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옷의 즐거움

청바지의 주머니 천 이야기

by macrostar 2017. 7. 14.
반응형

디테일이라는 게 보통 그러하듯 청바지 주머니의 천이란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누군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어떤 것이다. 뭐 주머니 천만 가지고 구매와 선호의 기준까지 되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어쨌든 재밌거나, 튼튼하거나, 다른 특색이 있거나 하는 건 삶 속에 숨겨진 즐거운 포인트다. 폴 스미스 옷 보면 안감 재밌는 거 쓰는 경우가 많은데 여튼 주머니 천이란 보통의 경우 온연히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의 몫이라는 게 이 즐거움의 가장 큰 포인트다.


사실 페이딩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청바지 주머니란 디테일을 위해 존재할 뿐 사용하지 않는 것 정도, 많이 봐줘봐야 있을 땐 모르는 데 없으면 불편한 것 정도의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보통 청바지들은 얇은 헤링본 면 같은 걸 쓰는데 일단은 신축적인 면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머니 천이 옷을 불편하게 하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없애려는 게(+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서 비용의 절감) 아닐까 싶다. 그 부실한 주머니 천이 너무나 싫었는데... 예전에 이야기 했듯 처음으로 구입한 빈티지 제작 방식의 바지가 슈가 케인 제품이었는데 처음 받아보고 뒤적거리다가 주머니를 보고 실로 감탄하고 말았었다. 그 두꺼운 헤링본 면이라니 그래 바로 이런 걸 찾고 있었어...




어쨌든 주머니 천 이야기를 하자면 리바이스의 1944 모델, 소위 대전 모델 이야기를 해야 한다. LVC 홈페이지를 보면(링크) 같은 501이라도 전환점이 된 몇 개의 연도를 기준으로 모델을 만들고 있다. 옛날에 일본에서 레플리카를 만들 때 부터 생겨난 일종의 이정표다. 뭐 복잡한데 1960년대 기준으로 그 전 모델들은 옛날로 갈 수록 크고 벙벙하고 이런 올드 스타일이 된다. 


사실 그 당시 실제 모델과는 차이가 좀 있고 몇 개의 요소를 정해 놓고 그 유무에 따라 연도 모델이 갈린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수집을 할 게 아니라면 1937(허리 뒤에 신치백이 있다), 1944(전쟁 때 나온 거라 물자 제한으로 빠진 게 많다), 1947(전쟁 끝나고 나온 거라 신난다고 넣을 수 있는 건 뭐든 다 넣었다) 이렇게 보면 된다.


1944 대전 모델의 주요 특징이라면 코인 포켓에 리벳이 없다, 주머니 천을 구할 수 있는 걸 구해다 썼다, 뒷 주머니 갈매기 스티치 실을 못 쓰게 해서 그려 넣었다, 버튼은 도넛 버튼을 썼다(링크) 정도가 있다. 하지만 히든 리벳은 있는데 뒷 주머니를 튼튼하게 고정하는 바택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60년대에 나오기 전까지는 다 리벳이 들어있었다. 바택을 있었다면 코인 포켓에 리벳 정도는 쓰게 해줬을 텐데... 어쨌든 이 시절에 다양한 주머니 천이 사용되었다...가 오늘은 중요한 점이다.




뭐 말이 아무거나 구해다 썼다고 하지만 거의 다 올리브 그린의 헤링본 천이다. 실제 1944년 제품을 본 적이 없어서 저 주머니의 두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엔 오늘날처럼 얇게 만든 코튼 천이 거의 없었으므로 그래도 어느 정도의 두께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LVC는... 애초에 주머니 천이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다. 풀카운트나 웨어하우스의 경우 뭔가 오리지널 느낌이 나지만 두껍고 튼튼하다는 느낌은 좀 덜하다. 특히나 슬림 스트레이트 + 매우 부드러운 같은 게 기본적으로 대세라 빳빳하고 두꺼운 주머니 천은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이유로 많은 청바지 브랜드들 중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주머니 천을 활용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특히 레플리카 제작 방식에 기반한 브랜드들은 보통은 두터운 헤링본, 세일 클로쓰(sail cloth) 같은 걸 많이 쓰는데 하얀색, 오프 화이트, 베이지 같은 게 일단은 주류다. 그렇지만 대전 모델에 있어서는 장난을 좀 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독특한 주머니 천은 도넛 버튼과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LVC 1944. 전통적인 올리브 그린.




스튜디오 다티산의 D1538XX는 카무플라주를 사용했다.





사무라이 진의 대전 모델인 S3000의 빨간색 주머니 천은 나름 이 브랜드의 상징적인 천으로 유명하다. 상당히 인상적이다.





풀카운트의 1100 WWII 대전모델 리미티드 버전. 풀카운트는 진중하고 좋은 청바지를 만드는 회사지만 주머니 천만 봐도 유머가 넘치는 곳은 아니다. 그저 츠지타 미키하루 생긴 모습이 재밌을 뿐...





