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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이 타다시와 무라카미 하루키

by macrostar 2013.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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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해에 태어나 다른 태도와 다른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그러므로 이런 비교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오늘 낮에 파이낸셜 타임즈 지에 실린 패스트 리테일링(유니클로)의 야나이 타다시 인터뷰를 읽다가 문득 생각나 찾아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와 동갑이란 걸 알고 이 둘을 대충 비교해 보면 어떻게 보일까 궁금해졌다. 이 둘은 또한 약간 거리는 있지만 같은 관서 출신이고 와세다 대학을 나왔다.

사실 야나이 타다시의 궤적은 또한 도미노 2호에 썼던 '유니클로: 불황의 친구'라는 글에서 이왕 정리를 해본 적도 있었다. 세세하게 쓰는 건 좀 그렇고 간단하게 포인트만 적어본다. 기부 등에서 돈 규모의 차이는 소설가와 사업가라는 극명한 차이가 있으니 감안.

파이낸셜 타임즈의 인터뷰 기사는 여기 - http://t.co/r7tYGL4Ies

위 인터뷰에 약간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Yanai focuses on the differences. “I’m afraid Japanese people tend to collective hysteria,” he offers.

I can’t let that phrase go by, I say. What does he mean by collective hysteria? “Look at history,” he says, describing how Japan, after 300 years of isolation, burst into the world in the late 19th century, beating first, in 1895, China and then, in 1905, Russia in war. “Japan had this gut feeling. ‘We can do it. We can change the world. We can even walk on water,’ ” he says of the hubris that led to the destructiveness of would-be Asian dom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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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부모는 둘 다 국어 교사였고, 야나이 타다시의 아버지는 오구니 상사를 창업한 인물로 1999년 사망 당시 세무서 공시로 유산 총액이 27억엔이었다.

1949년
1월 12일 무라카미 하루키 출생 (교토시, 자란 곳은 효고현 아시야 시)
2월 7일 야나이 타다시 출생 (우베시)

1967년
타다시 : 와세다 대학 입학 (정치 경제학부)

1968년
하루키 : 재수 생활 후 와세다 대학 입학 (문학부 영화과)
타다시 : 여름방학에 세계 여행(동맹 휴업이 시작되자 아버지가 세계 여행 가라고 200만엔을 줬다고) 요코하마에서 배를 타고 하와이 호놀룰루로 이동. 거기서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 버스로 로스 앤젤레스, 애리조나. 다시 비행기로 멕시코, 플로리다. 버스로 뉴욕. 뉴욕에서 덴마크에 가서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터키, 이집트, 인도, 홍콩, 그리고 일본

1971년
하루키 : 요코 타카하시와 결혼
타다시 : 와세다 대학 졸업, 쟈스코에 입사(금방 퇴직)

1972년
타다시 : 오구니 상사(아버지 회사) 입사

1973년
하루키 : 와세다 대학 졸업

1974년
하루키 : 피터캣(커피집 & 재즈바) 운영 시작 (도쿄)

1978년
하루키 : 야쿠르트 vs 히로시마 야구 경기, 소설 쓰기 시작

1979년
하루키 :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발표, 군조신인문학상 수상 

1981년
하루키 : 피터캣 양도, 전업 소설가가 됨

1984년
타다시 : 오구니 상사 사장 취임, 유니클로라는 이름으로 캐주얼 소매업 진출

1986년
하루키 : 그리스, 이탈리아 체류(89년까지, 이후 91년까지 해외 일본 오가며 생활)

1987년
하루키 : '노르웨이의 숲' 발표

1988년
타다시 : 지오다노의 지미 라이를 만난 후 본격 SPA를 시작하기로 결심

1991년
타다시 : 패스트 리테일링으로 회사명 바꿈

1992년
하루키 : 프린스턴 객원 연구원으로 미국 체류

2001년
타다시 : 유니클로 유럽, 중국 진출

2002년
하루키 : '해변의 카프카' 발표
타다시 : 패스트 리테일링의 회장 겸 CEO로 취임

2005년
타다시 : 패스트 리테일링 사장으로 복귀

2006년
하루키 : 카프카 문학상 수상

2009년
하루키 : '1Q84' 발표, 예루살렘 문학상 수상

2011년
하루키 : 카탈로니아 국제상 수상, 상금 8만 유로 대지진 의연금으로 기부
타다시 : 동일본 대지진 의연금으로 10억엔 기부

2013년
하루키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발표
타다시 : 와세다 대학 나카노 국제 커뮤니티 플라자에 3억엔 기부


A가 우베, 가운데에서 약간 오른쪽에 효고, 근처에 교토.

