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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 만에 문구류 이야기, 만년필

by macrostar 2012.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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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이글루스 시절에는 문구류 이야기를 가끔 했는데 실로 오래간 만에 만년필에 잉크를 넣었다. 예전 이글루스 문구류 이야기는 여기(링크).

 
문구류 이야기가 뜸하게 된 이유를 들자면 우선 글씨나 메모할 일이 줄어들었고, 그럼에도 가끔 뭔가 쓰긴 하는데 사진에서 두 번째 라미 사파리 볼펜이 너무 편해서 만사가 다 귀찮아졌다는 이유도 있다. 생긴 게 영 재미는 없지만 실용적이고, 튼튼하고, 편하다. 가끔 지루하면 사진 맨 위의 파버 카스텔을 쓴다. 앞 부분이 플라스틱인 점과 나무의 무게감이 너무 가벼운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가끔씩 사용하면 문구류 자체에 대한 욕구가 사그라든다.

그리고 3번째에 있는 파란색 펜텔 0.7mm 샤프는 나보다 더 오래 사는 거 아닌가 싶은 괴이한 튼튼함이 있다. 여기에다가 이 전에 말했듯이 연필이 아마 죽을 때 까지 쓸 수 있을 만큼 있다. 파버 9000 구형만 세 다스가 있는데 1년에 한 자루 정도 밖에 안 쓴다. 그리고 미츠비시, 스태들러, 파버 신형... 등등등. 뭐가 있는 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던 와중에 만년필에 손이 갔다. 맨 아래에 있는 펠리컨 150에다 넣었는데 여튼 이게 제일 저렴한 거고, 언제든지 잉크를 다 빼내고 청소해도 억울할 거 같지 않고 해서 여기에 넣었다. 잉크는 쉐퍼의 Skrip, Jet Black 컬러. 쉐퍼 잉크는 이름만 제트 블랙이고 흐리멍텅한 회색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색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로디아 스프링 메모 노트를 구입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은 전설이 되어버린 관계로 모조지 노트에다가 잉크가 제대로 나오기는 하나 하고 써봤다. M150은 보급판 답게 스테인리스 닙에 금도금을 해 놓은 건데 지나간 세월 덕분에 도금은 거의 지워져버렸다. 그래서 펜촉을 바꾸는 데 얼마나 들지 하고 쇼핑몰 사이트에 갔다가 M150은 14K 짜리도 안나오고 오직 저거 밖에 없다는 비극적인 정보를 깨닫고 우울해졌다. 원래 디폴트 버전 스테인리스 금도금 펜촉은 정가 45,000원인데 또 지금처럼 될 게 빤한데 다시 사고 싶지 않다. 펠리컨은 락카도 너무 얇다.

그러면서 뒤적거려봤는데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고 예전에 구입하고 싶었던 모델만 다시 눈에 들어온다. 쉐퍼의 발란스와 몽블랑의 마이스터스튁 145 플래티넘. 몽블랑 만년필 따위라며 무시하는 세간의 눈길도 분명 존재하지만 카렌디쉬, 오로라, 비스콘티, 콘웨이, 워터맨을 아무리 뒤적거려봐도 몽블랑의 락커만한 게 없는 거 같다. 그 새까맣게 반짝거리는 검정색이라니. 몸체가 금이니 은이니, 다이아가 박혀있니 사파이어가 박혀있니, 작가 시리즈니 음악가 시리즈니 다 필요없다.

하지만 내 펠로우 145는(플래티넘은 아니고) 이건 잘 보관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어딘가에 쟁겨 넣었는데, 그 '어딘가'가 어딘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은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 이후 이사까지 갔으니 암흑의 블랙홀로 빠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대체 어디다 뒀던걸까,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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