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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한국 최초의 청바지는 무엇, 입은 사람은 누구

by macrostar 2015.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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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결론을 말한다면 답은 모른다...고. 심심할 때 인터넷을 뒤적거리면서 찾아보는 게 몇 가지 있는 데 그 중 하나가 한국 최초로 청바지를 입은 사람은 누굴까다. 물론 이건 알 수가 없다. 45년 혹은 50년 일 수도 있고, 비싸고 귀하긴 했다지만 그 전에라도 일본 거쳐서 들어온 걸 누군가 어디선가 한 번은 입어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따져보자면 한국 최초로 청바지를 입어본 사람 자신도 그 사실을 알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40년대, 50년대 한국을 찍은 사진 같은 게 보이면 혹시 청바지 입은 사람이 없나...하고 찾아보는 정도다.


이런 식으로 최초 만든 제조사, 등장한 영화, CF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일단 확실한 것 중 하나는 이재연(모델라인 회장)이 최초의 청바지 모델이었다는 거다. 이거 가지고 국립 민속 박물관에서 청바지라는 제목의 전시도 했었다(링크). 


일단 청바지 역사를 살펴보면 원래 광부 옷이었다는 건 유명하고 1928년 대공황 이후 루즈벨트가 미국 곳곳에서 대규모 공사를 벌일 때 사진을 보면 데님으로 제작된 작업복을 입은 사진을 꽤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는 빈티지 맨즈웨어(오른쪽 사이드바 참고)에서 잔뜩 볼 수 있으니 생략.


 

칼하트 오버롤즈 광고.


일단 작업복 용으로 프랑스, 독일 쪽은 코듀로이, 그리고 미국 중심으로 데님이 보통 사용되었는데 우선 알아야 할 건 이게 더 튼튼했지만 분명 치노 류 코튼 바지보다 비싸고 만들기가 어려웠다는 거다. 즉 대량 생산을 해 잔뜩 보급되지 않는 이상 흔히 구할 수 있는 작업용 바지보다 비쌌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일본과 한국의 경우 구하기도 힘들었거니와 더 비쌌다. 그리고 1950년대 중후반 이전에는 어디까지나 작업복 용도의 매우 튼튼한 옷이었지 패셔너블한 아이템이어서 트렌드 리더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물건은 아니었다.


이게 변화를 맞이하게 된 건 1953년 말론 브란도 주연의 "난폭자들"에서 리바이스 501XX, 그리고 1955년 제임스 딘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에서 LEE의 리 라이더스 101을 입고 나온 이후다. 이때부터 운명이 완전히 바뀌고 패셔너블한 아이템으로 대중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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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같은 경우를 보면 미군정이 들어온 45년 정도에 미군 부대 따라서 유입이 된 거로 추정할 수 있는데(PX에서 팔았다) 재밌는 게 처음 입어 봤다는 분이 특정 되어 있다. 시라스 지로(링크)라는 분인데 일제 시대에 관료를 하다가 연합군의 점령 후 요시다 시게루의 측근으로 활약, 장관을 지냈다. 나중에 공사 민영화 와중에 도호쿠 전력 회장도 하고(그렇다, 그 도호쿠 전력) 맥아더와 일화도 있고 여튼 복잡한 사람이다. 


늙어서도 포르쉐 911 타고 다니고 이세이 미야케와도 친하고(일본에서 늙고 유력한 남자가 패션을 좋아하면 반드시 이세이 미야케가 등장한다) 뭐 그랬다고 한다. 일본어 위키피디아에 이 분이 최초로 입었다고 하는데 증거가 나와 있지는 않다. 보아하니 내가 최초로 입었잖아! 뭐 이런 말 한게 굳은 게 아닐지 싶은데... 알 수 없고.


영화의 경우엔 보통 이시하라 유지로가 나온 1957년 영화 鷲と鷹(와시 토 타카, 독수리와 매)를 든다. 위 말론 브란도나 제임스 딘의 반항아 풍 영화인데 건들대는 이시하라 유지로가 배 위에서 여자를 꼬시며 우크렐레를 치고 뭐 그런다. 이 영화를 찾아보면 파란색 셔츠에 파란색 청바지를 입고 있는데... 사실 유튜브 같은 데 찾아보면 잘 안 보이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파란 색으로 염색한 면 셔츠에 면 바지 같다. 하지만 이걸 처음으로 치는 곳들이 많이 있는 걸 보면 청바지는 청바지였나 보다.


