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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과 가능성, 붙이는 이야기들

by macrostar 2012.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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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사실 쓰다가 실패해서 제출하지 못한 원고였기도 하다. 그러므로 문단들이 불완전하고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걸 미리 말해둔다.

지금 이 시점에서, 아니 최근 몇십 여년 중 어느 시기에서든 장인과 구형 공장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애매한 지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나라는 수공업을 밀어치우며, 경공업을 밀어치우며, GDP를 끌어 올리는 소위 '발전'이라는 걸 해 왔다. 그러므로 이런 구형 공장들과 무두질은 거의 모두 '과거'의 아이콘이다. 그런 방식이 혹시나 더 나은 품질을 보장한다든다 하는 건 다른 문제다.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에 동네 어귀 어딘가에서 보던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신문이나 어떤 잡지책 구석에서 보거나 이야기들었던 것들이다. 염창동이나 소공동 옆을 지나며 저기 있던 양복점서 예전에 첫 양복을 맞췄었지 하는 부모 세대의 이야기들. 

그러므로 이런 이야기는 '그때를 아십니까'나 '청계천 50년 회고전'과 동일한 시선을 지니게 될 위험을 안는다. 적극적으로 그것을 떼어 놓으려는 시도가 있지 않는 한 그저 나열하는 것만 가지고도 그런 시선이 보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몇 명 남지도 않은 장인은 몰라도, 공장은 사실상 지금의 현실이지만, 그러하다. 

내가 살고 있는 돌곶이 역 주변은 사방이 섬유를 다루는 공장들이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봉제 공장의 메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동남아 어딘가에서 돈을 벌고자 온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기대고 있다.

이는 경험과는 약간 다르다. 아니 그 부분은 솔직히 모르겠다. 염창동과 성수동의 신발 공장에 대해, 서울 교외 곳곳에 산재한 이런 류의 공장에 대해 이 산업에 종사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또는 80년대에 아파트 단지에서 태어나 주상복합에서 자란 이들에게 '이런 게 아직도 있네'라는 시선 외에 무엇이 존재하는 지 잘 모르겠다.

이 곳을 바라보는 건 거대한 모래성을 앞에 두고, 저기서 밀려오고 있는 파도를 보고 있는 기분과 흡사하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온다. 운이 좋으면 이번 파도는 바로 앞에서 멈추고 다시 돌아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다음 파도가 올 것이다.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다. 문득 사라진다고 해서 딱히 바뀔 것도 없다. 

공장은 베트남과 중국으로 대체될 것이고, 장인은 이태리와 프랑스에 있으니 그냥 거기서 가져다 쓸 것이다. 미세한 디테일은 놓칠 수 있다. 정확한 치수와 세밀한 주문은 밀라노나 나폴리 행 비행기 표, 아니 적어도 도쿄행 비행기 표를 끊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 분야에 대해 어떤 종류의 확신도 없다. 이것이 보존해야 하는 것인지, 아닌지, 보존될 수 있는지, 보존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지, 보존이 불가능한지, 그렇다면 또 어떻게 될 것인지, 아무 것도 모르겠다. 그 상태에서 원고를 의뢰받았고, 이를 두고 한 동안 꽤 헤매다가 일단은 그냥 스텝에 맞춰 가기로 하고 우산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이 잡지 역시 어떤 확신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적극적으로 내치지도, 보존을 부르짖지도 않는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이 책이 보는 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심상을 불러 일으킬 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시점을 아카이빙하는 기능이라면 훌륭히 해 내고 있다. 그런 것도 큰 의미를 가지는 법이다. 

아주 미니멈한 효용을 생각해 봤는데 이 잡지를 들고 있으면 20년 쯤 지난 후 이런 게 여기에 있었다지 하며 그 동네를 찾아다니는 거리 여행가를 위한 가이드라도 될 수 있을 것다. 물론 그 때도 공장이 여전히 가동 중일 수도 있는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잡지, 디어 매거진에 글을 보내고, 이렇게 봐주십사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렇게 이야기를 뿌려놓고 냉소적이든 다정하든 대답을 듣다보면 적어도 어떤 시선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이 잡지를 부디 봐주세요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읽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의도와 결과 사이의 갭을 만들고 마는 글쓰기 실력 탓일 뿐.

만약에 가능하다면, 벽을 보고 젖은 휴지를 던지는 기분이 드는 이 잡지에 좀 더 열심히 참여해 보고 싶은데(물론 편집장 님이 어떻게 생각하실 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다만 공멸하는 걸 즐기는 S(새디스트)의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분야, 그러니까 무엇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그것을 입고, 신고 하는 이 분야를 먼 발치에서 나마 열심히 들여다보는 한 사람으로써 여기에 과연 어떤 답이라는 게 있는 건지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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