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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임시적 균형의 지속

by macrostar 2017.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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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칼럼(링크)에 덧붙이는 이야기 하나 더. 짧은 지면에 맞추다 보니 세 단락 정도의 내용을 하나의 단락으로 압축했고, 그랬더니 문장이 너무 꼬여서 기자님의 요청에 따라 좀 더 정리하다가 아예 없애버렸다. 이걸 따로 하나의 칼럼으로 구성하는 건 불필요한 일이라 생각되니 이 자리에 써 본다. 혹시 나중에 관련된 일이 생긴다면 또 쓸 수도 있겠지만.


칼럼에서는 여성 디자이너들이 상업적, 전략적, 시대 변화에 맞춰 늘어나고 있는 추세고 특히 LVMH 같은 큰 회사가 빅 네임의 하우스에 여성 디자이너를 임명하면서 그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썼다. 


한정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여성 디자이너가 여성의 옷을 만드는 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특히 하이 패션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여성이 여성의 옷을 만들면 필요한 게 뭔지, 불필요한 게 뭔지, 몸의 생김새가 어떤지 더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더 잘 맞는 옷이 나온다. 하지만 하이 패션이란 그냥 옷과는 다른 세계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인간이란 틀을 깨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고 믿고 그런 와중에 새로운 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예컨대 군미필의 여성 국방부 장관이라든가 미혼 남성의 여성부 장관 같은 경우도 단점이 있겠지만 장점도 있다. 무엇이 더 필요한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 또한 이런 게 단지 기존 체제를 강화하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왜 그러냐는 전체적인 맥락이 중요하다. 디올이나 지방시의 현재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기존의 디자이너들이 약점을 극복하고 화려함을 더하는 식으로 나아갔다면 이제는 남들이 다 하게 된 걸 버리고 새로운 뷰를 만들어 가야 할 시기인데 그걸 적시에 시작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는 옷의 한계 지점을 탐구하며 거기서 더 나아가보는 괴팍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와 똑같은 거면서 조금 더 잘 만든 옷, 조금 더 좋은 소재 같은 건 큰 의미가 없다. 그런 건 비스포크나 레플리카 씬 같은 프리미엄 크래프트 등에서 의미가 있다. 잘 만든 옷은 조건의 하나일 뿐이다. 하이 패션은 6개월 짜리 운명을 지니고 현시점에서 상상력의 맨 끝을 돌아다니기 위한 분야고 동시에 상업적인 분야다.



이런 씬에서는 혼자 자각을 한다든가 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이에 대한 이야기는 위 칼럼에 적었다, 사람을 교체하는 더 편하고 확실한 수를 쓰게 된다), 또한 제작자 = 사용자라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남성 그리고 다양한 성적 경향을 지닌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이 바라보는 여성의 옷을 만들게 되고 그건 혹시 불편하고 불필요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멋지거나 스타일리시한 무언가를 내놓을 가능성이 더 높게 된다. 그러므로 이 씬은 더 다양하고 넓어질 수 있다.


이건 제작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옷을 만들 줄 아는, 그러니까 전통적인 제작 방법을 몸에 익히고 있으면서 동시에 세계의 흐름을 바라볼 줄 아는 감각이 있는 이들이 하이 패션을 이끌었다. 마크 제이콥스나 알렉산더 맥퀸이 그랬고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옷을 만들 줄 아는 범위 안에서 그걸 깨 가며 패션을 바라보고 만들어 간다. 하지만 이런 건 경로가 고정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러므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트 디렉터에게 필요한 건 옷을 만드는 방식에 대한 이해 그리고 약간은 터무니 없는 걸 요구하는 능력이다. 전혀 이상한 것들이 나올 수 있고 그런 것들에 의해 기존의 방식을 깰 가능성이 높다. 뭔가에 고정되어 있다는 건 사고에 한계를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미우치아 프라다, 헬무트 랑 등은 옷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요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카니에, 비욘세, 리안나, 퍼렐 같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생각하는 걸 구현해 낼 수 있고 그걸 위한 훌륭한 스탭진과 함께 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들은 옷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또한 엉뚱한, 만드는 이들은 저 인간은 옷을 하나도 몰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일을 벌리는 게 가능해진다. 이런 건 매우 중요하다. 옷을 전혀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이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게 패션이라는 장이 가진 가장 큰 능력이자 잠재력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한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균형이다. 글에서는 12:2 이야기를 했고 이건 불균형의 현실을 상징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지만 이건 기계적으로 맞출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어떤 이상적인 지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남성은? 여성은? 그럴하면 게이는?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흑인? 아시안? 중동계? 극지방 사람은? 등등 끊임없는 이야기나 나온다. 그리고 상업적 균형이란 어떤 시점에 누가 무엇을 들고 치고 나오느냐, 그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로 만들어진다. 때가 무르익기 직전, 그게 평범한 일이 되기 직전에 움직이는 건 오랫동안 하이 패션이 해온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딘가가 특이한 모션을 취할 때 더 큰 눈으로 바라보곤 하는 거다.


이 바닥은 경쟁이 매우 치열하고, 조막만하지만 돈은 많은 이상한 형태의 시장에 기대고 있다. 광범위한 사람들과 지역에 옷을 판매하는 유니클로나 갭, 리바이스나 자라와는 다른 길이다. 이런 게 요새 마구 섞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좀 더 오래 남기 위해선,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하이 패션이 이래서 다르다는 걸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들이 편견 없이 마구 섞여 있어야 한다. 


예전에 어떤 디자이너가 "우선 팔려야 하잖아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건 애초에 시작이 틀린 말이다. 없던 걸 내놓고 팔리게 만들어 내는게 하이 패션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시장만 바라보며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 잘 팔리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잘 팔리는 것, 시장 조차 애초에 생각하지 못했던 걸 내놓고 시장을 통으로 끌고 가는 게 이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를 위해서라면 관행과 정상이라는 혐오의 다른 이름을 달고 상상력의 폭을 억압하려는 시도들을 더욱 과감하게 밀어 내야 한다.


물론 갈 길은 아주 멀고 이런 과정에 계속해서 순간의 균형점들은 만들어진다. 극한의 다양성과 그게 만들어 내는 균형이 이 바닥을 더욱 멋지고 풍요롭게 만들어 낼 테고 그걸 잠시도 가만히 머무르지 못하고 어떻게든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게 다들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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