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매우 싫어하지만 좋아하는 겨울 옷은 몇 가지 있다. 캐주얼한 쪽을 예로 들면 M65 피시테일, 랄프 로렌의 립스톱 다운, 필슨의 매키노 크루저, 발마칸 같은 것들이다. 트위드 발마칸과 더플 같은 옷을 노리고 있긴 한데 돈도 문제지만 둘 곳도 문제다. 아무튼 그렇게 좋아하는 겨울 옷 중에 하나가 M65 필드 재킷이다. 민수용으로 나온 밀스펙 미국 제조 알파 인더스트리. 이 옷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많이 하긴 했는데 겨울이 왔으니 다시 또 한번.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민수용은 슬림핏이라 별로고, 군용으로 나온 건 괜찮은 거 구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훌륭한 필드 재킷을 만드는 브랜드가 많지만 알파 인더스트리가 제일 만만하다. 미국 제조 알파 버전은 군용보다 살짝 루즈핏으로 넉넉한 타입이다. 거기에 L사이즈로 약간 오버하게 입기 때문에 더 넉넉하다. 여기에 군용으로 나온 내피를 붙이면 된다. 내피는 별 거 없는 거 같은데 군용이 이상하게 편하고 따뜻하다. 요새 이거 가지고 개조해서 뭐 만드는 브랜드가 외국에 너무 많아서 보이면 구해놔야 한다. 내피가 없으면 너무 후줄근해지기 때문에 빼고는 거의 입지 않는다. 그런 결과 이건 초겨울이나 되야 입는다. 강력 한파만 아니면 이걸로 커버할 수 있다.

이 옷을 꽤 좋아해서 현재 올리브, 블랙, 베이지 3벌이나 가지고 있다. 에폴렛은 다 떼서 다시 바느질했다. 이외에 확인한 것만 브라운, 블루, 버건디라고 해야 하나 짙은 레드 계열 등등이 더 있었는데 기회가 되면 구입하고 싶다. 하지만 L사이즈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 어쩌다 봐도 좀 비싸네 싶든가, 지나치게 상해있거나. 게다가 구입을 해도 에폴렛 바느질과 괜찮은 내피를 또 구해야하기 때문에 입고 다니려면 품이 꽤 드는 옷이다.
M65 필드 재킷의 매력이라면 다재다능함에 있다. 이 옷은 멋 부리는 이태리 아저씨나, 패션에 아무 관심없지만 미국 제조라면 좋아하는 미국 레드넥까지 커버의 폭이 상당히 넓다. 어떻게 입으면 파병 나가는 용병 같고, 또 어떻게 입으면 약초 찾으러 다니는 자연인에 빙의하게 된다. 그러므로 입을 때 태도가 중요하다.
나의 경우 L사이즈로 꽤 큰 핏으로 입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둥근 형태를 지향한다. 동글동글 섬세한 코쿤. 에폴렛은 너무 밀리터리 분위기라 떼버리는 건데 코로나 유틸리티나 리얼 맥코이 같은 버전을 구입하면 되고 꽤나 근사하게 생겼지만 가격의 벽을 넘기가 어렵다. 허리 줄과 아래 줄은 가능한 조임도 없고 방해도 되지 않게 길게 늘려 놓는다. 빼버리는 것도 해봤는데 옷 위에 드러나던 입체감이 사라지니까 전반적으로 심심해져서 다시 껴넣었다. 사실 S도 맞고 M 정도가 적절한 사이즈일텐데 L을 입는 이유는 둥글둥글 코쿤 쉐이프의 지향도 있지만 찬 바람 부는 날 목 가리려고 넥의 벨크로를 붙일 때 아무런 방해감도 느껴지지 않는 사이즈이기 때문이다. M만 되도 살짝 목을 조이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옷을 고르는 것까지는 됐는데 M65 같은 옷은 입을 때의 태도, 이미지의 지속 같은 게 나름 중요하다. 너무 밀리터리이기 때문에 기분상으로라도 그걸 희석시켜야 일상의 옷으로 입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M65를 입을 때는 가능한 델리킷하고 조심스러운 이미지를 유지하려 한다. 둥글둥글, 사뿐사뿐, 침착한 포대자루. 물론 이런 건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남이사 뭘 어떻게 보든 무슨 상관. 다들 자기 옷이나 신경 씁시다.

입고 찍은 사진이 있네. 겸사겸사 VDR과의 협업 컬렉션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위 사진은 별로 좋은 예는 아니고 코로나 유틸리티가 제시하는 샘플이 괜찮았다.


룩북이라 좀 지나치게 멋을 부리고 있네...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무튼 특정한 옷을 입을 때 마음 속 어딘가에 분위기를 유지하려 하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계속 하다보면 약간 조건반사처럼 행동이 고정되는 거 같다. 피시테일도 약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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