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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스 지로, 빅존의 M1002

by macrostar 2017.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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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스 지로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잠깐 한 적이 있는데(링크) 일본에서 처음 청바지를 입었다고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외교관, 사업가 등으로 일본에서 상당히 유명한 사람임... 여튼 이 사람을 시작으로 일본 최초 청바지 칸톤을 거쳐 빅존까지 이야기를 잠깐 해보려고 한다. 이 이야기의 베이스는 아메토라 4챕터(링크), 헤델스의 칸톤(링크), 빅존(링크) 기사. 


그런데 아메토라 번역본 왜 안 나오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디선가 판권을 가져간 것으로 아는데 혹시 아직 아무도 안하고 있다면 저에게 맡겨 보는 게 어떨까요... 계속 주장하고 있음...



시라스 지로는 1930년대에 샌 프란시코에 공부하러 갔다가 청바지라는 옷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다. 그러다가 일본으로 돌아와 전쟁이 끝난 후 일본 - 미국 사이의 전후 교섭을 담당하게 되는데 그 때 맥아더가 있던 부대의 PX에서 리바이스의 501을 구입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맺으러 간다. 이 조약은 유명하고 우리는 참여도 못한 채 꽤 힘든 미래를 안겨줬기 때문에 여기 참고(링크). 여튼 여기서 청바지 입고 있던 사진이 찍혔는데 그게 꽤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낡은 청바지가 인기있던 상태라 이런 빠릿빠릿한 느낌이 나는 청바지를 이 사진으로 처음 본 사람이 많다고 한다. 1950년 즈음 구입했다고 치면 전후 버전(1947)일 가능성이 높다. 처음부터 아주 좋은 걸 입었군.




빅존 이야기를 하기 전에 1930~1950년 사이 일본의 청바지 상황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 보자면


1) 


당시 바지는 대부분 울 : 청바지는 면, 날씨에 더 잘 맞는다!

당시 옷은 대부분 카키 계열(군복과 국민 표준 의상) : 이건 청색이다!

-> 인기 많음


하지만 전쟁 및 전쟁이 끝난 후 주둔 미군 때문에 청바지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구할 수가 없었고(아메요코의 미군 구제 시장에 가끔 나올 뿐이었다) 수입 제한이 걸려 있어서 1957년 첫 번째 대량 수입 물량(중고)이 들어올 때까지 청바지란 아주 보기 힘든 옷이었다. 하지만 마루세루 같은 아메요코 가게의 매출 절반 이상을 어느덧 청바지가 차지하게 되었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부족했다. 여기서 인기 있는 옷은 물이 빠져서 부드러워진 중고 청바지. 1957년 이후 수입 규제가 완화되면서 리와 리바이스의 청바지를 수입했는데 빳빳하고 딱딱해서 인기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체 생산 청바지에 대한 수요는 충분했다. 하지만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2)


오카야마의 코지마는 면 -> 섬유 생산 그리고 염색의 본고장이었는데 1921년 어떤 사업가가 스무 대의 재봉틀을 기증하면서 옷 생산지로 새롭게 변신한다. 특히 교복 생산에 특화를 했는데 1937년 경 일본 교복의 90퍼센트가 코지마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토레이 앤 테이진에서 만든 테토론이라는 폴리에스테르 섬유가 가볍고 방수도 잘되고 해서 인기를 끌어 교복을 이걸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섬유의 특허를 가지고 있는 토레이 앤 테이진은 자사 공장, 예하 그룹 외에 이 섬유를 공급하지 않았다. 이 지역 톱 유니폼 메이커였던 마루오는 전환점에 서게 된다.


당시 설립자 오자키 코타루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직원 카시노 시즈오와 오시마 토시오가 지팡(G.I Pants = 진, 아메요코에서 나온 말이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마루오는 청바지 제조사로 방향을 틀기로 결심한다. 그게 1964년의 일이다.




3) 


이제부터 청바지 제작 이야기다. 청바지를 만들어 보려고 아메요코에서 청바지를 사다가 연구를 하지만 어떻게 그런 페이딩이 나오며 낡는지 원단 - 염색의 비밀을 풀지 못했다. 그래서 수입을 결정하고 이런 저런 루트를 뚫게 되는 데 콘 밀스와의 계약은 불발되었지만 조지아 주에 있는 칸톤 밀스에서 데님 원단을 팔기로 한다. 그렇게 구입한 14.5온스 데님이 마루오의 코지마 공장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마루오에 있던 미쓰비씨와 주키 재봉틀은 모두 두꺼운 데님 원단에 싱글 스티치를 뚫는 데 실패했고 바늘을 바꿨지만 그래도 안됐다. 그래서 유니언 스페셜의 재봉틀을 미국에서 수입한다.


또 부자재도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칸톤 밀에서 스티치용 오렌지 실도 사고, 스코빌에서 리벳을 사고, 탈론에서 지퍼를 산다. 결국 모든 걸 다 수입해서 1965년 칸톤이라는 브랜드 명으로 최초의 청바지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당시 칸톤의 새 청바지가 800엔이었고 리바이스의 중고 청바지가 1400엔일 만큼 가격 차이가 있었는데 판매는 중고 청바지가 10배 쯤 많았다고 한다. 위에서 말했듯 딱딱하고 빳빳한 새 청바지는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 워시 해서 팔자!고 결정을 하는데 워낙 대량에 딱딱한 옷이라 공장에 있는 세탁기가 모두 고장나 버렸다고 한다. 구덩이 파서 거기에서 빨고 그랬다고 함. 또 이게 문제가 생기는 게 백화점에 납품하려고 했더니 한 번 세탁한 옷이라니 우리는 새 옷만 팔아요! 하면서 거부했다.


이러는 와중에 도쿄에서는 에드윈이 만들어졌고 이제 라이벌 회사가 하나 생겼다. 마루오는 좀 더 신박한 브랜드 네임을 붙이기로 하고 고민하다가 빅존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했다. JFK도 생각나서 미국 옷 같고 뭐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1967년 드디어 빅존에서 스트레이트, 프리쉬렁크, 5포켓 웨스턴 진 M1002가 처음으로 나오게 된다.



빅존 청바지의 디테일은 잘 몰라서 위 사진이 언제쯤 모델인지는 모르겠다.



이후로도 VAN과의 결합(VAN은 아이비 패션을 주장하는데 실제 Take IVY를 보면 대부분 청바지를 입고 있는데 VAN에선 치노만 판다! 어떻게 된거냐!) / 리바이스와 리, 랭글러(랭글러를 VAN에서 수입한다)가 들어오고, 에드윈과의 경쟁 / 1960년대 말부터 히피 시대, 전공투 시대 등등이 전개되는 등 복잡한 일이 청바지 주변을 거치게 된다.


여하튼 1976년 현황으로 빅존이 150억엔, 에드윈이 65억엔, 리바이스 재팬이 56억엔 정도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하니 마루오의 결정은 여튼 굉장히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최초로 만든 데님 패브릭은 쿠라보 밀스가 1972년에 내놓는다. 이걸 가지고 빅존은 시그니처 M시리즈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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