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차 대전과 뜨개질

by macrostar 2017. 2. 24.
반응형

1, 2차 세계 대전 때 군복은 아직 합성 섬유가 발달하기 전이라 코튼, 트윌, 가죽 등등을 사용한 게 다수였고 이런 것들이 좋은 점도 많긴 하지만 추위와 비 등을 막아내는 데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보온의 문제는 심각하게는 다리 절단,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으므로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위 사진 : 아무 거나 만들어 보내면 전투 상황에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떤 제품이 필요한지 잡지 등에서 도안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후방에서 수많은 니트 보온재가 뜨개질로 만들어졌고 전장에 보내졌다. 공장의 쉬는 시간 등등을 활용해 뜨개질을 하도록 캠페인이 계속 되었고 아무래도 여성 참여자가 많기는 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모자랐기 때문에 남성, 어린 아이 등등에게 전선의 군인들을 위한 뜨개질을 독려했다.



뜨개질 독려 포스터들.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캠페인을 벌였고 왕실도 참가했다. 또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캠페인이 벌어졌고 적십자에서 수거해 전장으로 보냈다.



버스 드라이버들도 잠깐 정차 중인 시간을 활용해 뜨개질을 하자!는 캠페인도 있었다.


또한 전장에서도 자신을 보호할 보온재를 만듦과 동시에 정신 건강을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부상자 병원에서 활용했고 인기도 많았다고 한다.



위 사진은 1918년 월터 리드 병원. 1918년이니까 1차 대전 때다.


이렇게 1940년대 까지는 전장에서의 생존 필수품으로 뜨개질 의류가 필요했지만 이후 합성 섬유가 발전하고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특히 미군의 방한 의류가 대대적으로 리뉴얼 되었다. 한국의 겨울이 너무나 추웠기 때문이다...


물론 손 뜨개질로 만드는 니트류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아주 고급품 혹은 (취미 더해서) 홈 메이드로 만드는 제품류로 나뉘어져 있다. 고급의 뜨개질 기술은 물론 보존이 필요한 분야지만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몇 년 전 인디펜던트 기사를 보면 남성 인구가 상당히 늘어나고 있다(링크). 기사에 의하면 여전히 여성 뜨개질러(knitters)가 다수지만 이 갭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서 예컨대 대형 뜨개질 이벤트 신청자를 보면 남성 비율이 2년 사이에 20%에서 40%로 뛰었다고 한다. 사실 뜨개질 역사를 보면 영국의 피셔맨 스웨터 같은 건 남성들이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여튼 남자고 여자고 나라 사정이 생활 필수품으로 뜨개질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스트레스 해소, 정서적 안정 등을 위해 뜨개질에 새로 입문하고 있다고 한다. 이 거친 세상을 잠시나마 잊고 뭔가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보자면 프라모델이나 레고 등을 만드는 것과 취미의 측면에서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입을 수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