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아이비라는 말은 1980년대 일본에서 나왔다. 말 그대로 프랑스 식으로 재해석된 아이비 패션. 아이비 패션이라는 말이 도쿄 올림픽 때인 1960년대에 반 자켓의 이시즈 겐스케에 의해 나왔으니까 아이비 패션 유행 이후 뭐 좀 다른 게 없나 찾던 일본 남성 패션계에서 1980년대 들어 발굴, 발견한 현상의 총집에 이름을 붙인 거라 하겠다.
일단 여기서 바라본 프렌치 아이비의 원형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잔여물을 잔뜩 남기고 돌아간 이후 프랑스, 파리의 1950년대라고 할 수 있고 고다르와 트뤼포의 초기 영화, 알랭 들롱 같은 배우 등이 선보인 패션들이다. 알랭 들롱이 주연한 르네 클레망의 1960년 영화 태양은 가득히 같은 경우 배경이 아예 미국이니까 더욱 본격적이다.
프랑스가 뭐하러 미국 패션을 받아들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미군 서플러스 샵이 처음 생긴 곳도, 501 복각이 처음 구체화된 곳도 프랑스였다.


블레이저, 봄버와 피코트. 위 캡쳐는 로버트 엔리코 감독의 1967년 이탈리아와 프랑스 합작 영화 대모험.
뭔가 프랑스 느낌도 아니고 미국 느낌도 아니면서 미국 아이비 쪽에 살짝 더 가깝게 보이는 슬림한 타이, BD 셔츠, 타탄 체크 바지, 몽크 슈즈 등등 전형적인 아이템 몇 가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아무튼 이게 1980년대 즈음 정리가 되기 시작했는데 영향을 미친 책으로 1975년 치프시크가 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카테린 밀리네르와 캐롤 트로이가 쓴 이 책은 비싸지 않아도 멋질 수 있다(cheap chic)는 내용을 다루는데 워크웨어, 군복, 중고 빈티지를 패션으로 보는 시각을 대중에게 처음 제시한 책 중 하나다. 프렌치 아이비의 사상적 배경으로 자주 언급되는 책이다. 번역하고 싶은 책 중 하나인데 관심있으신 분들 연락 요망.
그리고 약간 엉뚱하게도 당시 프렌치 아이비 이야기를 찾아보면 나오는 사람 중 하나로 폴 웰러가 있다. 더 잼의 그 분. 영국인. 특히 폴 웰러는 1982년 스타일 카운실이라는 밴드를 시작했고 1984년 Café Bleu라는 음반을 냈는데 이 즈음 일본에서 프렌치 아이비의 아이콘이 되었다. 발마칸 코트와 작은 칼라의 셔츠, 태슬 로퍼에 화이트 진 등으로 파리스러운 아이비 스타일을 잘 보여줬다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1979년 파리에서 오픈한 피에르 푸르니에(아나토미카의 그 분)의 편집샵 에미스페르(Hémisphère)는 당시 파리에서 아메리칸 캐주얼 — 리바이스, 올든, 챔피온 같은 것들 — 을 프랑스식 감각으로 편집해서 판 가게였다. 여기를 일본 편집샵 관계자들이나 패션 에디터 등이 자주 방문하며 프렌치 아이비의 기반을 업데이트했다. 에미스페르는 1993년 문을 닫고 1994년 파리 4구에 아나토미카를 열게 된다.
뭐 이런 과정들을 거쳤고 90년대, 2000년대 간간히 트렌드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고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US 밀리터리 - 유로 빈티지 - 미국 아이비로 이어지고 있는 재해석 트렌드 속에서 요새 슬렁슬렁 눈에 띄는 계열 중 하나가 프렌치 아이비다. 미국 빈티지를 뒤적거리던 일본 빈티지 매장 중에서 Charvet나 marcel lassance의 프렌치 빈티지 BD 셔츠 컬렉션에 조금 더 방점을 찍어보는 곳들이 눈에 띈다. 특히 마티유 블라쥬가 샤넬에서 샤르베 셔츠를 들고 온 이후 아항 맞아 저런 게 있었지라는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아나토미카의 프렌치 가먼츠도 있지만 치노나 샴브레이 셔츠, 싱글 래글런 코트 같은 건 꽤 오래 인기를 끌고 있고 미국과는 다른 프랑스 식 재해석 일본 아이비라는 기반은 복잡하지만 결과물은 명징한 라인을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은 JM Weston이나 Paraboot 같은 아이비에 잘 들어맞는 프랑스 전통 슈즈 브랜드 언급이 늘어나고 있는 분위기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걸 가만히 보면 영국에서 미국 뉴잉글랜드로 넘어온 아이비 패션을(이걸 재정의 한 것도 일본이었고) 프랑스에서 가져다 입은 걸 미유키 세대를 거친 일본인들이 보고 프렌치식 아이비다!하고 감흥해 다시 스타일을 정리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 결과물의 일부를 아나토미카 같은 브랜드에서 볼 수 있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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