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즐거움2019.01.26 16:42

간만에 버튼 다운 셔츠 이야기. 사실 셔츠에 바지나 입고 다니는 상태가 딱 좋긴 한데 작년에는 그럴 틈도 없이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반팔 셔츠만 입고 다니다가 어느날 고개를 들어보니 바람막이라도 하나 걸치지 않으면 안되는 날씨로 변해 있었다. 타이밍을 아주 잘 잡아야만 가능한데 그것도 환절기 일교차가 너무 심해서 패커블이라도 하나 들고 다니지 않으면 안된다.


날씨로 부터는 가능한 전력을 다해 해방되는 게 좋은 게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우면 생각이 짧아지고, 폭이 좁아지고, 세상에 지나치게 비관적 부정적이 되고, 추론이나 상상이 제한된다. 물론 그걸 완전히 이겨내는 데는 너무나 큰 비용이 들고 그렇게 해서 뽑아낼 수 있는 가치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저런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도 같다...



옷을 참 안 사긴 하는데 제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청바지와 버튼 다운 긴팔 셔츠다. 청바지는 작년 초 정도에 더 사봐야 당장은 별볼일 없다 마인드가 되어 있는데 셔츠는 아직 그게 잘 안된다. 유니클로 매대에 5천원이어서, 모모타로의 샴브레이는 어떤지 궁금해서, 기트맨의 플란넬은 하나 있어야 할 거 같아서, 브룩스 브라더스 리젠트니까, 킬고어 타탄이니까, 울이 20% 들어가면 어떤가 궁금해서, 체크 사이의 하늘색이 예뻐서, 밀리터리 워크셔츠인데 칼라에 단추가 있어서, 단추가 반짝거려서 등등등 여러 이유가 자꾸 등장한다.


물론 다 살 수도, 입어 볼 수도 없기 때문에 또한 여러가지 이유로 제어를 하지만 그래도 단일 품목 중에선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옷이 되었다. 다림질은 귀찮아 하다가 한경희 스팀 다리미를 구입해 대충 주름만 편다. 그러면 됐지 뭐. 셔츠 착용 횟수의 비약적 상승은 그 덕분이다. 요령도 별로고 잘 펴지는 거 같지도 않은데 마른 걸 그냥 입고 다니진 않는다라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랄까... 그런 합리화를 할 수 있음.



동양 엔터프라이즈 계열 브랜드들은 전반적으로 단추 감각이 좋다. 맨 왼쪽의 캣츠 아이는 실로 듬직 튼튼 반짝. 


아무튼 버튼 다운 셔츠는 너무 귀찮은 건 아니지만 적당한 귀찮음이라는 게 있어서 티셔츠나 스웨트셔츠 라이프와는 조금 다른 패턴이 생긴다. 열심히 빨고 다려야만 하면 너무 하드해 져서 그냥 그만두고 티셔츠나 입겠지만 적당한 타협의 지점을 정할 수 있고 그러고 나서 약간 구깃거리는 게 지금의 시대 정신이 아닐까 하는 직장인이 아닌 자유직 종사자 타입의 생각을 한다.


위 셔츠는 차례대로 슈가 케인의 헤비 트윌 - 너무 두꺼워서 타이밍 잡기가 어렵고 잘 안 마른다 그리고 나보다 수명이 길 듯, 기트맨의 빈티지 시리즈 플란넬 - 옷의 전반적 생김새가 약간 이상함, 유니클로 헤비 플란넬 - 최고의 무난함과 함께 하는 어딘가 조악한 부드러움과 조악한 단추 등이 특징이다. 물론 셋 다 좋아한다.




Posted by macr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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