이걸 쓰느라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유니클로 홈페이지에서 야나이 타다시의 약간 재미있는 인터뷰를 발견했다. 원문은 여기(링크). 아래는 번역기로 돌린 다음 정리/축약/의역. 여튼 하루키의 에세이나 같은 세대의 만화 등 이야기를 읽어봤거나 하면 알겠지만 이 세대 일본인들이 놓여있던 비슷한 경험의 그물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 어렸을 적부터 상상의 세계에 몸을 맡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야마구치 현 우베시에서 태어나 계속 상가에 살았는데 아버지가 경영하는 남성 의류 상점에서 거주... 눈 앞에 책방이 있고, 어린 시절 만화만 읽었습니다. '철인 28 호', '철완 아톰', '오소 마츠 군', '카무이 외전', '게게게의 키타로' 등등

- 컬러 TV, 자동차, 냉각기는 '3C'라고 했었어요. 아버지는 그런 것을 좋아하고 신속하게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방송으로 '웃음 삼총사'라든지, 역도산의 프로 레슬링 그리고 미국의 수입 드라마를 좋아하고 잘 보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뭐든지 알고 있다', '명견 랫시', '라라미 목장', 그리고 스티브 맥퀸이 나온 '권총無宿(Wanted dead or alive)',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하이드', '선셋 77', '루트 66' 좋은 시대의 미국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교외의 집은 정말로 멋졌거든요.

- 흥미를 가진 건 패션과 음악이었습니다. 우베시의 고등학생 중에 VAN의 버튼 다운 셔츠를 제일 먼저 입은 것은 확실히 나였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치노라든지 바스켓 슈즈도 마찬가지. 학교 지정 이외의 셔츠 라든지 입고가는 것은 금지했습니다만, 버튼 다운 셔츠 따위 아무도 입고 않았기 때문 교사는 주의도 하지 않았죠. 음악은 비틀즈, 롤링 스톤즈, 클리프 리처드 ...... 여러가지 듣고 있었어요. 더부살이로 일하던 젊은 사람들이 재즈 레코드를 듣고 있던 탓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재즈도 듣기 시작했습니다. 아트 브레키 앤 재즈 메신저 라든가... 동시에 이시하라 유지로, 아카기 케이치로, 고바야시 아키라의 레코드 따위도 병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시대군요.

- 대학이 분쟁 상태 였기 때문에, 하숙집에서 마작만 하고있었습니다. 그리고 재즈입니다. 대학 시절에는 오로지 재즈를 듣고 있었습니다. 재즈 찻집은 거의 가지 않고 혼자 듣는 것을 좋아했지요.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빌 에반스, 그리고 보컬도 좋아했습니다. 엘라 핏제럴드, 사라 본, 크리스 코너, 프랭크 시나트라, 냇 킹 콜, 멜 토메, 리 와일리...... 노래가 능숙한 사람의 음악을 어쨌든 좋아했습니다. 송금의 상당 부분을 레코드를 샀습니다. 밥도 먹지 않고 절약하며 월 수십 매 정도는 샀어요. 또 록은 듣지 않았고, 당시 록 음악을 듣는 녀석을 바보 취급하고 있었던 (웃음)

- 대학 분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학생 운동을 하고 있는 녀석이 말하는 대사가 전부 일률적이에요, 대본이 있는 것처럼. 머리가 경직화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학창 시절은 여러가지 책을 읽었습니다만, 인상에 남은 것은 데이빗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 갈 브레이스의 '풍요로운 사회', '새로운 산업 국가'.

- 미국에 가서 생각한 것은 타락하고 있다라는 것이 었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그레이트 소사이어티 정책을 주창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어디가 '그레이트'인가 생각했습니다. 모두 돈에 중독되는 느낌이었고, 엉터리였습니다. 미국 학생들은 미국이 이런 기분이 들어 있기 때문에 반항하는 게 아닐까라고 느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인심도 유린되었고 결국 변변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 했어요. 로스 앤젤레스 따위 빌딩도 도로도 차도 별나게 크기만 하고 공허하거든요. 드라마에서 보던 미국은 어디에도 없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조금 안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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