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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이중의 접근

by macrostar 2024.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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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르세라핌의 Good Bones 티저 이후 팬츠리스가 다시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다시라는 말은 좀 이상한데 주류 패션에서는 스윽 지나가는 느낌이지만 주류 세상에서는 또한 여전히 관심의 초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 패션 세상과 현실 세상 간의 거리감 같은 걸 느끼게 된다. 국내에서 더 유난한 경향이 있긴 하지만 심심해서 들춰본 몇 나라의 리액션 영상을 보면 다른 나라도 아주 크게 다르진 않은데 이게 오타쿠 특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패션에서 노출과 가격은 여전히 패션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화제의 내용이구나 다시금 느낀다.

 

 

물론 패션의 시대(링크)를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지금의 이런 흐름을 그다지 환영하진 않는다. 차라리 1996년에는 보면서 새롭고 신선하다고 즐거워했겠지만 2024년에는 이 방법 밖에 생각나는 게 없나 싶은 게 살짝 시시하다. 사실 가격과 노출만 가지고 호들갑 떠는 일 자체가 시시하다. 아무튼 저게 속옷? 바지? 뭐 이런 반응들을 자주 보는 데 미우 미우의 공식적인 상품명은 퀼로트(Culotte), 퀼로트 쇼츠였다. 하지만 퀼로트 쇼츠는 국내에서 통용되는 용어가 되기 어려울 거 같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다.

 

이 이야기를 꺼낸 건 패션의 어디가 재미있냐를 생각하다 나온 건데 일단 재미를 가지고 있는 건 이중 노선을 가지고 있다. 먼저 가지고 있는 상상의 틀을 넓혀주는 패션을 좋아한다. 글이나 영화, 음악, 미술 등으로 보는 경험과는 또 다른 재질의 확장을 제공한다. 이 확장은 그러나 무한정은 아니다.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이건 옷이기 때문이다. 입을 수 있고 쓸 수 있어야 한다. 가격은 어차피 세상 모두가 입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렇구나 하고, 노출은 뭐 저런 식이구나 정도의 감상. 2024년에 몸을 이용할 생각, 몸의 아름다움 같은 걸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보여주고 싶다면 조금 더 신중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 

 

또 하나는 생활의 옷이 어떻게 버티느냐 하는 점이다. 가지고 있는 옷이 낡아가고,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조금씩 고치고 하면서 늙음을 획득하는 과정을 보는 게 흥미롭다. 그러기 위해서는 낡을 수 있는 옷, 고칠 수 있는 옷이 필요하다. 순간적으로 무너져 버리는 옷이 있다. 그런 걸 이번 겨울에만 2벌이나 폐기했다. 혼자선 고치기 어렵고 혹은 아주 많은 비용이 드는 옷도 있다. 그런 건 생활의 옷으로서 별로 의미가 없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얼마 전 일본 유튜브 보다 보니까 백화점 같은 거 아래 체인으로 운영하는 대형 수선점이 있었다. 국내에서 백화점, 마트 수선실도 있고 또 구두 같은 경우에는 전문점도 있고 릿슈처럼 들어온 것도 있는데 아무튼 그런 게 잘 버틸 수 있는 기반은 중요한 거 같다. 특히 홍대, 합정, 성수, 서촌 등 어디를 가도 빈티지 패션 매장이 계속 생기고 있는 최근의 흐름에서 낡은 것들 중에서 잘 고르세요보다 이렇게 고쳐입으면 되겠구나가 약간은 더 진보적인 개념이 아닐까 싶다.

 

여기를 봐오신 분들에게는 이런 노선에 대한 이야기가 매번 봤던 내용이겠지만 2024년을 맞이해 다시 한 번 이런 큰 목표에 대해 생각하며 앞으로의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보겠다는 다짐의 의미로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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