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류에 대해 딱히 취미 같은 건 없다. 부질없고, 쓸모없고, 그다지 예쁘지도 않다. 그나마 관심이 있는 부분이 있다면 세공이라는 기술의 측면이나, 그래도 돌덩어리들을 가지고 그럴 듯 한 걸 만들어 내는 그런 부분들 정도. 또한 2008년 덕수궁에서 열렸던 까르띠에 전시를 봤었는데 꽤 재미있었다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도 논란이었던 소문의 그 전시는 찾아봤더니 당시 3만명 이상이 방문을 했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까르띠에 전시를 다시 한다길래 가봤다. 전시에 대한 정보는 여기(링크). 5월 1일부터 6월 30일. DDP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다.
까르띠에는 시계 부문에서 탁월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여러 문제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사라지지 않는 제국주의의 냄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왕 에드워드 7세는 1902년 대관식 때 27개의 티아라를 주문했었고, 1925년 인도의 왕족은 파티알라 목걸이를 비롯해 10억 루피(현 시세로 환산했을 때 27억 불)의 상당의 주문을 했었다. 그런 쥬얼리 메이커다. 그린과 살구색 등 뚜띠 프루티한 보석들은 열대의 냄새가 나고 거기에 반짝이는 것들을 쓸데도 없이 가득 깔아놓는다. 1차 대전 탱크를 모티브로 시계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생각해 보면 웃기다. 이제 막 태어난 살상형 현대 문명을 보고 감동을 받은 걸까. 까르띠에는 그런 역사를 업그레이드할 생각이 별로 없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보석류는 여전히 가득하고 전시를 보면 지금도 "누군가" 미스테리 클락과 무거워보이는 목걸이를 주문하고 있다.
아무튼 전시 이야기로 돌아오면 일본에서 열렸던 전시를 거의 그대로 가지고 오고 있다. 불교와 젠한 느낌은 이 이국적 모티브의 보석과 섞이고 그게 DDP로 와서 약간 이상한 화합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 결과 전시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는 불분명해진다. 장인 정신인가 하면 그걸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부분도 없고, 형태와 디자인이나 다양한 소재의 사용인가 해도 전시장에 붙어 있는 노트는 정보가 빈약하다. QR로 찾아서 나오는 정보를 종합해야 적어도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그저 막연한 화려함인가 해도 말 같지도 않은 번쩍이는 것들을 지나치고 나면 갑자기 평범한 시계가 나온다.
호기심이 생기는 정보는 연도 정도다. 1910년대에 유한 계급이 주문하던 것과 비슷한 제품을 지금도 어디선가 주문을 넣고 있구나 정도. 그리고 돈이 많으면 취향이 이상해지는 건가, 취향이 이상해야 돈이 많은 건가 하는 선후 관계에 대한 궁금증.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일본에서 가져 왔다는 쌓여있는 돌(왜?), 홀연히 등장하는 한국의 자개, 마치 놀이동산을 입장하듯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 줄 끊어진 비파(일본의 네고로 비파라고 한다), 작고 귀엽고 굉장히 비쌀 작은 상자들 그리고 팬더.
하리보 같은 불독
망충한 민화 같은 호랑이
늘어진 팬더
일본 도치기현 우츠노미야에서 채굴된다는 오야석. 오야석은 마그마가 굳으면서 생기는 거칠고 갈라진 표면이 특징이다.
아카이브 속 스케치
이런 반지는 누가 어떤 자리에서 사용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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