful and insensitive.”라는 이야기 등을 올리기도 했다. 참고(링크). 

 

 

구찌 쪽에서도 반응을 했는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패션과 자기 표현에 있어서 "블랭크, 여백 - 스타일"의 디자인을 생각했고 사회에 의해 콘트롤 되는 유니폼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구속복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매장에서는 판매하지 않을 거라고 한다.

 

 

이외에도 사실 정작 문제가 되는 부분(논란이 아니라)은 뒷 부분, 즉 매장에서 팔릴 부분들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는 기존에 가는 길이 더 진해졌다. 구속복은 사실 멘탈 헬스를 패션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BDSM의 이미지를 강화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즉 이번 구찌는 기존의 폭발을 제거하고 그 상태에서 미니멀하게 고정되었고 거기에 (일종의) 섹시함을 선보이고 있다. 그 섹시함은 일탈하고 집 나간 20대 밀라노 부자들을 표현하던 이전에 비해 분명 레벨이 높긴 하다.

 

하지만 정말인가. 미켈레의 구찌가 만들고 있는 길은 애초에 다 벗고 있어도 섹시하지는 않을 그런 패션이 아닌가. 맥시멀리즘 유행이 끝나면 구찌의 매출이 축소될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경고가 미켈레를 이런 식의 절충으로 이끈 거 같은데 역시 그 너머에는 도착 비슷한 게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애매하다는 것. 이것은 미켈레가 예로 들었던 톰 포드와 프라다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말의 애매함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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