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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드레스 코드

by macrostar 2015.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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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07호가 나올 때가 되었으니 적어봅니다. 이번 호에도 다양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잔뜩 실려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9월 중에는 나올 거 같습니다. 아직 날짜가 정해지진 않았는데 9월에 컴백한다는 에프엑스 같은 대그룹도 아직 오피셜 컴백일자 발표를 못하고 있는데 다들 사는 게 그렇겠죠... 


어쨌든 이 글은 드레스 코드에 대해서 뭔가 쓰려다가, 그런 게 뭔 소용이냐로 턴했다가, 이번 도미노 07호에 제가 쓴 글과 어디선가 아련하게 겹치는 지점이 있는 그런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심심할 때 이걸 읽어보시고, 도미노 07호가 나오면 그것도 읽어보시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원래 써 놓았던 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둘로 나눴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다음에 또 올리죠.




드레스 코드는 하나의 문화다. 패션 사조와 마찬가지로 옷에만 한정되는 건 아니고 여러가지 것들과 결합되어 흘러가고 정돈되고 변화한다. 그런 식으로 일상적 삶과 대중 문화 등 곳곳에 뿌리 박혀 있다. 물론 이건 홀로는 설 수 없는 종류니 다른 맥락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게 특정 분야에 대해서 라면 알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른다. 모르는 게 그냥 눈치를 못 채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게 있을 거라는 사실 자체를 아예 망각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 어떤 종류의 패션도 그러하듯 이런 게 매뉴얼 북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인간사는 절대 에스콰이어의 블랙북처럼 간단한 게 보이도록 돌아가지 않는다. 과거의 아카이브라면 혹시 모를까 책으로는 어림도 없고 잡지 혹은 인터넷 사이트에 누군가 적어 놓기도 하지만 적혀 있는 걸 읽을 때 쯤에는 이미 지나간 다음이다. 매 순간 주변에서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며 쌓인다. 그러므로 이런 건 글이나 그림 몇 장 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다. 하지만 ‘비 당사자’라고 해도 여러 사람을 자주 만나고, 여러 문화를 자주 대하면서 이를테면 룰을 파악하게 되고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물론 그래도 절대 모르는 것들은 있다.


이러한 사고의 틀 자체에 머리 속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추론이 한정되고 결국 이해를 할 수 없는 장면들과 마주치게 된다. 특히 서브컬쳐 계가 표면 위로 점점 떠오르는 요즘 같은 때 나중에 자다가 헛발질을 할 만큼 말도 안되는 "오해"는 점점 늘어난다. 하지만 뭐든 그러하듯 내 눈에 안 보인다고, 내 귀에 안 들린다고 거기에 없는 건 아니다. 제 눈에 안 보인다고 거기에 없다고 믿는 건 한정된 사고 체계가 만들어 내는 단편적 세계관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차피 제 눈이라는 건 보통은 어떤 기준도 되지 못하는 법이다. 이건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남이사 그러든 말든 알 바는 아닌데, 종종 문제가 되는 경우들이 있다. 예컨대 되려 화를 내며 분탕을 치거나, 특히 권력 관계 안에서는 안 보이는 걸 강요하려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한 칸 더 나아가, 어떤 이유인지 알 길은 없지만, 제 눈에 안 보임을 워낙 철썩같이 믿어서 가만히 두면 뭔가 알게 될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으며 초장부터 막으려 하기도 한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속담은 자아의 인식틀을 한정하려 하는 좋지 않은 교훈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퀴어 퍼레이드에 반대한다면서 그 누구보다 퀴어한 옷을 입고 등장하는 안티 세력의 경우도 있다. 이는 물론 현황에 대한 이해는 커녕 지식 자체가 없기 때문이고 사실 그렇기 때문에 안티 같은 걸 하고 있는 거겠지만 한국의 케이팝이 그러하듯 맥락 무시라는 건 매우 요상한 걸 종종 만들어 낸다. 그렇다고 해도 의도와 의지를 가지고 뭔가 하고 있는 거라면 그래서는 안된다. 적어도 피해야 할 것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주도면밀함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듯 드레스 코드는 그저 나열해서는 알기 어렵다. 세간에 알려져 있는 스테레오타입을 가지고 적혀 있는 그대로 입으면 그건 그냥 코메디언이 과장을 위해 사용하는 장치가 나올 뿐이다. 즉 어떤 부류가 사용하는 특유의 물리적 양식은 없다. 모터사이클 클랜처럼 자기네 로고 같은 걸 어깨에 타투로 새겨 알아보기 쉬운 경우도 있지만 그것과는 다르다. 말하자면 방식 비슷한 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게이처럼 입는다가 성문화되긴 쉽지 않겠지만, 케이팝 아이돌들은 게이처럼 입는다는 말은 가능하다. 


어쨌든 나열은 불가할 지 몰라도 목적이 있다면 룰과 맥락이 있는 법이다. 흔한 일이지만 그저 예뻐 보이고(저게 어떤 연유로 나온 건지 알게 뭐냐), 마음 편한 것만 쫓다 보면(저 옷을 만든 디자이너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뭐냐) 머리만 둔해진다. 잡지에도 나오고 아이돌도 입었다던 비싼 옷들 덕분에 감춰져 있을 뿐, 미사리에서 솟대를 깎으며 색소폰으로 가곡을 부는 분들과 (나쁘다는 게 아니라) 패션에 대한 태도의 측면에서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물론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돈을 십 원이라도 쓸 생각이 생긴 브랜드라면 그 정도 파악하는 게 큰 일은 아닐 거다. 또한 세상 돌아가는 걸 가만히 보면 꽤 많은 경우 디자이너는 다들 게이, 혹은 전부 스트레이트(=이는 보통 성정체성 같은 개념에 대해 아예 생각도 안 하는 경우다)로 단순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LGBT 디자이너와 LGBT 아이콘 디자이너는 또 다르고 기본적으로 상업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각자 점유하고자 하는 마켓의 포지션과 전략이 있다. 그런 건 여기에서부터 좀 더 눈을 넓혀가며 알아챌 문제다. 뉴욕의 레인보우 패션위크나 캘리포니아의 퀴어 패션위크처럼 보다 특화되어 있는 패션 행사들도 물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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