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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즐거움

M65용 내피를 구입했다

by macrostar 2017.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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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입고 다니는 옷 이야기. 작년에 알파의 M65를 저렴하게 구입한 적이 있다. 카키 색이니까 군납 버전은 애초에 아니고 미국 제조로 꽤 오래된 건데 상표 택도 붙어 있는 데드스톡 상태였다. 사실 안쪽에 봉제가 좀 불량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그 부분은 혼자 대충 수선해서 별 문제는 없다.


그런데 이 옷은 입을 타이밍이 거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최근의 날씨 추이를 보면 덥다가 갑자기 선선해 지고 어느 날 바로 추워진다. 선선과 추움 사이의 어느 타이밍에 입어야 하는데 그 시기에는 M65보다 예쁘고 가볍고 편하고 효율적인 옷이 많다. 예쁘고 멋진 옷은 보통 다 환절기 용이고 그걸 입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그 소중한 시간을 야상 따위에 쓸 순 없다. 그리고 막상 겨울이 오면 꽤나 활동적인 라이프를 개진하고 있다면 모를까 M65 따위로는 택도 없다.


결국 이런 상태로 있었고 가끔 집 앞에 나갈 때나 누구도 전혀 만날 일이 없을 때 입곤 했는데 문득 안에 달려 있는 단추들을 써먹고 싶어졌다. M65는 라이너를 비롯해 퍼 후드 등을 붙일 수 있게 되어 있고(후드는 원래 M65 파카라는 다른 옷에 붙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튼 부착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냥 입으면 쓸 데가 없는 단추와 스냅 버튼, 단추 구멍들이 잔뜩 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야상 내피 같은 걸 돈 주고 사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이왕 있는 거 풀 세트를 만들어 놓고 입고 다니고 싶어졌다. 원래 뭔가 가지고 있으면 그렇게 되는 법이므로 함부로 아무 거나 집에 들여놓으면 안된다.


그리고 한국군 야상도 내피를 붙이면 뭔가 다른 옷이 되고 그냥 옷 두 개 입는다고 하기엔 이상하게 보온력이 상승하는데 그게 착각이었나 아닌가 확인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알파에서 퍼 후드는 따로 나오지 않는 거 같은데 군용 퍼 후드는 OG 컬러 밖에 없어서 카키에 붙이긴 좀 그렇다. 내피도 마찬가지로 군용은 OG 컬러 밖에 나오지 않는데 안에 들어가는 거니까 뭐 그려려니 싶다. 알파에서 나오는 내피인 ALS/92도 있는데 카키 컬러가 있긴 하지만 괴상하게 비싸고 단추 구멍이 네 개 있다는 게 그렇게 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M65의 결합용 단추는 한 줄에 세 개다). 설명에 의하면 아우터로 활용할 수도 있게 하기 위함이라는 데 그런 거 아우터로 입고 싶은 생각 없다. 또 손목에 시보리가 붙어 있는 대신 M65 손목 안쪽에 있는 단추를 쓸 데가 없다. 그것도 좀 별로다.


그런 결과로 M65용 내피를 11번가에서 구입하게 되었다. 막상 받아보니 역시 꽤나 조악한데 아마존 같은 데서 파는 군대풍 비정품 무명씨들도 다들 고만고만한 거 같다. 



그런 결과는 이런 모습. 이 옷이 세상에 나온 지 근 20여 년 만에 내부의 단추가 일을 하게 되었다! 보탬이 되어서 기쁘다! 


몇 가지 사연이 생겼는데 사실 군대에 있을 때도 야상 내피는 거의 쓰지 않고 걸어만 두다가 누구 줘버리고 나왔었는데 그런 걸 이제 와서 사는 건 역시 좀 이상한 일인 거 같다. 그리고 M65 구입가가 27500원이었는데 내피는 31000원을 주고 샀다. 앞 뒤가 안 맞아도 한참 안 맞는데 원래 세상이 그런 거고 결론적으로 내피가 더 비싼 M65 세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람 세상에 드물지 않을까...


밀 스펙에 의하면 M65는 코튼-나일론 50:50 혼방으로 약간의 방수 기능이 있는 9온스 사틴 원단으로 만든다. 저것도 물방울 떨어지니까 또르르 구르는 게 방수가 되긴 하는데 세탁 몇 번 하면 금방 사라질 거다. 군납용 컬러는 올리브 그린(OG-107)과 몇 가지 카무플라주 버전이 있다. 그리고 내피는 1.1온스의 립스탑 나일론으로 만들고 보온재는 6온스 폴리필이다. 


내피에는 단추 구멍이 양 쪽에 세 개씩 있는데 다른 아우터 안에도 입으라고 1987년인가에 단추가 붙었다고 한다. 알파 쪽 홈페이지의 설명에 보면 M65는 영하 4도~4도, ALS/92라이너는 4도 이상의 날씨에 적합하다. 둘이 합쳐지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데 그런 건 나와있지 않다. 여튼 최저 기온이 영하 5도 이상일 때 종종 입을 생각이다. 생긴 거에 비하자면 나름 비싼 옷인게 알파의 경우 세트로 사면 180불 + 65불이고 콕핏 USA의 경우 370불 + 49불이다. 이외에도 로스코나 트루 스펙 등 나오는 곳은 많다.

 

구입한 내피는 사이즈가 같은 거라 단추 자리 이런 건 다 딱 맞았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우선 오늘 같은 날씨(영하 12도, 체감 온도 영하 20도임)에 함부로 저런 외투로 승부를 보면 안된다는 것. 


그리고 옷의 모양과 느낌이 역시 상당히 달라진다. 내피가 없는 상태의 M65가 뭐 멋지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군... 정도라면 저 얄쌍한 내피를 붙이는 순간 험블한 느낌이 왕창 살아난다. 겉도 아니고 안에 붙이는 건데도 시각적 효과가 상당하다. 보온성은 확실히 상승한다. 내피 자체보다 외피와 내피 사이에 형성되는 공간이 큰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M65의 방풍 기능이 생각보다 좋은 편이라 그 효과가 배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뭐 이런 옷을 가끔씩 입게 되었음. 혹시 M65에 맞는 제대로 된 내피를 구입하고 싶다면 군용 재고를 찾을 수 있다면 물론 가장 좋을 거 같지만 그런 걸 제대로 된 물건으로 구하는 일은 나름 피곤하고 귀찮은 부분이 있고 알파의 ALS/92는 안 입어 봤지만 평은 상당히 좋다. 아니면 콕핏 USA 같은 곳에서 나오는 밀 스펙 라이너가 49불이니까 나름 괜찮은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내피를 뭘 구입할까 고민할 때는 주요 후보군이었지만 이제 상관이 없는 제품이 되어 버렸다. 뭐 지금 M65를 한 10년 쯤 입게 되면 2026년에 기념으로 하나 사야지... 콕핏 USA 그때까지 잘 버텨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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