최초 생산은 1960년 빅죤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도 말이 많긴 한데 여튼 청바지 브랜드 화 및 대중적 히트에 최초로 성공한 회사인 건 분명하다. 위에서 말했듯 일본에서도 구하기 어렵고 비쌌는데 50년대 후반 들어 수입 제한이 풀리면서 약간 더 세간에 퍼졌고 60년 대 들어 자체 제작이 본격 시작되면서 오카야마 청바지 시대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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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한국. 한국에 유입될 연도와 장소를 추정해 보면 일단 45년 9월 인천에 미군 제 24군단. 50년 6월 전쟁이 나자 부산으로 들어온 미군 제 24사단 정도에서 소유주를 따라 청바지가 함께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후자는 전쟁 시기이므로 뭐 한국인에게 이거 한 번 입어보쇼~ 할 여유는 없었을 걸로 추정되니 전자가 약간 더 가능성이 있는데, 전자 때는 미군도 청바지를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을 거라는 문제점이 있다.


이후 휴전을 놓고 산발적 전투가 장기화 되면서 후방에 안정된 지역들이 생기게 되는데 그때 사진을 찾아보면 그제서야 좀 나온다. 참고로 당시 사람들이 입은 옷을 보면 대부분 일할 때 입는 그 하얀 개량된 한복, 야전 담요로 만든 바지, 군복 바지 등이다.



이건 AP 통신사 사진으로 동두천 근처 미군. 52년 6월 21일로 되어 있다. 명백하게 청바지를 입고 있다. 연출 사진임이 분명한데 롤업에 보팅 슈즈 등등 멋을 꽤 부렸다.




그리고 제리 로젠스타인이라는 분이 한국 전쟁에 참전해 포로수용소 가드로 복무했는데 이 분이 참전 기간 내내 사진을 엄청나게 찍었다. 월급 받으면 필름 사고 뭐 그랬다고 한다. 그 중 일부를 후손들이 업로드한 게 있는데(링크) 이쪽은 역시 보도 사진이 아니니 연출이 없어서 자연스럽다. 여하튼 이 사진을 뒤적거리다 보니 이게 있었다. 아이를 업고 있는 오른쪽 분이 청바지를 입고 있다. 주머니가 엄청 큰 게 물론 어른 걸 얻어다 입은 게 아닐까 싶다. 위 사진도 1950년~53년 정도지 정확한 연도는 모른다.


아래는 Walmoth라는 분이 공군으로 복무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휴전 이후 1953년이라고 한다.



가운데 코듀로이(?) 재킷을 입은 분이 시선을 끌긴 하지만 오른쪽 아저씨는 나름 카우보이 스타일이다. 청바지는 작업용으로 사용했는지 꽤 지저분하다.


지금까지 찾은 것 중에서는 이게 가장 오래된 거 같다. 위와 같은 분이 찍은(모은) 사진들이고 1951년 부산이라고 한다.



이건 부분 캡쳐를 한 거고 원본은 여기(링크)에서 볼 수 있다. 맨 왼쪽에 보이는 청년이 입은 바지. 하지만 이 포토셋은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 어디선가에서 수집했는데 누가 찍었는지도 모르고 언제 어디인지도 정확히 모른다고 포토셋 설명(링크)에 나와있다. 여러 정황을 봤을 때 1951년 즈음의 부산 같다는 거. 앨범 끝 부분에 해군이 나오는데 해군복 역사는 잘 몰라서 혹시 아시면 연도 추정을 해보시는 것도...


모양을 봐서 리바이스나 리 같은 건 아니지만 주머니 끝에 노란 실 바느질을 보면 누가 데님 천 떼어다가 대충 만들어 낸 건 분명히 아닌 거 같다. 저게 뭔가 찾아볼 생각도 좀 있는데 오래 걸릴 거 같으니 이것도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한 번...



최초 업체는 1961년 평화시장에 있는 제일 피복 이야기가 많다. 자세한 이야기는 뱅뱅 어패럴 권종렬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만 여튼 처음에는 수입된 거 아니면 면 바지에 파랗게 염색한 게 주종이었던 거 같고 1970년대 들어서 미군에서 흘러나온 지퍼와 단추, 당시 생산이 시작된 국내산 데님으로 청바지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회사 이름도 뱅뱅으로 바꿨다. 사실 홍콩에 있던 뱅뱅이란 데님 업체의 이름을 무단 도용했다고들 하는데 그쪽 뱅뱅이 망하면서 이제는 유일한 뱅뱅이다.


영화는 맨발의 청춘이 아닐까 싶은데 그게 196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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