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앰샵에 구경을 갔다가 오라리의 26SS 시즌에 나왔던 블루페이스드 울 재킷이라는 게 있길래 입어봤다. 블루페이스드는 영국 양품종 이름으로 털이 파랗다는 뜻은 아니고 얼굴과 코가 검푸른 톤이라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아무튼 좋은 울이다. 찾아보면 오라리에서 몇 번 사용한 적이 있다.
일단 할 말은 나는 블레이저, 수트 재킷 이런 류를 입을 줄 모르는 거 같다. 꽤 여러 벌 가지고 있긴 한데 어색함, 갑갑함을 잘 못 참는다. 계속 입고 다니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계속 입고 다닐 일도 없다. 가방을 둘렀을 때, 움직이면서 똑바로 서 있지 않을 때 라펠과 카라가 구깃거리는 것도 제어가 어렵다. V존의 존재도 별로다. 괜히 트여있는 가슴팍은 봄, 가을에 체온을 떨어뜨리는 거 같아서 가벼운 머플러라도 둘러야하나 싶어진다. 전반적으로 이해가 잘 가지 않는데 게다가 비싸다. 물론 수트 재킷을 무슨 트랙탑이나 바람막이 입듯 편하게 입는 사람들도 많다. 얼마나 입어봐야 저렇게 될까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아무튼 오라리의 블루페이스드 재킷은 셋업도 가능하지만 단독 착용도 마다할 이유는 없는 옷이다. 그래도 이렇게 나온 옷은 셋업이 제격이긴 하다. 스포츠 재킷 느낌으로 입기에도 컬러가 좀 점잖긴 하다. 컬렉션에서도 셋업 착장이었다.


카키 그레이와 차콜 네이비 두 가지 컬러인데 KG 쪽은 체크, CN 쪽은 스트라이프다. 둘 다 있길래 입어보기 했는데 나에게 맞는 사이즈는 CN 쪽이었다.

바지도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입어보진 않았음. 셋업으로 마련한다면 패션쇼 쪽에 나온 KG 쪽은 더 폼날 거 같고 CN 쪽이 쓸모는 더 많을 거 같다. 둘 다 상당히 빈티지 분위기를 내뿜고 있기 때문에 마냥 평범해 보이진 않는다.
입었을 때 느낌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촉감도 좋고, 완전 SS 시즌용은 아니지만 무거운 느낌도 없다. 정통 수트 셋업 같은 각 잡힌 느낌도 없다. 이 부분은 제대로 된 정장이 필요한지, 좀 프리한 분위기를 내고 싶은지에 따라 갈라질 거 같다. 비교적 비싼 셋업 답게 아주 잘 만들어졌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수트 셋업 고유의 구조적인 느낌은 덜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어깨선은 꽤 각이 져 있다. 하지만 원단의 부드러움이 미묘한 주름들을 만들어 내고 그게 이 셋업 만의 매력을 만들어 낸다. 살짝 약한 요리 실력을 최고의 재료로 극복해 내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생각으로 양쪽 다 레벨은 높은 편이다. 세상엔 여러가지 방식이 있고 정답은 없다. 각자 잘 하는 걸 끌어 올리는 게 더 중요하다. 아무튼 펄럭거리는 바지가 몸에 닿을 때마다 꽤 근사한 옷을 샀구나 느낄 거 같다.
이 옷은 잠깐 입어본 경험으로 지나갔다. 큰 무리해서 한번 사볼까 싶은 생각이 아주 조금 들긴 했지만 과연 일년에 몇 번이나 입을까 생각해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KG의 재킷과 팬츠, CN의 재킷과 팬츠 이렇게 4가지 제품이 있는데 하나만 가져다 놓는다면 사실 KG의 바지 쪽이 되지 않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소모사 울 팬츠도 꽤나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도 가능성이 약간만 더 높아지면 생각이 잠깐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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