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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오랫동안 입은 옷 이야기

by macrostar 2017.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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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일보 칼럼에 "옷을 오랫동안 입는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여기(링크)에서 볼 수 있으니 못 보신 분들은 다들 읽어주시길 바라며 :-) 기사보다 약간 더 텀이 긴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게 칼럼이라지만 사실 옷을 오랫동안 입는 즐거움이라는 건 평생 따라다닐 수도 있는 이야기다. 


패션이 주는 즐거움이 있고 옷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이 둘은 다르다. 물론 패션에도 "잘 만듦" 혹은 트렌디해서 산 건데 입다 보니 정이 들었음 같은 게 있다. 옷도 마찬가지로 무리 없이 오래 입을 수 있을 거 같거나 또는 매번 쓰던 거라 샀는데 알고보니 트렌드 세터가 되어 있다든가... 하는 일이 드물지만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야구 모자와 스냅백의 관계를 들 수 있다. 남들이 뭐라 하든 야구 모자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다 보면 유행은 돌고 돌고, 처음 샀을 때 괜찮은 거였고 운이 좀 따른다면 레트로가 되기도 하고 매우 드물지만 심지어 가격이 오르기도 한다. 하이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이 믹스 앤 매치를 넘어서 그냥 완전히 뒤섞여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점점 더 높다.


어쨌든 패션의 즐거움과 옷의 즐거움은 상당히 다른 영역이고 둘 다 각자 즐거우니 할 수만 있다면 둘 다 알맞게 추구하는 삶이 더 즐거울 수 있을 거 같다. 여튼 옷, 특히 평범한 옷에서는 만듦새를 구경하거나, 조금씩 다른 브랜드의 특징을 알아 가거나, 선호하는 디테일을 완성해 가는 일(단추, 원단, 실, 접는 방식, 봉제 방식 등등)이 생길 수 있고 그 중 가장 즐거운 건 오랫동안 입는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도 종종 그런 방면의 이야기를 쓰는 데 한참 이상한 옷 이야기를 쓴 적도 있고(링크), 오래 입은 청바지 이야기도 몇 개 찾을 수 있다.


맨 위에 적은 칼럼에서는 옷을 오래 입는 걸 정착시켜 보려는(의도가 무엇이든) 소비자와 생산자 양쪽의 태도 몇 가지에 대해 적었는데 그 중 하나가 파타고니아의 원 웨어(Worn Wear) 캠페인이다. 풀 프레이즈로 Worn Wear - Better than New. 



오래 입는 다는 건 그냥 막무가내로 오래 입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관리가 필요하고(알맞은 세탁), 수선이 필요하다. 운도 따라줘야 한다. 예컨대 실수로 삶은 꽃게 물이 바지로 쏟아지거나 하면 회생이 상당히 어렵다(냄새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경험이다). 그렇다고 캐주얼 웨어를 입고 너무 조심조심 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운이라는 거다.


수선도 쉬운 일이 아닌데 우선 좋은 수선집을 확보하기가 어렵고, 대화가 잘 안 통하고 + 만약 수선집 특유의 의류 철학이 결합하면 괴상하게 바꿔 놓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리고 비싸다. 대개의 경우 비싸다. 물론 일본 청바지 수선집의 블로그를 종종 보는 데 거기 만큼 비싸진 않은 거 같지만(낡은 501 전면 수리하는 데 2, 3만엔 정도 들더라고) 그래도 비싸다. 즉 10만원 정도 되는 셔츠를 3년 입었을 때 가치가 얼마일까 같은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하는 상황이 온다. 게다가 유니클로에서 그럴 듯한 옥스퍼드 셔츠를 2만 9천원에 구입할 수 있고 심지어 가끔 매대에서 5천원에 팔고 있는 경우(내가 가지고 있는 셔츠 모두 5천원 주고 샀는데 이거 말고도 몇 년 째 중고 아니면 유니클로 매대에서만 뭘 사고 있는 거 같다) 뭘 어떻게 생각해도 이 셈에는 승산이 없다.


결국 이 "취미"는(이건 취미로 정착시키는 방법 밖에 없고 그러므로 혹시나 그렇게 해서 환경에 도움이 된다든가 하는 건 어디까지나 외부 효과다) 나름 정이 들고 이들과는 함께 간다고 결심할 옷을 몇 벌 정도에서 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나아간다. 모두와 함께 갈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어떤 옷에 대해 정말 속속들이 알게 되는 즐거움이 생길 수 있다.


여튼 뭐 파타고니아에서 원 웨어 캠페인의 일환으로 독자 투고 형식의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린다. 많이 올라오는 건 아닌데 가끔 올라오는 거 보면 꽤 재미있다. 며칠 전에 쓴 페이드 오브 더 데이(링크)처럼 각자의 삶이 그 옷에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 지금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가가 핵심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추억을 소환하는 매개체가 되버리는 건 좋은 방식은 아니라고 여기지만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오래 입다 보면 뭔가가 쌓이는 법이다. 파타고니아 코리아에서 번역도 열심히 해 올려 놓고 있으니 가끔씩 보면 재밌다.








위에 건 30분 정도고 아래 건 3분 정도로 짧다. 파타고니아는 아웃도어 브랜드니까 아무래도 등산, 달리기, 서핑(위 영상을 보며 새삼 느끼는 게 서핑에 빠지면 정말 답 없는 듯) 쪽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있으니 거의 다 말하자면 히피들이다. 위 영상을 보면 너무 오랫동안 입고 파타고니아에 돌려주고 싶다는 분도 있는데 나도 그런 게 하나 있다. 뭐 그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아웃도어 말고 도심 속에서 조용히 오랫동안 생존해 온 옷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그런 건 여기에도 가끔 올리고 있고 겸사겸사 혹시 뭐 투고하실 거 있으시면 알려주시길. 옷 대담 같은 거라도 한 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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