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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VERSACE vs VERSUS 2013 SS

by macrostar 201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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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은 패션쇼 이야기를 꽤 많이 하고 있는 듯.

지아니가 하던 걸 이어 받은 VERSACE와 VERSUS는 본체는 하나이지만 약간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뭐 어쨌든 도나텔라 브라보~ 하면 일이 쉽게 돌아가지만 세상 일 그렇게 쉽게 돌아가는 건 아니고.

패션쇼라는 건, 특히 디자이너 하우스의 패션쇼라는 건 그저 예쁘고, 세련되고, 폼이 나고, 사고 싶은 것들을 내놓는 게 다가 아니다. 시대를 바라보며 또한 리드하며 유니크한 자기만의 색을 굳건하게 유지하고 또 만들어가는 모습이 패션과 패션쇼를 좋아하는 팬들이 보고 싶어하는 어떤 것이 아닐까 싶다. 전통을 유지한 다는 건 시대를 버리고 원형 그대로 끌고가면서 구습에 집착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여하튼 이들의 명성과 옷에 메겨져 있는 비싼 가격은 패션의 한 시대를 끌고 가보라는 담보이기도 하다.

* : @dear_magazine 현지 씨 트위터의 스시장인 Zunshi 말 간접 인용(링크).

VERSACE는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이어 받아 하고 있고, 서브 라벨이라고 할 수 있는 VERSUS는 크리스토퍼 케인이 디렉팅을 하고 있다. 두 컬렉션이 합쳐지면 지아니의 세계가 언듯 엿보인다는 점에서 지아니가 참 대단하긴 대단했다는 생각이 매번 다시 든다.

지아니의 세계는 말하자면 끝없이 화려하지만 어딘가 뻔뻔하게 불친절하고 생경한 둘레를 씌워 놓은 것이다. 그냥 보고 있으면 한심한 생각이 들지만 입고 있는 사람을 보면 또 그렇지 않다. 옷을 던져준다고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다. 취향을 많이 타고, 용감해야 한다. 이게 흐르고 흘러 VERSACE는 화려하고 폼을 내지만 좀 더 유순해졌고, VERSUS는 거칠지만 확 드러나는 색감을 드러내지만 역시 유순해 졌다.

지아니가 살아있었다고 해도, 어쩌면 다른 디자이너들이 그러하듯 시장에서 보다 어필하고 성장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변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아니의 세계관이 유순해진 건 이 둘의 잘못만 이라고는 볼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전의 그 훅하고 쏘는 카운터가 약해진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래 사진은 보그UK, 내용 중간에 링크를 넣었다.


VERSACE


패션쇼 동영상이나 풀 뷰는 그냥 훑어보고 클로즈 업을 자세히 보길 권한다(링크). 구석구석 자기 캐릭터를 넣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보인다. 애매하게 바랜 블랙, 블루, 오렌지 컬러들과 후반부에 휘날리는 여신 혹은 부족장, 또는 소도의 무녀 포스의 옷들이 꽤 멋지다.


VERSUS

 
이번 시즌 케인의 VERSUS는 훨씬 어린 애 같다. 크레용 톤의 빨강 파랑 색색이 여기저기 두드러졌고, 플라스틱 장난감같은 목걸이와 구두들이 계속 등장했다. 무리가 아닌가 싶은 색 조합을 오버페이스 없이 쉽게 쉽게 풀어간 점이 훌륭하다. 아직 젊지만 명성을 지니고 있는 이유를 확실히 증명하는 훌륭한 쇼였다(링크). 베르사체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콘트롤할 수 있는 덕분인지 자기 이름이 들어간 LFW의 Christopher Kane보다 더 명징하다.



 
크리스토퍼 케인과 도나텔라 베르사체. 크리스토퍼가 세인트 마틴 다닐 때부터 찜해놓고 있었다던데 애 잘 골랐음. 바로 데뷔시키지 않고 여기저기 살짝 굴리다가 VERSUS 런칭을 통으로 맡긴 것도(처음은 임시 분위기의 캡슐 컬렉션이었다) 괜찮은 발상. 사람 투자의 좋은 예.

오만간섭 다 할 거 같은 인상이지만 케인은 의외로 자유도를 획득했고 그걸 잘 활용하고 있다. 오만간섭 다 하다 말아먹은 파트리찌오 베르텔리(프라다 남편)하고 다르다. 여하튼 크리스토퍼도 도나텔라같은 갑부 여인의 눈에 띄어서 다행이라면 다행.



보다시피 같은 본체의 두 컬렉션이 서로 견제하듯이 극명하게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마치 뿌리는 하나인데 한 쪽 가지에서는 포도가 열리고, 한 쪽 가지에서는 망고가 열리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같은 뿌리라는 걸 숨김없이 보여준 다는 점이 매우 좋다. 어떻게든 발란스가 잡혀 버렸고 같은 날 진행되는 둘을 함께 보면 베르사체 전체가 보인다.

혼자 했으면 폭망했을 거라 예상했던(... 내가 그랬다고) 도나텔라가 이 정도 해가는 건 알맞은 균형을 찾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둘의 균형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쨋든 이번 2013 SS 시즌 둘 다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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