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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점퍼의 기원에 대해서

by macrostar 2016.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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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기원이야 이동하는 수렵 동물이었으니까 뭐 짐승 가죽 아니면 나뭇잎이겠지... 이름이 붙어 있는 옷들 - 점퍼, 스웨터, 몸빼, 블레이저 등등 - 의 기원을 추적해 보는 일은 하릴 없는 일이 될 가능성이 높은 데 긴 시간 동안 추위와 필요에 맞서 이것 저것 해보다가 이쯤 괜찮은 데 싶었던 곳에서 멈추고 파고 들어가기 시작하는 식으로 일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몸빼 같은 경우 어느 시대에 누군가가 어느 공장에서 처음 지금의 원형을 만들어 낸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 사람을 찾아내는 건 별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니다. 그냥 하카타, 작업복, 세계 전쟁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가 어느날 모호한 그림 속에서 짠 하고 지금의 모습이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 정도가 심심할 때 해 볼만 한 일이다.


군대의 표준화 작업이 있었을 경우에는 자료가 남기 때문에 그나마 추적이 용이한 편이다. 예컨데 파일럿 재킷 이야기를 잠깐 해 보자면...



부실한 방한 상태에서 비행기를 타고 빠르게 날면 당연히 춥기 때문에 전투기 조종사들은 뭐든 껴입어야 했는데 열선도 써보고 양털 옷을 입기도 하고 이런 저런 방책을 강구했다. 그러다가 가죽으로 된 봄버 타입의 A-1 AN6501이라는 파일럿 재킷이 처음 나온 게 1927년이었다. 위 사진은 어딘가에서 레플리카로 만든 제품이다. 


이 재킷은 미국 육군과 해군이 함께 사용했다. 말가죽으로 만들었고 가운데 커다란 다섯 개의 단추가 특징이다. 그리고 스탠드 카라다. 처음엔 이렇게 했었는데 곧 나오게 되는 A-2부터는 쭉 평범한 카라가 붙어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팔목과 허리의 시보리다. 시보리는 사실 뜻이 달라서 이 말도 추적을 좀 해봐야 하는데... 립... 여튼 이건 나중에... 일단은 그냥 시장통 용어로.


육군과 해군이 추후 사용하게 되는 A-2와 G 시리즈, MA 시리즈 등등에서 저 시보리는 빠지지 않았다. 완전 방한용 옷인 B계열에는 종종 빠진 적이 있다. 


아무튼 미군은 추위에 떨고 있는 전투기 조종사용 복장을 만들기 위해 1917년에 the Aviation Clothing Board라는 걸 조직해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몇 개 내놓은 게 있는데 1927년에 나온 위 옷은 1922년 경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영국의 경우 약간 다른데 레슬리 어빈이라는 분이 지금으로 치면 무스탕처럼 생긴 쉽스킨 재킷을 디자인했다.


이게 나온 이후야 공식적인 것들이니 잔뜩 찾을 수 있는데 그럼 저 모양이 대체 어디서 왔느냐를 찾아보자면 이야기가 좀 복잡해진다. 사실 요새 이 부분, 22~27년의 연구에서 뭘 참조했는가가 궁금해서 시간날 때 종종 찾아보고 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미군 기병대 전통 복장에서 왔다고도 하고(이건 전통의 연결을 위해 가져다 붙인 게 아닐까 생각한다) 뭐 이런 저런 다른 설들이 잔뜩 있다. 여튼 뿌연 이미지 속에 있다가 1922~1927의 연구를 거치면서 뿅하고 저게 나왔다라고 보는 게 가장 간단하긴 한데...


몇 가지 가능성을 검토해 보자면 :


우선 야구 점퍼로 유명한 골든 베어가 있다. 골든 베어는 1922년 샌 프란시스코에서 오픈했는데(창업자는 독일에 살던 유태인으로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처음 시작한 게 당시 샌 프란시스코 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입는 팔은 가죽으로 되어 있고 몸통은 울로 되어 있는 옷이다. 가죽과 울의 결합이라는 구조는 요즘 야구 점퍼와 같다. 그런데 당시 골든 베어가 만든 게 어떤 모습이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이 회사는 2차 대전 중에 MA나 B시리즈 등 봄버 재킷을 만들어 미군에 납품했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 야구 점퍼 생산을 본격화한다. 50년대에 대표팀 바시티가 유행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까 저 노동자들이 입던 골든 베어 점퍼가 맨 위 사진처럼 생긴 거였는지 아니면 요즘 모습은 군용 점퍼를 생산하다가 둘이 합쳐진 건지 잘 모르겠다. 사실 1920년대 즈음의 다른 워크웨어를 생각해 보면 립이 달린 위 사진의 플라이트 재킷처럼 생긴 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은 한다. 어쨌든 이런 점에서 야구 점퍼는 형태보다 재질의 결합이 먼저 탄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는 세계 대전 참전 군인들이 벨기에 등지에서 추위에 떨며 참호 전투를 했었는데 당시 너무 추워서 바람을 막기 위해 재킷 손목에 양말을 붙인 옷들이 남아 있다. 누군가 추워서 양말을 손에 끼고 있다가 이럴 거면 차라리 옷에 달아버리자 하다가 이런 걸 기발하게 생각해 냈을테고 주변에서 보고 따라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게 저 위 A-1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좀 궁금하다. 인간이란 한정된 자원, 열악한 상황 같은 조건 하에서 꽤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 자원이 넘치고 있다면 이런 걸 생각해 낼 필요가 없으니까...


아무튼 따져보면 저 위의 옷 형태는 몇 차례 변형을 거쳐 그야말로 미국의 대표 옷이 되었다. 플라이트 재킷, 봄버 재킷, 바시티 점퍼, 야구 잠바 등등 여러 다양한 변종의 조상격이다. 뭐 그 이후 이야기가 사실 더 중요하다는 뜻에서 한번 써봤음... 배고파 져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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