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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옷들은 무엇을 회상하는가

by macrostar 2016.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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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란 보통 현재 지향적이다. 캣워크에 오르고 매장에 풀리고 그 시즌을 산다. 그러고 나면 유행이 지나버린 과거의 유산이 되어 버리고 시즌 오프라는 이름으로 할인되어 팔린다. 옷과 트렌드가 합쳐진 재화에서 후자가 사라져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날이 갈 수록 후자의 가치는 더 떨어지고 몇 년 지나면 전자의 가치도 떨어진다. 특별히 시대적 의미를 담은 단 한 벌 이런 거면 몰라도 복제된 의상들은 이런 감가상각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은 시대를 담고 있고 그러므로 예컨대 고생했던 한 때, 잘 나가던 한 때 등 추억의 매개체로 활용될 수 있다. 요새야 뭐 시대별 옷이 하도 섞여버려서 의미의 힘이 예전보다 약해졌긴 하지만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 어느 시점의 패션은 여전히 눈에 잘 띄는 시그널로 작동은 하고 있다.


복각 옷, 레플리카의 경우엔 이야기가 좀 많이 달라진다. 예컨대 아메리칸 트래디셔날을 다시 궤도에 올려 놓은 일본이나 그 영향으로 자체 복각 모델을 생산하기 시작한 리바이스, 또 그때 있었을 법한 옷을 만드는 더블알엘이나 이런 것들이 향하고 있는 과거는 대부분 1900년대 초, 가까워져 봤자 1940, 50년대가 보통이다. 이런 옷들은 당시의 소재를 찾아내고, 당시의 방식으로 만들고 때로 그 옷을 입었을 만한 사람들이 옷에 남겼을 흔적을 재현한다. 




왼쪽은 미스터 프리덤의 오키나와 CPO 셔츠, 오른쪽은 카피탈의 사시코 보로 데님.


1900년대 초반 카우보이, 벌목꾼, 부두 노동자, 철도 노동자, 사냥꾼, 낚시꾼들이 입었을 법한 옷들이 대체 무엇을 기억하게 만드는가 생각해 보면 그건 영화와 광고, 음악 등이 합쳐져 머리 속에 재구성 된 구축된 기억이다. 그리고 이런 옷들이 재현하는 과거는 이런 옷들 입는 사람들 대부분이 만나본 적이 없는 과거다. 


즉 머리 속에서 구축된 것들이므로 생각을 구체화할 때마다 그럴 듯 함에 있어 점점 더 디테일이 만들어지고, 그걸 현실로 보고, 또 비슷한 다른 것들과 함께 더 강력한 기억을 만들어 낸다. 예컨대 60년대 사이키델릭이나 재즈를 트는 카페나 1900년대 초반 버번을 장만해 놓은 바 등등 그 비슷하게 작동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므로 이런 재현은 상당히 교조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즉 실제로 낡아가는 과정은 우연에 기대는 측면이 많은데 재현된 낡음은 그럴 듯함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예외적인 우연은 구성이 어렵다. 즉 이상적인 낡음을 재현하는 데 목표를 맞춘다. 그러므로 따지고 보자면 빈티지 레플리카는 로리타 패션이나 고딕 패션의 빅토리안 패션 재현과 발상 면에서 크게 다를 건 없다. 다만 재현의 지점이 다를 뿐이다. 



왜 하필 프론티어 시대의 미국인가... 왜 하필 그 시대에서도 가장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들인가....는 조금 더 복잡한 문제인데 이 역시 이상적 소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볼 것이다. 어차피 철광산 노동자용 부츠 레플리카는 철광산 노동자들이 쓰라고 만드는 게 아니고 텍사스에서 몇 달에 걸쳐 기차역이 있는 동네까지 소를 나르는 카우보이용 청바지 레플리카도 말 타면서 쓰라고 만드는 게 아니다. 환상에 기대고 있는 패션이라는 건 이럴 때 보다 정확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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