페로의 421은 양쪽을 다른 컬러를 사용했다. 421의 경우 도넛 버튼인데 붙어 있는 다섯 개가 다 다르게 생겼다. 




"손에 잡히는 대로 구해다 썼음"을 나름의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다.




대전 모델이 아닌 경우에도 다양한 주머니 천을 사용하는 데 미국 쪽이 그런 경향이 많은 거 같다. 




윌리엄스버그 가먼츠 컴패니의 성조기 주머니 천도 꽤 유명하다. WGC는 모리스 멀론이라고 힙합도 하고 패션계에서 성공도 하고 그런 분이 운영하는 회사인데 "소규모 데님 회사가 옷을 만들어 내고 살아남는 법" 분야에 있어 상당한 개척을 한 분이기도 하다. 이 분 이야기 꽤 재미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슈가 케인의 경우 브랜드 이름을 사탕수수라고 해버려서 인지 사탕수수를 가지고 뭘 해보려는 게 꽤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게 론스타(lonestar) 시리즈와 오키나와 시리즈다. 론스타의 경우 면 90%에 사탕수수 10%라 많이 티는 나지 않는데 오키나와 시리즈의 경우 면 50%에 사탕수수 50%다. 사탕수수의 뭘 뽑아서 쓰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여튼 그렇다. 설명에 의하면 항균 작용, 냄새 억제 뭐 이런 것도 있다고 하고(은나노 같은 건가...) 독특한 냄새가 난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잘은 모르겠다.




약간 덧붙이자면 이건 내 생각이긴 한데 : 레플리카 청바지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빈티지 리바이스의 세로 줄이 생기면서 물이 빠지는 걸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레플리카니까 오리지널의 느낌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여러 브랜드들이 그런 식의 물 빠짐을 구현해 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이게 원단과 인디고, 염색 방법의 조화로 이뤄지는 건데 결론적으로 오리지널처럼 물이 빠지는 건 거의 없고 각자 특유한 방식을 만들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슈가 케인을 비롯해 맥코이 예전 버전이나 실버스톤, 버카이로 등이 또 팬을 만들게 되었다. 


슈가 케인의 오키나와를 보면 합성 인디고에 류큐 염색인가 뭔가를 섞어 사용하는데 청바지인데 물 빠지면서 붉은 빛이 돌고(괴상하다), 세로 줄이 생기는 걸 넘어서 비오는 듯한 줄이 생긴다(더 괴상하다). 즉 엄청나게 과한 뭔가가 나왔는데 그게 또 재미있으니까 자리를 잡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연유로 처음 나온 지 20년 가까이 지났는데 여전히 나오고 있는 스테디 셀러가 되어있다. 연금술이 화학을 발전시켰듯 세로 줄로 빠지는 인디고를 연구하다가 이런 괴상한 것들이 나온 거라고 볼 수 있다...



슈가 케인 오키나와 시리즈의 SC40401 제품의 탈색 모습을 보면 붉은 기운 + 장대비 페이딩을 볼 수 있다. 하나 가지고 있는데 암만 봐도 현대인의 사회 생활용 옷이 아니지만(세로 줄 탈색 자체를 지저분하게 보여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매력이겠지.


이야기가 잠깐 엇나갔는데 슈가 케인의 오키나와 시리즈, 정체를 잘 알 수 없지만 예전에 나온 듯한 흔적을 인터넷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하와이 호놀룰루 시리즈와 에도 시리즈 같은 제품들을 보면 주머니 천에 장난을 많이 쳐서 특이한 것들이 많다. 





이건 드라이본스인데 코튼 트윌에 인디고 염색을 했다. 저 자리에 인디고 염색을 해 놓으면 속옷과 허벅지가 파래 질텐데...





이건 인디페고라. 현대의 소규모 셀비지 데님 회사들은 아무래도 일본 레플리카를 입으면서 청바지에 대해 뭔가 깨닫고, 오카야마에 가서 배워오고 하는 경우가 많고, 인디고 염색 배운다고 기모노 염색하는(전통 인디고 염색이 발달해 있고 일본 셀비지 청바지의 천연 염색 쪽의 경우 이 방식을 배워 활용하는 곳이 대다수다) 워크샵을 다니고 등등등 일본과 만날 일이 많다. 게다가 일본 레플리카 씬은 매우 복잡 교묘하게 자기네 전통 문화 - 면 생산과 염색 등등 - 와 결합해 있기도 하다. 그러한 이유로 미국 등의 소규모 셀비지 데님 메이커들을 보면 일본색 적어도 뭔가 동양의 느낌 같은 게 강하게 베어 있는 곳이 많다. 


뭐 누군가 대구, 구미산 셀비지 데님을 가지고 섬진강 쪽빛 염색을 해서 청바지를 만들어 볼 수도 있겠지. 여튼 뭐 그렇다는 이야기. 결론은 주머니의 재미도 찾아봅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