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펑크와 옷핀

by macrostar 2013. 11. 1.
반응형
펑크 패션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액세서리 혹은 부속물이 옷핀이다. 

 
스티브 존스톤이라는 사진 작가가 20살이던 1977년에 찍은 사진. MET의 펑크 전시 이후 여러 매체에서 펑크를 다시 다뤘는데 위 사진은 i-D에 실렸다(링크). 쇼스튜디오에서도 펑크:사진이라는 주제로 여러 작업들이 올라왔는데 그 중에 닉 나이트와 스티브 존스톤의 인터뷰가 있다(링크).

여하튼 옷핀 이야기. 영어로 Safety Pin이라고 한다. "대체 왜 옷핀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거야"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대략 두 가지의 설이 알려져 있다.



우선 미국으로부터 유입설. 1973년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는(둘은 1971년에 Let it Rock을 오픈했다) 트레이드 마켓에 참가하러 뉴욕에 갔다가 뉴욕 돌스를 만난다. 그때부터 뉴욕 돌스의 무대 의상을 만들기 시작했고 1974년 런던의 가게 이름을 430 Kings Road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을 바꾸면서 그때까지 주력 분위기였던 테디 보이에서 본격적으로 펑크 메인으로 방향이 바뀐다(같은 해 말에 가게 이름은 SEX가 된다).

여하튼 뉴욕 돌스가 약물 중독에 사이 안좋고 뭐 그래서 엉망이 되고 말콤 맥라렌은 해체 직전 마지막 일주일 동안 매니저도 하고 그러는데 당시 뉴욕 체류 시절 리차드 힐(1974년이나 1975년이면 텔레비전 시절이다)이 스파이크가 달린 개 목걸이와 옷핀을 달고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영국에서도 만들어 팔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그냥 영국의 펑크 밴드와 펑크 팬들이 리차드 헬 사진을 보고 따라했다는 설도 있다. 말콤 맥라렌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등에 이 이야기가 등장한다.


또 하나는 영국 자생설이다. 위 말콤의 유입설은 사실 말콤 맥라렌이 브리티시 펑크에 끼친 강력한 영향 및 펑크 원조 미국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자니 로튼을 비롯한 여러 영국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자니 로튼에 의하면 이건 순전히 실용적인 목적으로 공연하다가 바지가 흘러내리길래 옷핀으로 묶어놓은 거다. 그리고 팬들이 그걸 보며 저러면 편하겠군 이렇게 되었고 그러다가 옷도 꾸며보고 이왕 뚫려있는 귀볼에도 넣어보고, 옷에도 달아보고 뭐 그리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하여 지금도 펑크의 입김을 몸체 어딘가에 지니고 있을 옷핀을 이용한 여러 액세서리 같은 게 나온다. 위 사진은 알렉산더 맥퀸의 세이프티 핀 목걸이.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